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아들 수다쟁이 아들 단원고 2학년 7반 고 곽수인을 기억하며
다정한 아들 수인아!
수다쟁이 아들 수인아!
나는 지금 수인이 엄마 마음으로 네 이름을 부르고 있단다.
너를 '다정한 아들'이라 부르고 보니, 더욱 그리워지는구나. 네 몸의 온기를 느끼며 안고 만지고 네 숨결을 느끼고 싶구나. 수인아. 네 약전의 제목- "다정한 아들이 될게요, 언제까지나" -이 또 가슴을 울리는 거 있지. 엄마에게 다정한 아들아! 언제나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 마음을 알아주던 아들아. 엄마와 말하기 좋아하던 수다쟁이 아들아!
네가 엄마에게 다정한 아들이 되겠다 결심한 계기가 있었지. 엄마의 동생, 그러니까 사랑하는 네 이모가 많이 편찮으시다 세상을 떠나셨어. 어린 사촌 셋을 남기고 말이야. 한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던 이모였지. 엄마가 이모를 마지막까지 돌보실 때, 중학생 소년 너는 인생의 아픔에 깊이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지. 상실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겪으며, 너는 엄마의 슬픔까지 깊이 껴안더구나.
이모가 돌아가신 후 한 달 만에 수인이는 이모를 꿈에 만났지. 꿈속에 이모와 너는 부탁을 주고받더구나. 그 꿈은 네 삶에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고 말이야.
"엄마, 이모가 부탁했던 것처럼 앞으로 언제까지라도 엄마의 다정한 아들이 될 거예요.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을 많이 하는 아들이 될게요. 어떤 일이라도 엄마에게 모두 털어놓을게요. 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이제 그만 슬퍼하세요. 엄마의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제가 덜어드릴게요. 저는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해요. 사랑해요."
너는 정말 결심대로 하더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렴. 우리 사회엔 이상한 편견이 있잖아. 다정한, 수다쟁이, 이런 말은 여자한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무뚝뚝함, 말 없음, 이건 남자니까 그렇다는 식 말이야. 내 주위에서도 사춘기 지나면서 아들이 무뚝뚝해졌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심심찮게 봐. 심지어 남자는 과묵한 게 남자다움으로 인정받기도 하잖아. 수인이 아빠도 네가 '남자답게' 과묵하길 바라셨다니, 이해되고말고.
수인아, 그런데 넌 그런 통념에 갇히지 않았구나. 정말 여자는 다 다정하고 수다쟁이일까?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게 진정 남자다움일까? 너를 알게 되니 그런 질문이 꼬리를 물어. 생각할수록, 그건 더도 덜도 아닌 성차별적인 편견이고 고정관념이란 걸 인정하게 되네. 다정한 수다쟁이 수인이 덕분에 말이야. 너는 고정관념을 깨며 멋진 어른이 되었을 거야. 세상은 계속 변해가는 거라며, 다만 너답게 사는 너, 참 멋있어 수인아!
엄마는 첫아이를 잃고 10년을 기다려 너를 얻었구나. 온 집안 어른들이 얼마나 너를 반기고 귀히 여겼겠니. 어릴 때 순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지. 너보다 작은 아이한테 맞고 올 때가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왜 맞고 오냐 묻는 엄마에게 네가 한 대답이 참 놀랍더구나. "내가 때리면 그 앤 엄청 아플 거예요." 너무 작아 못 때렸다고 했지?
그럼 때리지 말고 막아라. 네가 가만히 맞고 있으니까 만만히 보는 건지도 몰라.
세상에 놀라워라! 작은 아이라 못 때린 너도 놀라운데 엄마가 하신 말씀이 또 놀라웠어. 너는 태권도복 입은 아이에게 공격당하던 날 엄마의 그 말을 떠올렸지.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맞지도 않았구나. 너를 치려는 그 아이 손을 네가 왁살스럽게 붙들었을 때 그 아이는 순순히 항복하고 말았지. 그래, 그 일로 너는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키는 중요한 원칙을 알게 됐어. 그건 네 철학이 되더구나.
"약한 자에겐 관대하게 대하고, 강한 자에겐 당당하게 맞설 것."
초등학교 때 좀 포동포동한 너를 어떤 아이가 '뚱뚱이'라 놀렸다며?
너는 큰 충격을 받고 스스로를 돌아보았지. 기분 나쁘지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너는 몸을 바꾸기로 결심했지. 좋아하던 간식을 다 끊고 운동을 열심히 하더구나. 한창 먹고 싶을 때 다이어트란 게 얼마나 힘든 일이니. 결심대로 1년 뒤 너는 날씬한 몸이 됐어. 너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해내더구나. 너는 그렇게 단단하게 자라갔어.
중학교 때부터 너는 저녁마다 엄마랑 농구를 열심히 했어. 주말이면 아빠와 함께 집 근처 초등학교로 가서 달렸지. 넌 농구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운동에 소질이 있었잖아. 유도, 골프, 축구, 야구에도 탁월했어. 와~~ 네가 운동선수 되길 바라신 아빠 맘이 완전히 이해돼. 고등학생이 됐을 때 넌 키 185센티에 나무랄 데 없는 신체조건이었어. 단단한 네 내면과 몸이 너무도 조화롭게 자라, 넌 정말 멋진 어른이 됐을 거야.
수인아! 내 안에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뭔지 알아?
아들에게 운동을 가르칠 수 있는 엄마, 엄마에게 운동을 배우는 아들 말이야. 다정함 무뚝뚝함 외에도 운동을 둘러싼 성별 고정관념도 참 많잖아. 운동은 결코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란 걸 엄마가 보여줬어.
나는 걷기 빼곤 잘하는 운동이 하나도 없단다. 나름 운동을 좋아했건만,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어. 여학생에게 운동을 권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어. 여자는 남자들 운동하는 거 지켜보며 응원하는 분위기. 상상이 가니? 그렇게 나이를 먹고, 세 아이를 키워보니, 난 참 아쉬운 엄마더구나.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운동이 하나도 없는 거야. 애들하고 같이 논다는 게 늘 힘이 달렸다면, 믿어지니? 운동은 무조건 아빠가 가르치게 되더구나.
농구 선수 출신 수인이 엄마는 내게 참 멋있고 부러운 분이야. 와~~수인이도 엄마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멋지다. 엄마가 농구를 가르치신 게 난 너무나 인상적이었어. 엄마가 청소년 아들의 농구코치에 영양사에 매니저를 할 수 있다니! 엄마와 수인이가 저녁마다 농구 연습을 하는 장면. 땀에 젖은 모자가 돌아오는 장면. 씻고 나와 엄마표 간식을 맛있게 먹는 아들..... 모두 아름답고 보고 또 보고 싶은 명장면들이야.
난 수인이 엄마를 뵐 때마다 고개가 숙여져.
너를 보내고 엄마의 지난 7년이 어떤지 알지? 얼마나 아픈 시간이었겠니. 너를 단단하게 키우신 엄마지만, 엄마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지. 그러나, 엄마는 결국 단단해지셨지. 네게 농구를 가르친 엄마, 남을 다치게 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가르쳐 준 엄마잖아. 너의 기억을 지키는 싸움을 엄마는 잘 하고 계셔. 올해도 극단 '노란 리본'의 <기억 여행> 연극으로 엄마는 무대에 서셨어.
다정한 아들 수인아!
날씨가 많이 더운 요즘이야. 며칠 전 광화문에 나가 봤어.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 공간'을 서울시에서 철거하겠다고 해서 시민들이 저지하고 지키고 있었거든. 너희들의 흔적을 그렇게 지울순 없잖아. 광장이 완전히 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기억 공간 지붕만 조금 보이더구나. 그 안에서 몇 사람이 들고 있는 피켓이 간신히 보였단다.
7월 27일에 기억 공간은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 결정됐어.
꽃누르미 작품이며 너희들 사진과 전시물과 기록물은 시의회 1층 전시관에 임시 보관하고 전시하기로 했대. 기억 공간은 철거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거래. 단 처음 참여한 건축가, 시공사와 416가족들이 함께 공간 해체작업을 한대. 안산(4.16가족협의회)으로 옮겨 보관하고 이후 어떻게 할지는 계속 서울시와 협의해 갈 거래. 이 과정에 참 많은 시민들이 연대했구나.
나는 뉴스로만 지켜보다가 광화문 현장을 한 번 들러본 정도란다. 기억의 현장을 지킨다는 게 참 어렵구나 수인아. 7월 28일 세상을 떠나신 박종필 감독님 4주기였어. 세월호 현장을 지키며 영상기록하다 49세 젊은 나이에 떠난 게 벌써 4년 전이구나. "기록으로 저항하라!" 그를 추모하는 현수막 문장이 요즘 매일 떠오르는 거 있지.
기억 공간과 416TV가 기록으로 저항하길, 간절히 응원한다. 416기억교실과 기억 저장소, 416민주시민교육원, 그리고 안산 416시민연대, 416가족협의회, 그리고 내가 속한 416합창단, 별을 품은 사람들..... 416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되는 그날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기록하며 한걸음씩 앞으로 가겠지. 나도 작은 손 잡고 함깨 할게.
보잘것없지만 이런 편지 글쓰기로 너를 기억하는 이 시간이 참 좋구나.
다정한 아들 수인아!
"그럼 때리지 말고 막아라!"
우리 그렇게 살자꾸나. 다정하게 수다 떨며, 함께 막아주며 기억하며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