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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ul 05. 2021

내가 아는 사람이 책을 냈다, <보리의 하루>

창조력의 가장 큰 적은 자기 불신이다, 초딩 작가 이연지를 응원하며

내가 아는 사람이 책을 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작가 데뷔했다.

첫 책을 내고 내게 선물로 한 권 보내왔다.


알고 지내던 사람이 쓴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일생 몇 번이나 될까? 최소한 내 주위에선 많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통해 작가들을 알게 되면서 책 나오는 소식을 접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얼굴과 얼굴로 알고 지낸 경우는 아니었던 거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흔한 경험이 아님에 틀림없다.


거꾸로, 내가 읽은 책의 작가를 뒤늦게 만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겠다. 저자 강의 또는 북 콘서트에서 만나고 악수하고 대화해 보는 기회. 우연히 작가의 강의를 듣게 되는 경우. 거기서 또 책을 사게 되고 작가의 펜이 되어 새 책을 기다리며 읽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내가 읽은 책의 작가와 우연히 만나고 그때부터 '아는 사이'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이 글은 내가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이 책을 냈고, 내게 한 권 보내온 특별한 이벤트 때문에 쓰게 됐다.




주인공은 '초딩이 그린 강아지 만화' <보리의 하루>(이연지, 2021)의 이연지 작가다. 따끈따끈 지난 6월에 책이 나왔다. 내가 아는 사람, 태어났을 때부터 알고, 아기 때부터 이웃으로 아는 청소년이다. 최근 몇 년은 얼굴로는 못 만났지만 온라인으로는 연결된 사람. 작가의 부모와는 대학 선후배로, 같은 단체 회원으로, 그리고 조그만 우리 교회의 일원으로 함께 하던 사이다. 지금은 멀리 경북 울진에 사는 가족이다. 


이연지 작가는 2008년 경기도 안산에서 언니 아래 둘째 딸로 태어났다. 2014년 여섯 살에 부모를 따라 일본 시가현 모리야마시로 이사 갔다. 거기서 시립 모리야마 하야노 유치원을 다니고 시립 하야노소학교에 4학년까지 다녔다. 2019년 교토 타케노사토 소학교를 5학년까지 마치고 2020년 엄마와 언니와 함께 울진으로 이사 왔다. 울진 부구 초등학교 6학년을 다녔고 현재 울진 부구 중학교 1학년 재학 중이다.




작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 한국에 태어나 한글을 겨우 알 무렵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왔으니 언어생활이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초등학교 5학년이면 학습량이 많아지는 시기다. 새로운 적응이 쉽기만 했을 리 없다. 작가의 한국 생활 적응에 함께 한 좋은 친구가 바로 반려견 '보리'였다. 엄마를 졸라 '동생'으로 입양한 강아지였다. 그림을 좋아하는 작가는 보리를 그려 틈틈이 엄마의 블로그에 올렸다.



<보리의 하루>는 모두 42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만화책이다. 크기는 B6로 보통 책보다는 작다. 작가가 6학년 한 해 꼬박 그린 작품이다. 아직 한글 맞춤법에도 서툰게 그대로 보인다. 에피소드 번호가 겹치거나 붕 떠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보리 캐릭터도 그리면서 차츰 모양을 갖춰간다. 그래서 초딩이 그린 강아지 만화다. '어설픈' 아이의 작품에 엄마의 편집이 더해져 예쁜 책이 됐다.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작가의 엄마 '그냥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m.blog.naver.com/csprint1/222420727291





<보리의 하루>에는 강아지 보리 말고도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이 더 나온다. 이름하여 보리의 친구들이다. 우선 작가이자 보리의 주인이며 '누나'인 초등학교 6학년 연지가 있다. '아직은 놀고 싶은 나이. 취미는 자는 거'다. 연지는 이야기마다 보리와 같이 놀고 돌보며 관찰하고 산책하는 누나다. 보리를 대신해 독자에게 미주알고주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이자 보리 대변인도 되고 보리에 빙의도 한다.



보리는 동네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다. 연지가 학교에서 돌아오길 날마다 기다린다. 보리가 만나는 고양이도 이웃 개들도 각자의 스토리로 살아 움직인다. 보리를 짝사랑하는 한 살배기 이웃집 검둥이 까매기, 보리의 워너비이자 모두의 대장인 여덟 살 먹은 흰둥이, 그리고 보리의 베프 일곱 살 강아지 신화가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에피소드 사이사이엔 사진도 있다. 보리를 그린 지 1년, 연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다. 보리는 성인견이 되고 이웃 개와 썸도 탄다.




내가 아는 사람 이연지 작가의 책을 받고 보니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내 책장에는 내가 알고 지내는 작가가 쓴 책이 몇 권이나 꽂혀 있을까? 책이나 영상으로 알게 된 작가 말고 내가 직접 얼굴로 만나본 경우 말이다. 책장을 살펴 찾아보았다. 그리 많지 않았다. 한 작가의 책 여러 권이 있는 경우는 굳이 다 세진 않았다. 책 한 권에 공저자들 여러병이 있어서 얼추 서른 명은 돼 보였다. 얼굴과 얼굴로 알고 지내는 많지 않은 작가 리스트에 이연지 작가가 추가되는 날인 셈이다.




가장 최근 얼굴로 알고 말을 주고받아 본 작가는 누구일까? <나무가 된 아이>의 남유하 작가다. 지난 6주간 내가 신촌 한겨레교육 문화원으로 <페미니즘 SF 소설 창작반>을 다닌 덕분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 두 시간 강의를 듣고 얼굴을 보고 지내는 사이다.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의 창작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고 유익한 만남이었다. 이제 두 강의 남겨둔 상황, 호기롭게 시작했건만, 진짜 작품 하나 쓰고 퇴고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작가를 얼굴로 알게 된 것, 좋은 강의 들은 것, 그리고 페미니즘 SF 소설 장르를 매주 즐긴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경험이었다.




<보리의 하루> 책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첫 이야기는 보리의 똥으로 시작된다. 사람도 동물도 '똥'은 정말 중요한 문제요 삶의 주제 아니던가. 태어나 석 달 만에 입양된 어린 강아지 보리니까 똥 문제가 중요했다. 연지는 보리가 무얼 먹고 어떤 똥을 누는지 아주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대소변을 못 가리는 보리를 위해 준비한 강아지 패드가 15,000원이나 했단다. 어린 시절 시골집 뛰놀던 검둥이 말곤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는 내겐 15,000원이라는 강아지 패드가 새삼 기억에 남는다. 마룻 바닥에 강아지 똥 사진은 실사 보너스였달까.


블로그에서도 본 적 있었지만 에피소드 6은 빵 터지는 이야기다. "우리말을 한번 되돌아봐요"라며 연지는 힘주어 말한다. 사람 언어로 개를 함부로 욕이나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는 현실에 딴죽을 건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강아지 입장에 감정이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왜 죄 없는 개들을 욕으로 삼아 말할까요?"

"인간@#@#$"라면, 인간노잼이라 말하면 좋겠어요?"

"니가 하는 말은 다 개 짖는 소리야."

"개노잼"

"이 개@#@"




<보리의 하루> 덕분에 개들도 꿈을 꾼다는 사실을 내가 처음 알게 됐다. 사람 아기들처럼 강아지도 젖 빠는 소리를 내며 자나 보다. 쪽쪽쪽....  달리는 꿈을 꿀 땐 발을 꼼지락거린다. 기분 좋은 꿈을 꿀 땐 자면서 꼬리를 조금 흔들고 무서운 꿈을 꿀 땐 소리를 내며 울기도 한다. 개들도 소리 내서 방귀도 뀌고 냄새도 난단다. 트림도 한다니 사랑하는 것 어지간한 건 다 하나보다. 아, 친절한 보리 누나 이연지 작가님, 개의 세계를 알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에피소드 10에서 작가는 보리 이야기를 하는 척하면서 실은 자기 속 마음을 보여준다. 초딩이 지는 삶의 무게가 있으니까."보리야 니가 부럽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조목조목 이어진다. 우선 보리는 공부 안 해도 되니 부럽다. 걱정 고민거리가 없는 게 부럽다. 똥 싸고 밥 먹고 자면 되니까 부럽다. 죄가 없으니 부럽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천국 가니까 부럽다.....


"보리야. 앞으로 누난 더 널 부러워할 거야."

"보리야, 앞으로 누나가 니 인생을 탐낼 만큼 많이 많이 잘해 줄게."




에피소드 12는 작가의 일본 생활과 한국 생활이 살짝 비교되어 나온다. 연지는 한국이 좋다, 한국 생활에 훨씬 만족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불편한 자세로 앉아야 했고, 재미없는 걸 재미없다고 말하지 못했단다. 그리고 일본인 한국인, 그런 차이로 인한 불편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일본에 있었을 땐 나만 다른 사람 같았는데 한국에 있으면 다 똑같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난 한국인이고 난 자유롭게 살아갈 거야."




<보리의 하루> 20화 기념 특별판도 있다. 중간에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었단다. 왜 아니겠어. 꾸준히 글쓰기하는 사람들은 안다. 계속 쓴다는 게 얼마나 큰 노동인지를. 20화까지 계속 달려온 기념으로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고백한다. 그림 그리는 과정을 네 단계로 소개도 한다. 1. 테마를 정한다. 2. 그린다. 3. 그림을 엄마 폰으로 보낸다. 4. 블로그에다 올린다. 완성. 독자를 위한 특별 보너스로 다양한 보리 스타일에 보리 배경화면도 방출한다.



어떤 날은 이런 고백을 하기도 한다.


"오늘 시간이 별로 없고 주제가 안 떠올라서 이렇게 했습니다. 재미없었으면 죄송합니다."



소재 고갈로, 뭘 쓸지 알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내는 게 작가다. <보리의 하루>도 그런 과정을 통과하며 탄생한 작품이란다. 독자로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책이 나오기까지 고뇌와 끈기와 땀으로 수고한 작가와 엄마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교생활이란, 얼마나 공부 스트레스를 받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위해 시간을 내는 작가가 자랑스럽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


브런치 작가들과 교류하며 내가 좋아하게 된 말이다. 작가, 거창할 것 없다. 글을 쓰니까 작가다. <보리의 하루>를 그리고 책으로 냈으니 이연지는 작가다! 이 작은 시작을 하찮게 보는 자, 눈을 뜰지어다. 성장하면서 이연지 작가는 이 작은 경험이 자기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자신의 언어로 말하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문장으로 다시 한 번 응원하고 싶다. 그림에도 만화에도 해당된다.



인생의 모든 것은 글로 옮길 수 있다. 그것을 쓸만한 외향적인 용기와 즉석에서 쓸 수 있는 상상력만 있다면. 창조력의 가장 큰 적은 자기 불신이다.


어느새 <연지의 하루>로 후속작을 그리고 있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파도타기 연애' 에피소드 정말 정말 재미있다. 댓글 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자기표현력, 상황 판단력, 삶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솔직직담백함이 빛나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창조력의 가장 큰 적은 자기 불신이다. 뭐든, 모든 걸, 글로, 그림으로 그렇게 옮겨 버리길 뜨겁게 응원한다.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이연지 작가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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