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담론>(신영복, 돌베개, 2015)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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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일요일 오후, 안산 문예당 별무리극장에서 연극 <기억여행>을 봤어.
연극 대사 중에 신영복 선생의 문장이 등장하더구나. 반가워서 책으로 확인하고 옮겨 적어 봤어. 입장의 동일함이란 어떤 걸까? 관계의 최고 형태라는구나. 그래, 좋은 관계는 발로 맺는 거로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 <기억여행>에도, 엄마들을 따라 발로 걸어가는 사내가 등장하지. 부모로서 결국 같은 입장에 서게 되고 말이야.
아 참! <기억여행> 소개를 해야겠지? 응응, 하려던 참인데, 태범이 도움을 받고 싶어.
어제 내가 연극을 보며 많이 울어서 지금도 목소리가 떨릴 거 같아. 안정된 네 목소리 좀 빌려줘. 넌 아나운서 목소리로 뭐든 생중계를 잘 하잖아. 넌 글로도 말로도 아나운서처럼 했지. 2011년 2월에 열흘에 걸쳐 넌 큰누나에게 편지 쓴 거 봐. 열흘 간 10,000자 편지 쓰기. 와~~ 대박이었어. 그 속에도 태범이의 아나운서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어.
그래서 말인데, 태범이의 멋진 아나운서 목소리로 <기억여행>을 소개하면 어때? 한 번 해 줘. 부탁해~~
"여기는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별무리극장입니다. 어제 오후에 이어 오늘 오후 4시 16분 <기억여행>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습니다. 지금 막 눈물의 공연이 끝났습니다. 유경근(예은 아빠)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님이 잠시 무대인사하는 배우들 사이에 섰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일은 엄마들이 다 하십니다. 최고입니다!" 맞는 말씀 하셨죠? 이제 배우들이 극장 로비로 나와 꽃다발을 받고 관객들과 담소를 나눕니다. 기억여행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포옹하고, 분위기가 아주 훈훈하네요. 관람 소감을 적는 분들의 표정이 진지합니다. 네, 나가며 노란색 기념품을 받아 가네요. 배우와 포옹하며 서로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있고요.... 지금까지 아나운서 인태범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인태범이었습니다!"
우와~~ 바로 이거였어! 살아있는 감동이야. 맞아. '노란리본'은 7년 전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단원고 엄마들과 생존자 엄마들로 구성된 극단이지. 그동안 거리에서, 광장에서, 쉼없이 싸워온 가족들의 이야기가 연극이 됐어. 2016년 창단 첫 작품 <그와 그녀의 옷장>을 시작으로, 2018년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2019년 <장기자랑>, 그리고 올해 네 번째 기획 작품 <기억여행>까지 왔어. 나도 매번 울고 웃으며 재미있게 보는 팬이야.
<기억여행>에 누가 등장했는지 알아? 열일 하시는 416가족협의회 엄마들이지. 김명임( 7반 곽수인 엄마) 김도현(7반 정동수 엄마) 김순덕(1반 장애진 엄마) 박유신(3반 정예진 엄마) 박혜영(3반 최윤민 엄마) 이미경(6반 이영만 엄마) 최지영(6반 권순범 엄마). 7명 엄마들이 각자의 중심 배역에다 작은 역까지 모두 합쳐 17명의 등장인물을 연기했단다. 무대도 소품도 단순한데, 어쩜 그렇게도 연기를 잘 하니? 너무너무 재미있고 감동이었어.
이번 작품의 큰 특징이 뭔지 아니? 노란리본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거야.
노란 리본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고 늘 달고 다니며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잔하. 분명 노란 리본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중요한 상징인 건 부인할 수 없지. 7주기가 지나도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나도 답답하고 무거운 맘이야. 노란 리본도 이걸 보고 있을 수만 없었던 거야. 신비한 능력을 발휘해서 노란 리본이 관객을 시간의 역방향의 기억 여행으로 데려가는 이야기야.
여행의 마지막은 어디였을까? 그래 맞아. 2014년 4월 15일이야. 그날 세월호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들은 투사 이전에 그저 한 아이의 부모였지. 일상에서 만나고 스치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고. 전화 자주 해라. 안전 조심해라. 발냄새나니 양말 더 가져가서 자주 갈아 신어라..... 잔소리가 아니라며 아이들을 챙기는 평범한 엄마들이지. 여행 떠나는 아이에게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서 있는 엄마들. 그렇게 연극이 끝났어.
노란리본(이미경, 6반 이영만 엄마)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2014년 4월 15일 아침을 매일 꿈꾸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일상이 너무도 그립습니 다. 진실을 찾아가는 미로처럼 긴 여정에 여러분들이 함께여서 용기를 내어 또 한걸음 내딛습니다.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란 리본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태범아
2014년봄으로 함께 기억 여행 가자꾸나.
너와 함께 발로 다니며 같은 입장에 서는 여행 말이야. 엄마와 넌 어떻게 인사하고 헤어지더라? 넌 누나들과 엄마 아빠에게 수학여행 출발 생중계를 하며 가고 있니? 엄마는 어떤 옷을 입고 계시지? 엄마와 뽀뽀하고 한참 손을 흔들어? 수학여행 떠나기 전 주말로도 가 보자. 너와 엄마 그리고 큰누나가 네 옷 사는구나. 넌 스스로 옷을 잘 고르지. 네가 모아둔 용돈으로 옷 값을 내네? 넌 엄마 옷도 고르라고 하는구나. 나중에 돈 벌면 사달라고 엄만 사양하지. 소용이 없구나. 엄마가 못 이기는 척 티셔츠를 고르고 네가 돈을 지불하는구나.
태범아~ 추억의 그 옷 말이야. 엄마 티셔츠, 어떤 무늬 어떤 재질과 디자인이었는지 넌 알아보겠니? 그 봄의 풍경엔 아빠까지 다섯 식구가 다 있어 참 좋지? 그땐, 아빠도 건강하셨잖아. 태범아, 너를 그렇게 보내고 아빠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셨잖아? 그해 너 없는 네 생일 10월 14일을 아프게 보낸 후 10월 26일, 아빠는 담도암으로 네 곁으로 떠나셨지. 태범아, 아빠와 함께 잘 있는 거지? 엄마와 두 누나와 자주 기억 여행을 하자꾸나.
엄마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는지 알지? 엄마는 416합창단에서 널 그리며 노래하고 계셔. 수학여행 전 주말에 태범이가 사 준 그 티셔츠 입은 모습을 보고 싶구나. 엄마를 만나면 내가 꼭 부탁할거야. 하나뿐인 아들 태범이와 아빠를 한 해에 떠나보내신 엄마. 엄마가 어떻게 견뎌내고 계신지 알지?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엄마는 그렇게 간절히 노래하시는구나. 교복 입은 태범이가 와서 엄마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 생각만 해도 좋구나.
태범아, 엄마가 합창단 이야기 책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에서 네 이야기를 하셨지. 여전히 열여덟 교복 입은 소년 태범아, 너무너무 그립구나. 엄마의 목소리 들리지?
사랑하는 우리 아들 태범아! 엄마는 계속 나이가 들어가는데 넌 여전히 열여덟 교복을 입은 소년에 머물러 있구나. 태범아 못해 준 게 많아 미 안해. 다음 생에도 내 자식으로 태어나 줘.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