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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거북이 Mar 22. 2020

내 마음은 능동태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어쩌면 하느님은 공부와 일을 통해 내 평생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게끔 하시는 게 아닐까?'


나는 내 마음과 사람의 마음에 관심은 있지만, 관심만 있을 뿐 잘 모른다. 잘 몰랐기에 사람의 마음이 너무 궁금했던 것 같다. 내가 내 마음도 잘 몰랐고, 다른 사람 마음은 더 몰랐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명료하게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말, 표정, 뉘앙스, 이런 건 더 몰랐다. 그래서 눈치도 없었고, 상황 파악도 느렸고, 인간관계의 역동도 잘 몰랐다.


본격적으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겠구나.. 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싶은 건, 병원 수련을 하면서였다. 환자를 만나서 심리평가를 하고 면담을 하고 심리평가 보고서를 쓰는 일을 했는데, 바로 그 환자의 지금 마음 상태가 어떤지 그래서 치료가 필요한지, 진단은 무엇인지 등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사람의 마음을 모르니 심리평가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이 남들보다 몇 배는 어렵고 힘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싶은 건, 심리치료를 하면서, 특히 정신분석을 배우면서였다. 정신분석은 정말.. 나에게 사람의 숨겨진 마음까지 짐작해볼 수 있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여차하면 나만의 추측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드러난 말과 행동에 깔려있는 그 사람의 진심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내가 몰랐던 다른 사람의 모습들과 성격이 확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그대로지만, 내가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생각보다 관계의 역동과 패턴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금방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주일에 4-5번씩 만나는 정신분석을 5년, 8년, 10년씩 하는 것일 게다.


속상한 이야기지만, 나의 친구 무리 중에서 오래전부터 나는 많이 소외감을 느꼈었다. 은따 비슷하게 말이다. 대놓고 따돌리진 않지만 은근히 무시하는... 그래도 그중에 한 명과는 가깝게 지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친구가 측은한 마음으로 그래도 나를 챙겨주었다는 걸. 그리고 나를 은근히 무시하던 다른 친구들은 시간이 흘러 서로 나이가 들어 이제는 안 그러는 듯해도, 결국에는 여전히 그런 패턴이 남아있음을 알았다. 예전이라면 이런 사사로운 일에 개념치 말자며 그냥 넘겼을텐데, 이제는 사람의 모습과 마음이 확연히 보이다보니 그냥 넘기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예전의 그 패턴이 지금도 그대로임을 더 확실히 느꼈던 것 같다.


집단의 역동이란 건 변하지 않는 걸까? 옛날 같았으면 뭐가 문제이냐, 달라져야 돼, 괘씸한 마음과 별별 마음으로 고통 속에 지냈을 것이다. 뭐, 지금도 고통스럽긴 매 한 가지다. 하지만 지금 드는 건.. 10년이 넘어도 안 변하는데 뭐 어쩌겠냐.. 이런 마음이다. 그리고 이 집단에서 무시할 대상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대상이 나라면, 무시당해주지 뭐. 이런 마음도 들었다. 영원히 손절할 수 없다면, 기꺼이 무시당하는 역할을 해주며 지내주리라.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달라짐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발끈하고 화나고 부들부들했을 텐데, 이젠 속이 쓰리고 아파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젠 더이상 예전의 역동과 패턴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왜냐면 내가 기꺼이 바보 역할을 해주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진 내가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가 그런 무시를 충분히 받아주겠다는 의미이다. 겉보기에 모습은 매 한 가지 일지 모르지만 나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나의 마음이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능동태라는 것. 그건 내 마음에 여유와 힘이 생겼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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