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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un 08. 2021

착한 사람 유상철 선수를 기억하며

그곳에선 착하지도 말고 멀티플레이어도 하지 말아요


"한일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감독, 암투병 끝에 사망"

"유상철 전 감독,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

"2002년 우릴 행복하게 했던 영웅...."



아침 인터넷에서 당신의 부음을 만났습니다.

어제 당신이 영면하신 소식을 이제야 본 거죠.

아~~ 가슴이 쿵!

뭐랄까, 잠시 숨을 고르며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이라는 말이 많이 보였습니다.


암, 췌장암, 항암치료, 복귀, 그러나....

2019년 췌장암 진단받은 후 만 2년이 안 됐네요.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하셨을까요.

당신을 보내야하는 가족들과 가까운 분들께도

심심한 조의를 보냅니다.


제가 축구를 많이 좋아하는 펜이냐고요?

그렇진 않습니다만.

축구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반짝 좋아했죠.

선수 유상철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맞겠죠.

솔직히 말해 당신의 췌장암 투병 때문이었네요.

선수시절 보다 더 큰 관심으로 지켜보았달까요.

깊은 연대와 동병상련으로 말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로 옷입고 축구에 열광하며 놀던 우리집 세 아이들



저도 암으로 간을 20% 잘라낸 몸이거든요.

간암절제 수술한 지 어느새 만 7년이 됐어요.

암 이전엔 전혀 그려본 적 없는 길을 가요.

누군가 암 진단을 받거나 투병한다는 소식,

귀기울여 듣게 되고 마음은 곁으로 가곤 해요.

그래서 당신이 췌장암을 잘 이기고 건강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또 응원했답니다.

마치 같은 병실 암 친구를 떠나 보낸 듯

오늘은 자꾸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네요.


그동안 제 곁을 떠난 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점점 삶을 모르겠고, 암은 더 모르겠어요.

저보다 아홉 살 젊은 당신이 또 먼저라니요.

운동 선수였으니 훨씬 강한 몸이었을 텐데.

그 많은 항암치료는 다 무엇이었단 말인지요.

현대 의학의 한계를 보자니 화가 납니다.

더구나 당신은 그토록 착하게 사셨는데 왜....

답 없는 질문을 자꾸 하는 저를 용서하세요.


저는 이 여름이면 암수술 7주년을 기뻐하겠죠.

아, 왜 누군가는 떠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자연치유를 하고 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어요.

몸과 마음이 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어요.

나 이제 '착한' 여자 안 할 거야.

멀티플레이어 그딴 거 개나 주라 그래.

암 이후 제 삶이 그렇게 달라져 버렸어요.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착한' 사람이라 한다죠.

스포츠 기사를 꼼꼼히 읽는 제 짝꿍이 그랬어요.

유상철 선수는 너무 착한 사람이었다고요.

다음 제 관심을 깊이 끈 게 '착함'이었나 봐요.

착한 사람이라 더 많이 뛰는 멀티플레이어였군요.

아.... 당신에 대해 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죠.

축구는 잘 모르지만, 착함에 자꾸 끌렸어요.


멀티플레이어, 그거 '착한' 사람의 특징인 듯요.

저도 삶에서 한 '멀티플레이어' 했거든요.

그게 여성으로서 타고난 재능인 줄 알았더랬어요.

전문가들은 생물학적으로 그렇단 소리도 하죠.

그러나 제가 살며 깨닫게 된 건 조금 달라요.

나는 왜 그렇게 착하게 살려고 애썼을까?

만약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지지 받았다면?

주변을 많이 의식할 필요 없는 환경이었다면,

주변 사람들의 심기와 형편을 내 책임인 양

압박 내지 암시 내지 요구를 받지 않았다면?


제 경우는 '착함'이 곧 저를 힘들게 하는 거였어요.

쉰이 넘어 암수술을 하고 나서 도달한

뼈 때리는 깨달음 같은 거였어요.

착하지 말고 나에게 좀 더 집중하자.

불쾌하면 화내고 내 목소리 내 주장도 하자.

내가 책임질 일인지 아닌지 냉정하게 판단하자.

싫은 건 하지 말고, 멀티로 잘하려 말자.

항상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착함을 버리니 삶의 재미가 넘치다니, 역설이죠.



찬란하게 빛났던 유상철 - 유상철의 질주와 함께 한국 축구는 찬란하게 비상했다. 공격과 수비 모두 능숙하게 해내는 멀티 플레이어로 중추 역할을 했던 그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첫 경기 폴란드전부터 터키와의 3·4위전까지 한국 대표팀이 치른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사진은 유상철이 2002 월드컵 대서사시의 서막이었던 폴란드전에서 후반 쐐기골을 넣고 환호하는 모습. /FA포토스




멋진 축구인 유상철 선수!

삼가 당신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쓰자니,

낯설고 어색하고 죄송스럽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까요.

자꾸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어쩌지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어찌 잊겠습니까.

폴란드와의 예선 경기에서 쏘신 멋진 중거리 골!

폴란드는 제게 아주 특별한 나라였어요.

저희 가족이 그곳에서 6년 살고 온,

친구들이 많은, 제2의 조국 같은 나라죠.

큰애들 둘은 거기서 나서 다섯 살 네 살에 왔고요.

그때, 한국을 응원할까 폴란드를 응원할까

그런 고민을 했을 정도로 특별한 경기였어요.

눈을 떼지 못하고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경기 결과는 한국이 2대 0으로 이겼죠.

승리에 쐐기를 박은 주인공이 유상철 선수였고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유상철이죠.

그 열기와 환호 속에 이름이 제 맘에 각인됐어요.

한국이 이기고 본선 나가게 된 게 너무 기쁜데

폴란드가 져서 더 이상 뛸 수 없게 됐으니

기쁜데 섭섭하고 신나는데 아쉽고 그랬어요.

유상철, 거기 유상철 선수가 있었어요.


이제 더 이상 그 선한 미소를 볼 수 없다니

그 멋진 플레이를 볼 수 없다니 슬픕니다.

그때 4강 신화를 쓴 경기 모습 찾아 보았어요.

너무 멋진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요.

유상철 선수,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선 너무 착하게 살지 말아요.

힘들게 멀티플레이어도 하지 마세요.

너무 수고많았어요. 고생했어요.

거기서는 좋아하는 건 더 즐기고

하기 싫은 건 하지 마시고

몸에 무리되는 것도 하지 마시고

남는 시간에 춤도 추고 놀며 즐겨요.

주변 사람들 너무 챙기려 하지 마시고요.


'착하지 않아도' 욕 안 먹는 세상에서

멀티 하지 않아도 제 몫을 하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축구 실컷 즐기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조의를 표하며,

거기선 착하지도 말고 멀티플레이어도 말고

다른 삶을 즐겨 보시길 거듭 응원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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