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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가 냉큼 물어가 버리면 좋겠어!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아이가 되라는 요구, 그건 폭력이다

by 꿀벌 김화숙


<신통방통 제제벨>(토니 로스(지은이), 빈 유리(옮긴이), 베틀북, 2002)




<신통방통 제제벨>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아이를 보여주는 그림동화다.


제제벨은 늘 말쑥한 차림에 옷도 더럽히지 않고, 자기 방도 항상 정리 정돈한다.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바른데, 편식하는 법도 없다. 코도 안 후비고, 목욕도 꼭꼭 하루에 두 번씩 하며, 덜떨어진 친구들을 알뜰히 챙긴다. 이런 아이가 세상에 있다고? 책을 몇 쪽 넘기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묻고 있을 것이다.




제제벨은 알고 보니 노인이었더라. 이런 반전이 기다릴까? 아주 단정하고 품위 있게 늙어가는 노년의 사람을 상상할 것이다. 늦게 글을 배우는 할머니 또는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성인의 이야기로 드러날 것만 같다. 그림을 보라. 제제벨의 외모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 단정한 머리에 좋은 표정, 정장으로 차려입은 옷, 목걸이, 구두까지 신었다.




하지만 아니다. 책장을 계속 넘겨도 제제벨이 노인이라는 이야기는 안 나온다. 어찌나 훌륭한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제제벨. 어느 날 대통령을 직접 만나고 '착한 어린이 대상'을 받는다. 공원에 제제벨 동상이 세워지고 텔레비전 쇼에도 등장한다. 이쯤 읽으면 독자는 또 상상할지 모른다. 꿈 이야기 거니, 누군가의 상상 속 이야기로 곧 밝혀질 것만 같다.




독자를 기다리는 건 뜻밖의 결말이다. 신통방통 나무랄 데 없는 아이 제제벨은 한결같이 살다 어느 날 악어에게 먹혀 죽는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복도 저쪽으로 뛰어갈 때 제제벨은 뛰지 말라며 반대쪽으로 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독자는 미처 준비되지 않은 결말에 마주하게 된다.




이런 황당한 결말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아니, 어딘가 익숙하게 읽히는가? 그건 또 뭐냐고 묻고 있다. 독자는 처음부터 그림동화를 다르게 보기를 시도할 지도 모른다. 그림을 꼼꼼히 살피고 글을 놓친 게 없나 읽을 것이다. 완벽하게 사람들 마음에 쏙 드는 아이 제제벨, 다시 살펴봐도 신통방통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이런 결말일까?






토니 로스(1938년~)는 영국의 만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미술강사이다. 독특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그림책 작가다. 어른들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주 심각하게 여겨지는 문제들을 아이 입장으로 즐겨 다룬다. 네덜란드에서 최고 삽화가에게 주는 ‘실버 페인트 브러시 상’을 세 번이나 탔다. 글이 뛰어난 그림책에 주는 ‘실버 펜슬 상’ 등 영국과 독일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대표작 <골디낙과 세 마리 곰<(1976)을 비롯해 국내에 다수의 책이 소개되었다. <오스카만 야단맞아!>(프뢰벨, 2000,) <학교 안 갈 거야!>(베틀북, 2000), <가족이란?>(미래아이, 2007), <리틀 프린세스 6권>(스크린 에듀케이션, 2016), <지각한 이유가 있어요>(스콜라, 2017) 등이다. 자유분방하고 유머러스한 그림과 기막힌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통방통 제제벨>을 아이의 눈으로 다시 읽어 보자. 어른들로부터 제제벨처럼 되라는 요구를 받는 아이 입장 말이다. 사람들은 제제벨을 칭찬하고 그 모범을 따르라고 알게 모르게 아이한테 요구한다. 그럴 때 아이는 어떤 기분일까? 무슨 생각을 할까? 어른들은 제제벨처럼 살라면 할 수 있는가? 책은 되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낯설고 황당한 결말로 질문하는 책이다.



제제벨을 보고 <사기열전>의 한신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가난하고 미천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능력이 출중하여 한나라 유방의 인정을 받고 장군이 될 수 있었다. 전장에서 백전백승하고 사람들의 인정과 부와 명예를 다 얻었다. 그러나 말로에 유방마저 등을 돌리고 한신은 토사구팽으로 죽게 된다. 엄청난 성공 뒤의 비참한 죽음이란 게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그러나 제제벨과 한신이 비슷한 이야기 주제로 꿰일 수 있는가?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은 두 인물이다. 제제벨은 한신처럼 엄청난 권력을 부린 적도 성공한 적도 없었다. 단지 너무 반듯하게 살려고 애쓴 아이일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다가 시기와 불편의 대상이 됐고,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죽었다고 봐야 한다. 나이와 성별까지 한신과는 너무 다른 점이 많다.




책의 결말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제벨이 악어에게 먹힌 건 벌받은 건가? 누군가에게 닥친 재난과 불행은 그의 탓인가? 호랑이가 물어간 권선징악 옛이야기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읽기의 어려움을 생각하는가? 아이의 자유로운 상상에 한번 맡겨 보자. 아이가 이렇게 고백할지 누가 아는가.




제제벨을 악어가 냉큼 물려가 버리면 좋겠어!




책은 황당한 결말로 질문하고 있다. 제제벨처럼 되라는 요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라는 압박이다. 제제벨을 구 소련의 ‘노동영웅’처럼 활용한 대통령과 사회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진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제제벨처럼 되는 건 가능한 일인가?



답은 No!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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