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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Nov 30. 2020

나는 왜 글 쓰는 여자에 열광할까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조만 글 쓰는 여자였을까?

여성 작가가 쓴 원작 소설로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다. 


이 코로나 시국에, 조조로 혼자 한 번, 딸과 함께 저녁에 한 번 더. 글 쓰는 여자 조의 이야기면서 네 자매와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150년 전 그 시대, 글을 써서 돈을 벌고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보려 몸부림친 여자. 시시해서 안 읽을 거라는 통념을 깨고,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자전적 소설로 결국 '대박'을 친 이야기였다.   

  

이런 유의 작품을 당시엔 분명 별 큰 사건도 없는, 지루하고 소소한, '지지고 볶는' 이야기라 했다. 여자들이란 주로 남자의 아내, 연인, 정부, 혹은 어머니로 등장하는 시대였다. 여자들이 나서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독자는 없다고들 했다. 그러나 30대의 젊은 감독 그레타 거윅은 멋들어진 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거장이라 불러 마땅하다. 주연 시엘사 로넌은 <레이디버드>에서도 그러더니, 매혹적인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돈 벌 길이 도무지 없어서 조는 글을 써서 팔았다. 늘 잉크가 묻은 조의 손 이미지는 강렬했다. 소설이 팔리길 원한다면 결말에 여자는 반드시 결혼시키라, 편집자는 조에게 요구했다. 여자도 생각이 있고 영혼이 있는 사람인데, 여자에게만 사랑이 모든 것이라 하는지, 조는 묻고 물었다. 돈을 벌어야 해서 편집자의 요구를 듣긴 했으나, 판권을 넘길 순 없었다. 편집자에게 조가 당당하게 말했다.     

"내 책 판권은 내가 가진다."     


글 쓰는 여자 영화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고뇌에 찬 얼굴로 미친 듯 글 쓰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좋은 남편의 시혜보다 버지니아에겐 자기 글을 쓰는 게 중요했다. <해피 이벤트>에서 출산과 육아에 발목이 묶인 주인공이 생각난다. 결국 철학박사 커리어를 잠시 밀어 두고 자기 이야기로 자판을 두드리는 게 영화 결말이었다.    


<실비아>에서 결혼 생활과 시 쓰기를 병행하는 실비아 플라츠의 하루하루는 전쟁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에밀리 디킨슨의 삶도 별로 다르지 않음을 <조용한 열정>이 보여줬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감독 김도영은 원작 소설과 달리 결말에 김지영이 자전적인 글을 쓰는 것으로 각색했다. <더 와이프>는 어떠하며 글 쓰는 <콜레트>는 또 어떠했던가.

   

글 쓰는 여자 영화를 이 외에도 많이 봤다. 나는 왜 글 쓰는 여자 영화에 열광할까. 나는 전문 작가도 아니고 글 쓰는 여자로 알려진 적도 없다. 그래도 내 생애 유일의 꿈은 글 쓰는 여자로 늙는 거다. 글 쓰다가 접고 다시 쓰고, 건강 때문에 쉬고, 글 쓰려 ‘나댄’ 세월이 길다.     


올해 다시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 이야기, 시시하고 별거 아닐 수도 있다. 내 글이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안 읽는 거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시시한 아줌마의 이야기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그럴 땐 조에게 에이미가 한 그 말을 떠올리게 된다.    

 


중요하고 안 하고 그건 누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데?
안 중요한 이야긴지 어떻게 알아?
그런 이야길 많이 안 쓰니까 안 읽은 것이고, 안 중요해 보이는 것뿐.
많이 쓰면 중요한 게 되는 거야.    



<작은 아씨들>에서 조만 글 쓰는 여자였을까? 조는 치열하게 글 쓰는 여자 맞다. 내겐 조 말고도 글 쓰는 여자가 보였다. 조의 엄마다. 엄마 마미 마치의 삶은 글 쓰는 여자의 '은유'라고 하면 과할까? 여자는 왜 글을 쓸 수밖에 없는가? 여자의 삶에 글쓰기 말고 답이 있단 말인가? 엄마의 삶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조의 엄마는 네 딸들에게 화 한 번 안내는, 가족과 이웃에게 헌신적인, 신앙심 깊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화내지 않잖아"라는 조의 대사가 엄마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에이미에게 불같이 화를 낸 후 조가 자책하고 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나도 매일 화가 나는데 다스리는 거야. 넌 엄마와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
어떤 천성은 누르기엔 너무 고결하단다.    



전쟁에 나갔던 남편이 드디어 돌아왔을 때 마미 마치가 한 말은 더 압권이었다. 

"이제 얼굴 보며 화낼 수 있겠어." 

이 엄마야말로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을 차곡차곡 품고 사는, 글 쓰는 여자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이웃으로 살아온 엄마의 가슴에 쌓인 화를 글로 풀어내야 할 것이다.     




이쯤에서 내 상상의 날개는 결국 폭주한다. 아~~ 조의 엄마는 곧 아프거나 갱년기를 맞을 거다. 눌러 온 화를 폭발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거야! 그래서 <작은 아씨들>에서 진짜 글 쓰는 여자는 조의 엄마 마미 마치라고 한 거다. 과한가?     


그럼, 글 쓰게 될 여자는 엄마다, 로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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