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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글을 안 쓰고 지내면, 글을 안 쓸 이유가 백 가지는 보였다.

by 꿀벌 김화숙

6월 하고도 벌써 3일이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한참 놀렸나 보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밑도 끝도 없는 회의와 좌절의 봄을 보낸 셈이다. 내가 쓰는 글이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글벗이란 뭘까? 댓글이란 뭘까? 글을 쓰는 누군들 이런 고민 안 했으랴. 그렇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엎어져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다.


글을 안 쓰고 지내보면, 글을 안 쓸 이유가 백 가지는 보이곤 한다. 그러다 다시 자판을 두드리게 되는 건 어떤 원리일까? 흠.... 내가 하는 짓을 언제는 다 알고 했던가. 끌리는 대로 흐르는 대로 갈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함께 읽고 함께 쓰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서로에게 거울이 되고 지지가 되는 글쓰는 존재들 말이다.


안산 여성 단체 울림 회원들이 100일 글쓰기 밴드로 뭉쳤다. 이름하여 '거룩한 글쓰기'다. 애초에 한 달 한 번 글로 모이는 소모임 <동동동>도 있다. 자기가 쓴 글로 한 달 한 번은 모이고 합평하는 우리들. 나는 지난 달 글 안 내고 수다만 떨었지. 그 모임 리더인 창아샘이 은향샘과 의기투합해 100일 글쓰기를 기획했다. 쉬지 않고 매일 쓰자는 거다. 밴드를 열고 나를 초대해 주니, 얼씨구나, 숟가락 들고 끼어앉게 됐다.


기획한 샘들의 뜻을 받들어 참여자는 원칙에 동의하고 글을 쓰면 끝! 다른 공부 모임에서 유료 강좌로 100일 글쓰기 하는 거 많이 봤다. <거룩한 글쓰기>는 서로에게서 배우는 '집단지성'의 좋은 본보기다. 각자 자기 글 쓰고 올리는 것뿐, 굳이 코멘트도 달지 말잔다.(그러나 원칙일 뿐, 누가 막으랴. 수다는 있다 ㅋㅋㅋ) 아직 밴드 이름에 담긴 '심오한' 뜻이 뭐냐 물어본 적도 없다. 글 쓰고 올리는 데만 집중하자는 소리다. 두 샘들이 수고해서 만든 원칙을 슬쩍 옮겨오면 이렇다



우리의 원칙


1. 매일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 위한 100일 프로젝트.

2. 매일 밤 자정까지 글을 1편 올린다.

3. 한 줄이어도 인정한다. 단, 제목은 필수.

4. 댓글은 사양, 표정은 허용.

5. 101째 되는 날 한 편이라도 덜 낸 사람이 거룩한 밥을 산다.

6. 밥값은 1인분 2만 원.

7. 5월 17일(1th)~8월 25일(100th)

8. 1일째 글쓰기: 자신이 앞으로 어떤 콘셉트로 쓸지 밝힌다.

<거룩한 글쓰기>



100일 글쓰기 덕분에 매일 자정 전에 나도 글 한 조각씩 올리고 있다. 나는 엎어진 김에 쉬던 차였다. 놀며 쓰기로 했다. 즉, 거창하게 잘 쓰려 하지 말기. 뭐든 몇 줄만이라도 매일 쓰기. 내 기분과 내 몸의 느낌을 지켜보며 차차 더 쓰리라, 그랬다. 오늘로 18일째다. 지난 17일 동안 쓴 짧은 내 글 몇 개 가져온다. 일기 쓰기 비슷한데, 어쨌거나 매일 가볍게 쓰자. 이게 100일 글쓰기 달리기의 매력이요 재미겠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니 좋아?

응, 좋아.







17일- 별에게 보내는 편지


어쩌다 보니 나는 3년째 별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한 달 한 통 416안산시민 연대 공식 블로그 별별 소식지에 연재하는 '별에게 보내는 편지' 이야기다. 글을 마감했고 5월 소식지가 발행됐으니 한 달이 가고 새 달이 시작된 게 틀림없다.


한 달 한 통, 250명 별에 비해 얼마나 미미하고 안타까운 글쓰기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볍게 간다는 소리는 아니다. 매번 새롭게 무겁고 아프다는 말이 맞지 싶다. 한편으론 행복하고 충만한 글쓰기이기도 하다. 울고 웃고 우울하고 유쾌한, 한마디로 말하기엔 어렵지만, 삶의 솔직한 단면이기도 하다.


한 달 내내, 한 주 내내 한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산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최소한 며칠 밤낮을 별만 생각하기도 한다. 별이 나를 비추고, 말을 걸고, 보여주고 알게 한다는 말, 결코 은유가 아니니까. 그랬다. 5월도 그렇게 갔다. 6월엔 6월의 별 하나가 내 가슴에 들어올 것이다. 5월의 별 편지를 공유해 본다.




16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휴가가 두 달쯤 주어진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휴가가 두 달쯤 주어진다면, 나는 아마 어딘가에 가서 근본도 없고 계통도 없는 SF 소설 한 편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다. 가끔은 가벼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 즐거움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작가로서 내가 지닌 가장 탄탄한 근육이다.


한 번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자. 괴롭고 번거로운 것들을 다 걷어내고 글쓰기가 순수하게 즐겁기만 했던 어떤 순간을 만날 때까지. 어딘가의 근육이 불끈 불끈한다면 당신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다.


-<SF 작가입니다>(배명훈, 문학과지성사, 2020) 127-128쪽




15일- 돌덩이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그게 현명하게 사는 거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 같잖은 말
누굴 위한 삶인가.....


416합창단에서 몇 주째 계속 연습 중인 <돌덩이> 첫 대목이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 OST로 이현우라는 가수가 불렀다. 스윙 리듬에 재미난 가사까지, 이런 낯선 합창곡은 내 생전 처음이지 싶다. 뻣뻣하고 진지하게 불러서는 도무지 맛을 살리기 어려운 곡이다.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풀어 흔들며 가볍고 유쾌하게 불러야 제맛이 난다.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고? 같잖은 말! 누굴 위해서?


이런 가사를 부르는데 어찌 신나지 않으리. 오늘 저녁 연습에서도 음악에 내 몸과 맘을 기대고 맡겨 보려 애썼다. 아쉽게도 내 파트 알토가 무지막지 어려워, 그게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연습할 수 있다는 자체를 즐겨야지 완벽 소화하려 애쓰면 절망하기 딱이다. 그러나 미치도록 재미있는 건 뭐냐. 배울수록, 그런 게 있다. 어려운데, 모르겠는데 재미있다는 역설. 음악이 살아나 나를 움직이고 즐겁게 하기 때문일 거다.


이런 리듬과 가사를 부르는데 신나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깨질수록 구를수록 강해지는 돌덩이, 부르노라면, 나는 어느새 단단한 돌덩이가 되어 구르고 있으니까. 가사와 리듬 한 번 맛 볼래?



Hit me harder Make me strong(돌덩이)

하현우 노래/박성일 곡/ 이현관 편곡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그게 현명하게 사는 거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 같잖은 말 누굴 위한 삶인가

뜨겁게 지져봐 절대 꼼짝 않고 나는 버텨낼 테니까

거세게 때려봐 네 손만 다칠 테니까


나를 봐 이야이야 끄떡없어 워어어

쓰러지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를 뿐야

난 말야 똑똑히 봐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욱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


감당할 수 없게 벅찬 이 세상 유독 내게만 더 모진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었고 아픔이 곧 나였지

시들고 저무는 그런 세상 이치에 날 가두려 하지 마

틀려도 괜찮아 이 삶은 내가 사니까


나를 봐 이야이야 끄떡없어 워어어

쓰러지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를 뿐야

난 말야 똑똑히 봐 워어~~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욱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 오직 하나뿐인 나의 길

내 전부를 내걸고서 헤이~

걸어가 이야이야 계속해서 워어

깨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거야

언젠가 이야이야 이 길 끝에서

나도 한 번 크게 한 번 목이 터져라 웃을 수 있을 때까지




9일- 더하기와 빼기


살다 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게 더하기인지 빼기인지 계산이 잘 안될 때가 있다.


늘 더하기로 살 수도 없지만 사는 게 빼기만 계속되기도 쉽지 않으니까. 미친 듯 더하는가 싶으면 어딘가 빼기로 드러나는 게 있고, 모조리 빼기만 한 줄 알았더니 엄청 더해지는 게 있더란 말이다. 그래서 삶은 참 상투적이게도, 알다가도 모르겠고 몰라도 또 잘만 살더라. 오늘, 그리고 이 봄이 가도록 내가 딱 그렇게 가고 있다. 하나 더하는가 싶다가 열을 빼고, 열 빼는가 싶으면 스물이 더해지고, 톡톡톡, 떨어지는데 합쳐지고 흘러간다. 잠시 해 봐도 셈은 쉽지 않다. 그럴 땐, 억지로 계산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가 보는 거다. 한참 나중에 더하고 빼고 알아서 되더라. 뭐,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구나.



빗방울의 더하기

박소명



톡톡톡

잎새에 더해

초록빛 키우고


톡톡톡

꽃잎에 더해

꽃잎 웃음 더하고


톡톡톡

냇물에 더해

물소리 키운다




6일- 함께의 힘이다


충북 괴산에서 416합창단 공연하고 돌아가는 차 안이다.


집에 도착하면 너무 늦을까 봐 이동 중 한 줄이라도 써 보련다. 오늘로써 416 7주기 관련 4,5월의 공연 일정이 거의 마무리된 셈이다. 돌아보니 나름 대장정이었다. 공연 때마다 울며, 해결된 것 없는 현실의 답답함에 눌리고, 일상의 시간이 늘 부족한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공연마다 즐거운지 나도 다 모르겠다. 다만 아는 건, 매번 진지하고 재미있고 슬픈데 충만하다는 거다. 이건 삶의 역설 중의 역설이렸다.


이 무거운 416참사 곁을 노래와 함께 즐기기까지 하며 있을 줄이야. 합창단과 함께라서, 가볍게 슬픈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일상은 또 살아내야 하니까. 잊지 않을게, 말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따라다니는 질문 아닌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서, 울고 웃으며, 조금이나마 나는 가벼워지려는 건지도 모른다. 혼자 행동, 혼자 기억하기엔 너무 감도 안 잡히고 무거우니까.


함께가 나를 끌어주고 밀어주고 버티게 했다. 그냥 곁에 있다 보니 나도 함께가 됨을 어찌 부인하리. 그랬다. 100일 글쓰기 밴드와 함께라 이렇게 또 쓰는 것처럼 말이다. 함께, 이럴 땐, 그저, 함께의 힘이다.




2일-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이 속담을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렇게 된 거다.


4.16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좀 아프게 보냈다. 갈수록 아프게 이 계절을 살아내는 게 힘들다는 걸 올해 가장 절절히 느꼈달까. 4월 한 달 동안, 416합창단 공연을 8회 함께 했다. 매번 무대에 서서 눈물바람으로 노래를 했다. 그리곤 생각하게 됐다. 이토록 아픈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은 이토록 요지부동인데, 내가 쓰는 글은 이런 현실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콱 부딪쳐버렸다.


내가 쓰는 글 나부랭이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자괴감 내지 우울감이 나를 적셔왔더랬다. 그러고는 날마다 쓰려 용쓰던 긴장감의 고무줄이 함께 툭!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5월이 왔고,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백만 가지도 더 생각났다. 모처럼 '여유로움'도 '즐기게' 됐다.


SF 글쓰기 시작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좀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면서. 그런 중이라 100일 글쓰기 시작이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뻑뻑하다. 오늘은 요기까지.




1일-100일 글쓰기 첫날에


숙이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난 네가 참 멋있고 사랑스러워.


100일 글쓰기에 숟가락 들고 끼었으니 또 매일 뭔가를 꾸역꾸역 쓰게 되겠지? 아주 잘한 결정이라고 봐. 해 보는 거야. 그런데 이걸 어째! 첫날이라는 걸 이 시간에사 번뜩! 확인했다구? 실화냐? 그냥 잊어버린 척 넘어가지 그랬어? 넘어갈 맘도 없지 않았지 물론. 그렇잖아. 내가 오늘 하루 얼마나 달려왔는지.


그럼 그럼. 어제 오후 밀양 갔다가 오늘 오후 안산 도착했으니 말 다 했지. 빗속에 고속도로를 달려왔잖아. 아! 물론 운전은 짝꿍이 했지 나야 편히 앉아 왔지. 그래도 오자마자 짐 정리하고 씻고는 페미니즘 토론 갔잖아. 캬~~ 빼먹을 수 없지. 내게 너무 소중한 토론이거든.


근데 100일간 무슨 글 쓸 건데? 모르겠어. 분명한 건 이번 금요일부터 페미니즘 SF 소설 쓰기 강좌 시작하잖아. 일찌감치 등록했으니 변동 없이 진행되겠지? 8주간에 분명 난 페미니즘 SF 소설을 쓰게 되겠지. 몰라, 내 맘 나도 몰라. 저질러 봤어. 기왕 글 쓰는 거 뻔한 게 좀 지겹잖아. 좀 경계를 확 넘어 배우고 연습해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래 혹시 알아? 너무 잘 써질지? 그래, 쉽게 생각했으니 쉽게 저질러 봐.


응응. 오늘은 그런 시작을 응원하는 걸로 마무리할게. 가볍고 쉽게, 일단 시작하는 데 의미를 두는 거야. 오늘 하루 참 충만했다 그치? 암암. 근데 넌 진짜 피곤을 모르는 게 분명해. 건강하고 활기찬 너, 사랑스러워. 어쨌거나 1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기! 알았지. 응응 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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