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참 좋아하면서도 보고 있으면 배가 살살 아픈, 그런 친구 한 명쯤은 있지 않나요?
제겐 한비야 작가가 그런 대상이었어요. 책도 무지 많이 썼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말을 또 그렇게나 잘하는데, 인기도 많아. 내용에다 영향력까지 가진 사람이니 배가 안 아플 수가 없더군요. 그를 알고 싶어 책을 탐독하면서도 한편으론 배 아픈 맘. 한비야 책이야 싹쓸이(?)로 탐독할 수 있지만 그의 삶은 도무지 따라 할 수가 없잖아요. 오지 여행이며 외국어며 구호활동에 학위까지.....
그가 어느 날 50대에 결혼했잖아요? 제 기분 묘했어요. 배 아픈 게 많이 가라앉으면서, 동질감 같은 게 느껴진달까! 물론 그가 나처럼 한 집에 매이고 남편에게 올인하는 아내로 전향할 걸 기대한 건 아니고요. 어떤 식으로 결혼 생활할지 무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은 부부 생활하더군요. 전혀 배 아프지 않았어요. 저도 깊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바였거든요. '따로 또 같이'의 부부사랑법. 저도 중년에야 새로운 관계 시도와 실험으로 부부사랑을 새롭게 만들고 있었거든요.
어쨌거나, 여행 중 한비야가 생각나면서 서론이 길었네요. 여행, 하면 한비야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 하나 인용하려고요. 흔하다면 흔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말인데요. 누구나 느끼는 말이고요. 여행 중이라서 그런가 봐요. 낯선 곳에서,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즐기는 여행.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맘껏 사귀고 있거든요. 여행에서 만난 매력적인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요. 배 아프냐고요? 살짝요.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한비야
숙: 어머나 어머나! 정말 재미있는 명함이네요. 이걸 누가 디자인했어요?
현: 제가 했죠. 저뿐 아니라 직원들이 모두 같이 만들었어요. 홍보해야 하니까. 직원만 50명이 넘은걸요.
숙: 대박~~ 조개구이 사업 크게 하실 때 명함이군요. 그러니까 벌써 10년도 더 전이겠는데요?
현: 그렇죠. 이 아들이 지금은 대학생이죠.
숙: 귀여워~~ 근데 가리비죠? 조개가 이렇게 커요 진짜?
현: 네 큰 건 저렇게 커요.
숙: 이런 자세와 벗은 몸에, 음.... 손에 든 기구며 장화 신은 건 무슨 콘셉트인가요?
현: 조개구이 서빙할 때 모습이죠. 무릎을 접은 이 자세로 해요. 조개를 씻느라 늘 장화를 신고 일하거든요.
숙: 와~~ 세상에 너무 고마워요. 이 명함으로 저 글 하나 써도 될까요?
현: 물론입니다.
3월이 다가오니 칠보산 여기저기서 매화가 피고 있네요. 하늘은 살짝 흐린 2월 마지막 토요일 오전엔 철암 산을, 이번 여행 기간만 세 번째로 또 다녀왔어요. 소나무 숲길과 계곡을 거치며 오르막 내리막을 즐기며 벗들과 함께였어요. 동행은 숙, 임, 현, 세 사람이었어요. 임은 숙과 너 나 하는 동갑내기 아줌마 암 친구랍니다. 칠보산이 맺어준 친구죠. 암이 전화위복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신나는 중년들이랍니다.
임: 네가 암 이후에 제일 달라진 게 뭐냐 물으니 이제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 거다. 내가 암 이전에는 뭐든 남편 위주고 가족 먼저 생각하고 살았는기라. 남편하고 같이 산에 갔다 와도 남편 먼저 씻고 쉬라 카고 나는 밥 준비했다. 뭐든 나 먼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침에도 식구들 편히 씻고 나가라고 내가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서 변비 생겼다. 남편 퇴직하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즐기며 살라 캤는데 내가 암이 걸린 거라. 남편한테 먼저 미안하더라. 그랬는데 이제는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내가 건강해지는 게 식구들 위한 길이더라. 이제 식구들도 맛있는 거 있으면 나 먼저 먹으라 칸다. 남편도 이제 뭐든 내 위주로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좋은 대로 다 하라 칸다. 여기 처음에 같이 와 보고 좋다고 남편이 무조건 나 보고 여기 가라 칸다. 집안일 인제 남편이 잘한다. 오늘 울 엄마 제사다. 나는 여기 있고 남편 혼자 처가에 간다. 내가 이래 사는 게 달라졌다.....
임: 와~~ 우리가 말하는 걸 다 기록하네요? 메모의 중요성은 알지만 대단하세요.
현: 습관이 됐어요. 이렇게 좋은 걸 듣고 나중에 기억해 내려면 어렵더라고요. 들을 때 바로바로 메모하게 됐어요. 전에는 핸드폰에 적거나 찍었는데 사람들 따라서는 불편해하는 경우 있잖아요. 적는 걸 말리는 경우는 없었어요.
숙: 와~~ 존경합니다. 저도 작은 메모 수첩 가지고 다니는데 오늘 찐 고수님 만났어요. 멋져요.
현: 제가 20년 음식업 하고 있는데 또 사업을 바꿔볼까 구상하고 있거든요. 자연생활교육원이 자연식으로 유명하다니까, 궁금해서 주말에 2박 3일로 왔어요. 제가 직접 경험해야 고객들한테도 추천해 줄 수 있잖아요. 여기 오니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거예요.
숙: 와~~ 제대로 오신 겁니다. 자연식 식당 좀 생기면 좋겠어요. 이거 블루오션이라고 봐요. 됩니다! 여기서 드신 음식에 대한 소감 좀 들려주세요. 뭐가 인상적이었어요?.....
현: 저는 음식점을 할 때마다 항상 그 분야에서 1등 하자는 맘으로 했어요. 외국 가서 구경하고 먹어보고 참고했고요. 처음 조개구이 시작할 때 외국인도 오는 세계적인 곳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그랬더니 항상 줄 서서 기다리며 먹는 곳이 됐어요. 대한항공 잡지에도 실렸어요. 그러니 외국인들이 무지 많이 찾아왔어요. 강남에서 점포를 나란히 세 개 열었을 정도로 잘 됐어요.
숙: 그렇게 잘 되는데도 계속하지 않고 업종을 왜 바꿨어요?
현: 같이 하던 직원들에게 넘겼습니다. 뭐든 한 가지만 계속할 순 없어요. 시대는 변하는 거고 어떻게 달라질지 미래는 모르니까요. 저는 지나고 보니 잘 한 결정이었던 셈이죠. 코로나 시대 저는 규모가 크지 않은 밥집이라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우리나라도 늦게까지 하는 술집은 잘 안될 거예요. 서양은 일찍 문 닫잖아요.
임: 우리 다리를 너무 얌전하게 앉은 거 아니에요? 너무 다소곳해. 신발이 아주 예뻐요.
현: 제가 아주 아끼고 좋아하는 신발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산에 올 때만 신어요.
숙: 아주 단단히 끈을 맸네요. 평소 운동을 많이 하신 거 같아요. 몸이 배 나온 사장님들과는 달라요.ㅋㅋㅋㅋ
현: 네 사업 말곤 오전엔 운동해요. 산악자전거 탔었는데 사고 나서 허리를 다친 적이 있어요. 그 후엔 더욱 운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산악 멘토한데 걷는 자세며 제대로 코치도 받았어요. 무릎을 쫙 펴지 말고 살짝 구부린 자세로 걸으면 운동효과가 더 좋아요. 산에 다니면 저희 팀은 꼭 보물 찾기를 해요.
임: 보물 찾기요?
현: 산에 갈 때 비닐봉지와 집게를 가지고 가서 쓰레기를 줍는 겁니다. 그러면 참 마음이 즐거워요. 대신 너무 많이 주우려 하진 않아요. 보물이니까 다른 사람 주울 것도 남겨두자는 거죠.
숙: 오~~ 세상에. 더 얘기해 주세요. 그런 사람들이 라이온스 클럽처럼 팀이 있는 건가요?
현: 아닙니다. 서너 사람이 산악회를 만들었어요. 저흰 관악산을 자주 가요. 저희 나름 원칙이 있어요. 묵언 산행이죠. 그리고 땀을 안 흘리도록 노력해요. 대개는 땀을 많이 흘리면 좋다고 아는데 그렇지 않은 점이 있어요. 옷을 열고 그다음은 한 개씩 벗어가며, 땀난다 싶으면 쉬어가면서.....
숙: 아~~ 땀 안 흘리고 운동하는 거, 저는 실천하기 무지 어려울 거 같은데요?
숙: 오~~ 참 신기하네요. 저는 이미 등이 축축한데. 보통 몸에 열이 나고 땀을 흘릴 정도의 운동이 좋다잖아요. 어떻게 땀을 안 흘릴 만큼 운동할 수가 있죠?
현: 네 그게 새로 나온 운동 이론이래요. 땀을 흘리면 열이 발산하는 거고 땀 안 흘리면 열이 몸 안에서 태워진대요. 그게 더 낫다네요. 저도 그렇게 배워서 해 본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맨발로 땅밟기(어싱) 있잖아요. 추울 땐 맨발 걷기 좋지 않대요. 꼭 따뜻한 땅에서 하시는 게 좋아요.
임: 네 그럼요. 그럴게요. 저는 맨발 걷기 하니까 정말 몸이 좋아진다고 느꼈거든요.
숙: 아니, 오후에 다시 산에 다녀오신 거예요?
현: 네, 혼자 걸어 봤어요. 보물 찾기도 해 왔어요. 길 잠깐 잃었던 거 같아요. 좀 헤맸어요.
숙: 오, 급 동질감. 저도 화요일 오전 글 마무리하다 혼자 등산 나갔어요. 익숙한 길로 걷다 오지 했는데 철암산까지 간 거예요. 오늘 오전에 갔던 거기요. 갈 땐 좋았는데 올 땐 길이 헷갈리는 거예요. 길이 워낙 많죠? 교육원이 안 나오는 거예요. 두 시간 반 만에 간신히 돌아왔어요.
현: 와, 여긴 길 잃기 쉽겠어요. 산이 워낙 좋은데 길이 진짜 많더라고요.
숙: 그런데 좀 익숙한 곳이긴 한가 봐요. 저 같은 길치가 잠깐 길 잃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이러면서 즐겼어요.
현: 와~~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길 잃었구나, 잠깐 놀라곤 혼자 즐기자 하면서 찾아왔어요.
숙: 잠깐! 보물 들고 좀 서 주세요. 인증숏 하나 찍어야겠어요. 저 사장님 이야기랑 사진 글에 써도 될까요?
현: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써 주세요.
숙: 다시 한번 확인할게요. 이상현 실명이며 사장님 벗은 사진 명함 그대로 다 실어도 괜찮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