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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Jan 05. 2024

새해는 서해에서

12월의 마지막 날부터 1월의 세 번째 날까지 아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아들 학원이 방학을 한다고 해서 급 계획된 여행이었다.

많이 가보지 않았던 서해로 여정을 정했다.

서산에 있는 대학교에서 친구가 교수로 재직을 하고 있어 여행 가는 김에 친구도 만나보리라 생각했다.

숙소를 만리포로 잡았다.

바닷가 바로 앞에 오래된 호텔이었다.

호텔이라기보다는 낡은 펜션 같은 곳이었다.

아들은 룸에 들어가자마자

"뭐야, 호텔이 너무 후졌네"

하면서 실망을 나타냈다.

그래도 관리가 잘 돼서 깨끗했고 침대 맞은편에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테라스도 있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짐을 내려놓고 길을 건너 바다로 나가 보았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불어서 바닷가는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새해맞이 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제법 바닷가에 많이 보였다.

20여분 가량 바닷가를 산책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러 횟집으로 갔다.

호텔 사장님이 추천해 준 곳으로 가서 추천받아 왔다고 하니 소라, 전복, 가리비, 굴, 새우 등 해산물을 끝도 없이 주셨다.

회가 나오기도 전에 배가 불렀다.

회는 아들 몫이었다.

야무지게 마지막 한 점까지 잘 드셨다.

인심이 좋은 가게였다.

돌아와 TV를 보다가 잠을 청했다.

아들도 나도 잠자리에 예민하다 보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들과 내일 일정을 짜고 뭘 먹을지 등도 같이 고민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담날은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수목원을 방문했다.

겨울이라 꽃도 식물도 앙상했지만, 산책하고 한 바퀴 둘러보기엔 좋았다.

그리고 수목원 옆으로 바닷가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서 바다를 바라보며 걸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근처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고 태안으로 이동해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카페를 방문했다.

앤티크 한 감성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내를 잠깐 구경하고 파도리로 이동했다.

원래는 해식동굴까지 갈 예정이었는데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잠깐 자갈이 깔린 바닷가만 산책하고 돌아왔다.

둘째 날은 저녁으로 치킨을 포장해 와서 먹었다.

다음날,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고 숙소에서 늦게 이동을 해서 서산으로 갔다.

만리포에서 서산까지는 제법 멀었다.

친구 학교에 도착해서 연구실이 있는 건물을 찾아 들어갔다.

아이와 대학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들은 처음 만나는 엄마 친구도, 대학교도 신기해했다.

친구를 만나 연구실로 들어가니 친구가 아들을 보고는 너무 반가워하고 잘 생겼다며 칭찬을 했다.

아들은 처음엔 쑥스러워서 눈도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자 둘은 자주 만났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도 아이도 극 E 성향이었다.

친구는 미리 아이 선물로 한정판 젤리 종합 선물 세트를 사 두었고, 바나나 우유와 과자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친구와는 3년 만에 만나는 거였다.

강사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였다.

같은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친구는 박사 과정을 밟고 계속 공부를 했고, 나는 점점 규모가 큰 입시학원으로 옮겨 다니며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동안, 친구는 치열하게 노력해서 지방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결혼 시기를 놓쳐서 아직까지 솔로였다.

친구는 아들을 너무 사랑스러운 눈으로 줄곧 보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동경이 남아 있다.

내가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느라 '나'를 포기했듯이, 친구는 교수라는 자신의 직함을 얻느라 '결혼'을 포기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는 서로의 인생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갱년기와 오십견, 노안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가 아이에게 저녁으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몇 가지 선택지를 주고 아이가 선택한 중국집으로 정했다.

친구는 동료 교수가 동석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방학이라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고 하니 같이 가서 먹자고 했다.

나랑 아들은 상관없다고 했다.

친구가 그래도 오랜만에 캠퍼스에 왔으니 아들과 차를 타고 슬슬 구경하고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차를 타고 대학 본관, 학생 회관, 체육관, 도서관 등을 돌아보았다.

방학이라 학생들이 없으니 고즈넉했다.

제법 규모가 있는 학교라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아들은 빨리 이모한테 가자고 했다.

탕수육을 먹고 싶다고 학교 구경은 충분하다고 했다.

그래 이놈아,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하는데,

너는 절대 안 되겠다. 에휴!

아들과 식당에 도착해서 친구와 친구 동료와 탕수육과 쟁반 짜장을 먹었다.

아들이 고른 메뉴였다.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캠퍼스도 가 보니 너무 좋았다.

그렇게 아들과 3박 4일의 서해 여행을 새해 벽두부터 하고 돌아왔다.

한 해의 시작을 바닷가에서 한 것이 너무 행복했다.

바다는 언제나 나에게 힐링 1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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