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멈추고 싶은 날이 있다. 인디언의 지혜를 가슴으로 읽게 된다. 내가 누군가의 뒤에 바짝 붙어서 복종하고 따르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어쭙잖게 내가 앞에 가며 누군가를 이끌 수 있다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굴종이 있었고 속박과 위선이 있었다. 어느 날 아프게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와 먼저 나란히 가자. 더 이상 누구 뒤에서도 누구 앞에서도 걷기 싫었다. 그러길 강요하거나 기대하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제발 내 앞에서도 내 뒤에서도 걷지 말아 주오. 아끼는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내 옆에서 함께 걷는 벗이 돼 주오. 우리 친구 하자, 말 트자, 같이 해 보자. 고달픈 인생길을 함께 걷는 벗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나로, 너는 너로, 따로 또 같이, 나란히, 천천히, 멀리까지. 같이 걷는 길동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복 받은 삶이었다. 사람들을 그렇게 살 수 있게 응원하게 됐다. 부부관계도, 부모 자식도, 선후배도, 친구도, 그 누구도......
자기 자신과의 관계, 자기 영혼과의 관계가 그렇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 바라보며 서 있단다. 말도 쉬고 사람도 쉬고 풍경도 감상하며 숨 돌리는 시간일 수 있겠다. 그러나 멈추고 기다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혹시 너무 빨리 달려서 자기 영혼이 미쳐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내 영혼을 기다려 주는 시간. 내 영혼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달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니까. 일부러라도 멈추고 기다리는 지혜다.
말로야, 선언적으로야, 그렇게 할 수 있다. 내 앞에도 말고 내 뒤에도 말고 옆에 같이 걷자고. 그러나 그건 다소 의도적인 선택과 태도의 변화에 딸린 거겠다. 내 앞에 가는 사람의 문제거나 내 뒤에 따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 영혼에 관한 한 더더욱 그렇다. 내 영혼이 뒤에 처져 못 따라오고 있는 줄 모를 수 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내 영혼이 안 보이는데, 빨리 안 오고 뭐 하냐고, 내 옆에서 걸으라고, 소리치면? 내 영혼이 들어먹어야 말이지.
가끔씩, 문득, 멈추고 싶은 날이 있다.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글이 나보다 멀리 가는지, 글쓰기가 내 뒤에 헉헉대며 따라오는지, 괴롭지만 돌아보게 된다. 쓰고 싶은데 못 쓰는 글이 쌓일 때가 그렇다. 좋은 영화와 책을 보고도 글 한 줄 못 쓰고 넘어갈 때 그렇다. 써야지 벼르지만 진전이 없을 때, 아차 그걸 써야 했는데, 시간이 안타까울 때, 점점 더 그렇다. 말에서 잠시 내릴 때 같다.
내 영혼이 나를 못 좇아오는 줄 나만 모를까 봐. 새해에 본 영화 목록 얼마라도 정리하며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