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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an 14. 2021

암 전 암 후,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선언, 당연하게 여기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공부



인류 역사를 흔히 BC와 AD로 나누는 기준에 동의하는가?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과, 그가 재림할 때까지로 크게 나누는 기준이다. 개인의 인생에도 나름 BC와 AD가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봤을 것이다. 예수 믿기 이전과 이후로 자기 인생이 달라졌노라고. 또는 5.18과 4.16 같은 큰 사건을 경험하면서 개인의 인생이 그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다는 사람도 나는 보았다. 지금 전 세계가 통과 중인 코로나 19야 말로, 그 이전과 이후로 인류 역사를 나눌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럼 내 인생을 크게 두 시대로 나눌 분기점은 뭘까?


그런 생각 해 봤을 것이다. 내 경우는 생애 주기에 따라 몇 번 있었다. 몸도 마음도 급격하게 자라던 사춘기가 그런 시기였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춘기를 통과해서 더 그랬을 거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엔 사춘기 전후란 게 과연 분명한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다시 사춘기가 올 수도 있겠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된 건 워낙 큰 사건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BC와 AD로 내 인생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정도 인생이 달라지는 분기점은 더 없을 줄 알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며 결혼이란 걸 하고 보니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한때는 그래서 BL과 AL(Before Love, After Love)로, 또는 BM, AM(Before Marriage, After Marriage)으로 내 인생 시대를 나눠 본 적도 있었다. 사랑하자니, 상처를 감내해야 했고, 결혼생활 유지하려니 부조리도 견뎌야 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다 갈아 넣으며, 자기가 사라지는 거 같은 삶, 그거야말로 내 인생의 최대 분기점이었다. 더 이상 이전과 이후가 그렇게 달라질 분기점은 없을 줄 알았다.



최근 나는 내 인생을 나누는 새로운 분기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BC와 AC다. 뜻은 Before Cancer와 After Cancer. 암 이전과 암 이후로, 내 삶은 전혀 전에 가 본 적 없는 길을 가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젠 우스개를 하게 됐다. 이보다 더한 변화 시점은 또 올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그럼에도 내 59년 인생은 '암 이전과 암 이후' 보다 더 크게 시대를 나눌 기준은 찾지 못하고 있다. 예수조차, 사랑도 결혼까지도 암 이전에 알던 게 암 이후 그토록 다르게 보일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



내 인생을 BC와 AC로 나누는 이유를 어찌 다 설명할까. 한살림 이야기가 좋은 예가 될까 해서 쓰고 있다. 새해 나는 매일 경제 관련 글을 조금씩 읽고 있다. 오늘은 <한살림 선언>을 읽고 한살림 이야기를 쓰게 됐다. 한살림 조합원들과 하는 책 모임에서 1월 토론할 책이라 읽었다. 읽다 보니 문득, 경제란 무엇일까,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주식과 금융 말고도 절실한 경제 이야기가 참 많았구나. 대안 경제도, 생활협동조합도 경제 이야기임에 틀림 없었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제 공부가 있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 사회를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듯, 자본주의 체제 안에 살기 때문에 자본주의 문제에 둔감할 수 있다. 한살림 조합원 6년 차에, 한살림 관련 책을 읽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한살림은 알고 보면 태생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며 생긴 거다. 나의 BC와 AC를 생각하는 지점도 거기 있었다. 나는 암 수술 이전엔 익숙한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순응하고 복종하는 사람으로 오래 살았다.



암 수술을 하고 보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스스로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겠는데, 아는 게 너무 없는 게 문제였다. 건강도 몸도 암도, 공부해야 했다. 어디서 무엇을 구입하고 어떤 식으로 먹고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내게 익숙한 것들이 나를 화나게 하고 병들게 한 원인일 수 있었다. 잘 한다고 해 온 것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배신하는 것들이었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새로운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살림을 그런 길목에서 만났다. 내가 동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정신인지, 한살림 정신이며 시스템을 살펴봐야 했다.



암 이전에 나는 그런 건 아주 별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생활협동조합, 특별히 깨어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긴 줄 알았더랬다. 그러나 암이 내 모든 선입견을 넘어가게 해 줬다. 내 몸을 위해 좋은 거라면 뭐든 생각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였다. 책을 보고 자료를 읽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것들 속에 내가 놓친 세상이 많이 보였다. 우리 역사와 종교도 다르게 보였다. 동학 정신과 한살림이 같은 뿌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만큼 우리 역사와 문화에도 무지했다. 동학 혁명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동학 정신이 지금도 살아 있음을 보았다.



한살림을 만든 장일순 선생을 비롯해 수운과 해월을 읽게 되었다. 동학 정신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음에 또 놀랐다. 내가 한살림 조합원으로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건강한 생협에 속해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한살림을 통해 나는 암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데로 가지를 뻗어 갔다. 물품만 소비하지 않고 조합원 활동도 했다. 2017년 연초엔 한살림 조합원들과 '책살림'을 만들고 토론을 했다. 나는 어쩌다 토론 모임 지기가 되어 올해 어느새 5년 차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의심하고 경계를 확장하는 책살림이다.



조합원 활동을 하며 내 삶의 경계가 점점 확장되는 복을 누렸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마음이 더 열렸다. 내가 건강하게 먹고살자면, 생산지도 자연 환경도, 땅도, 유통 과정까지, 다 연결된 문제로 보게 되었다. 땅을 화학약품으로 착취하고 망가뜨리며 생산된 식품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농민을 착취하고 유통업자만 돈 버는 구조에서 싸게 사 먹기만 하면 장땡이 아니잖은가. 그런 식으로 BC와 AC는 내 삶의 실제에서 환경과 지구까지 연결시켜 주었다. 암 전 암 후, 그 분기점에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이 있었다.



암 수술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한살림 조합원이 됐을진 잘 모르겠다.


암 아니었어도 내가 과연 지구 환경을 지금처럼 생각하고 살지, 암 아니었어도 코로나19 시대와 기후 위기를 내 현실 문제로 보았을지 나는 자신할 수가 없다. 암 아니었어도 내가 과연 자연식을 추구하며 땅을 생각하며 건강하게 먹고 살았을까, 자신할 수 없다. 암 아니었어도 농민과 농촌을 생각하게 되었을지 도저히 나는 모르겠다. 암 아니었어도 내가 과연 공장식 축산이며 도축 시스템을 끔찍하게 바라봤을지, 암 아니었어도 그런 고기를 멀리했을지 나는 자신할 수가 없다. 한살림은 거기 있었다.







한살림이 뭐냐고?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도시와 농촌이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농사짓고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와 이들의 마음이 담긴 물품을 이해하고 믿으며 이용하는 소비자가 함께 결성한 생활협동조합이다. 기후 변화와 자연재앙이 날로 심각해지고 시장 개방이 거대한 흐름이 되면서, 우리 농업의 자급 기반을 지키고 건강한 밥상을 차리는 일이 날로 힘겨워지고 있다. 한살림은 생명농업을 바탕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운동을 펼치며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 절제된 소비, 자연과 조화를 이룬 생활문화를 통해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지키는 뜻깊은 생활 실천을 하고 있다.

<한살림 선언> 뒷날개


겸손의 토대 위에서 세상을 넉넉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자, 알뜰함으로 세상의 누구도 굶주리지 않게 하고, 자애 속에서 잘못한 사람조차 안식처를 찾도록 하자는 게 한살림 정신인 거라.

                                                                          1988.9. 장일순


밥이 밥답게, 그리고 공기, 물, 흙, 자연이 자연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온 생명이 제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활동해 나갈 때 생활협동운동, 생명운동, 한살림운동이 제자리를 찾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1990. 1. 박재일



 <한살림 선언>은 1989년 10월 29일 한살림 모임 창립총회에서 발표되었다. 한살림 모임은 유기농산물의 직거래를 매개로 생활동 동체 운동을 펼치는 '한살림 공동체 소비자 협동조합(현재의 한살림)'과 별도로 생명문화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발족했다. 무위당 장일순, 시인 김지하, 최혜성, 박재일 등 주로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회운동가 60여 명이 참여했으며 김민기(가수, 현 극단 학전 대표)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들은 1년여에 걸쳐 공동체 운동과 세계의 협동운동, 환경 위기와 생태주의, 동학을 비롯한 전통사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공부모임을 진행하며 세계사의 흐름을 검토하고, 토론을 통해 정리된 내용을 최혜성이 집필해 <한살림 선언>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살림 모임은 1992년까지 공부모임을 지속하며 무크지 형식의 <한살림>과 <쓰레기로부터 지구를 생각한다>, <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등을 발행했으며 이 책들은 한살림뿐만 아니라 우리라나 생태환경 운동에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한살림 선언> 앞날개







<한살림 선언>(한살림 모임, 한살림, 2020)



이 선언문은 한살림운동이 이념과 실천방향을 확립하기 위해 가진 공부모임과 토론회에서 합의된 내용을 장일순, 박재일, 최혜성, 김지하가 정리하고 최혜성이 대표 집필하여 1989년 10월 29일 한살림 모임 창립총회에서 채택한 것이다.



1. 산업문명의 위기


인류가 자유, 평등, 진보의 깃발 아래 피와 땀을 흘리면서 이룩해 온 오늘날의 문명 세계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반면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키고 나아가서 인류의 생존 기반이 되는 지구의 생태적 질서를 훼손시키고 파괴하고 있다. 일찍이 자연의 주인임을 자처하고 자연을 지배해 왔던 인간이 자연 지배의 도구로 사용했던 기계와 기술에 사로잡혀 하나의 부품이나 계량적 단위로 전락해 버렸다. 오늘날 인간은 삶의 진정한 주체라 할 수 없고 다만 기계의 지배에 조종되는 대상일 뿐이다. 13쪽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산업문명은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사회, 경제, 정치의 영역에서, 전 지구적인 생태계의 영역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물질적, 제도적인 위기일 뿐만 아니라 지적, 윤리적, 정신적 위기이며 인류사상 유례없는 규모와 긴박성을 지닌 위기, 바로 전 인류와 지구 전 생명의 파멸을 의미할 수도 있는 위기다. 18쪽


첫째, 핵 위협과 공포다.

둘째, 자연환경의 파괴이다.

셋째, 자원 고갈과 인구 폭발이다.

넷째, 문명병의 만연과 정신분열적 사회현상이다.

다섯째,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악순환이다.

여섯째, 중앙집권화된 기술관료체제에 의한 통제와 지배이다.

일곱째, 낡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위기이다.

<한살림 선언>19-23쪽



2. 기계론적 모형의 이데올로기


세계의 위기는 자연 파괴, 인간소외, 사회 분열, 경제의 악순환, 권력의 억압, 사상의 혼돈 등의 증후군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인류문화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27쪽


첫째, 과학만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이다.

둘째, 실재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보는 존재론이다.

셋째, 물질과 우주를 기계 모형으로 보는 고전역학이다.

넷째, 생명현상을 유기적으로 보지 않는 요소론적 생물관이다.

다섯째, 인간 정신을 기계 모형으로 보는 영혼 없는 행동과학과 육체 없는 정신분석이다.

여섯째, 직선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이론이다.

일곱째,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반생태적 자연관이다.

<한살림 선언> 29-38쪽



3. 전일적 생명의 창조적 진화


오늘날 인간과 자연은 기계적인 질서 속에서 서로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으며 그들의 참모습, 즉 생명의 모습으로부터 소외되고 있고 그 본성을 억압받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생명에 대한 공동체적·생태적·우주적 각성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각성만이 인류를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문명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의미를 새로운 빛으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46쪽


첫째, 생명은 '자라는 것'이고 기계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둘째, 생명은 부분의 유기적 '전체'이고 기계는 부품의 획일적 '집합'이다.

셋째, 생명은 '유연한' 질서이고 기계는 '경직된' 통제이다.

넷째, 생명은 '자율적'으로 진화하고 기계는 '타율적'으로 운동한다.

다섯째, 생명은 '개방'된 체계이고 기계는 '폐쇄'된 체계이다.

여섯째, 생명은 순환적인 '되먹임고리feedback'에 따라, 기계는 직선적인 '인과 연쇄'에 따라 작동한다.

일곱째, 생명은 '정신'이다.

<한살림 선언> 46-55쪽



4. 인간 안에 모셔진 우주생명


동양 전통사상의 직관적 지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창조하고 계시하는 초월적인 신으로 보지 않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활동 속에서 자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보편적 일자 즉, 우주의 생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59쪽


첫째, 사람은 물건과 더불어 다 같이 공경해야 할 한울이다.

동학사상의 한울님은 사람과 생물 심지어 무기물에까지 내재해 있고 이들을 하나의 생명으로 통합하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해 가는 우주의 큰 생명이라고 한다.

둘째, 사람은 자기 안에 한울을 모시고 있다.

사람은 우주의 거룩한 생명을 자기 안에 모심으로써 우주적 삶을 살게 되고 우주의 마음에 합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울님을 모시는 일은 '안으로 신령함을 지니고 밖으로 기운화함이 있으며 나아가 한 세상 모든 사람 각각이 옮겨 살 수 없는 한울임을 알게 되는 일이다. 시천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셋째, 사람은 마땅히 한울을 길러야 한다.

해월은 한울님이 사람의 마음속에 모셔져 있음은 종자의 생명이 종자 속에 있음과 같다고 하였다. 종자를 땅에 심어 그 생명을 기르는 것과 같이 자신의 마음 밭에 심겨 있는 우주생명, 즉 한울님을 길러야 한다.

넷째, '한 그릇의 밥'은 우주의 열매요 자연의 젖이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한울을 키우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한다. 밥과 곡식은 사람이 노동하여 얻은 결실이라고만 할 수 없고 오히려 우주와 자연의 밭에서 자라난 열매이며 한울과 땅의 젖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사람은 하울을 체현해야 한다.

사람은 한울을 모시고 키우는 자, 즉 시천과 양천의 주체가 된다. 사람은 한울님의 질서를 이 세상에 구현해야 할 사회·윤리적 책임을 지고 있다. 체천은 사람이 한울을 모시고 키우는 주체로서 한울님 다운 도덕적, 사회적, 생태적 행위를 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섯째, 개벽은 창조적 진화이다.

수운과 해월이 말한 바 선천 세계는 생명을 가두고 옮기고 나눔으로써 생명을 죽이는 죽임의 질서라 할 것이다. 생명이 생명답게 되기 위해서는 선천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후천 개벽이다. 그러나 동학사상은 후천 개벽이 인간의 인위적인 혁명으로 성취된다고 생각지 않았다.

일곱째, 불연기연은 창조적 진화의 논리이다.

결국 인간은 '깨달음'을 통해서 인간과 우주,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물질과 정신, 불연과 기연이 통일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시천의 각성이 양천의 실천을 통해 무위이화하는 가운데 개벽으로 전개되는 진화의 문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살림 선언> 63-80쪽



5. 한살림


한살림은 그 세계관에서는 물질, 생명, 정신이 역동적인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우주생명에 통합되어 가고 있으며 인간, 자연, 우주 모두가 동요를 통해 새로운 질서로 자기를 조직하는 생명이라는 점을 감지하고 있는 새로운 과학에서 그 이론적인 전거를 찾고 있다. 한편 한살림은 가치관에서는 한민족의 오랜 전통과 맥을 이어 오고 있는 동학의 생명사상에서 그 사회적, 윤리적, 생태적 기초를 발견하고 있다. 90쪽


첫째, 한살림은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다.

둘째, 한살림은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이다.

셋째, 한살림은 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이다.

넷째, 한살림은 새로운 인식, 가치, 양식을 지향하는 '생활문화운동'이다.

다섯째, 한살림은 생명의 질서를 실현하는 '사회 실천운동'이다.

여섯째, 한살림은 자기실현을 위한 '생활 수양 활동'이다.

일곱째, 한살림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생명의 통일 활동'이다.

<한살림 선언> 91-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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