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Aug 04. 2021

해변에서 멍 때리기 어떤가요?

멍 때리기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마친 어떤 휴가 이야기



해변에서 멍 때리기 어떤가요?

8월 첫 주 월요일 이른 아침, 휴가를 출발하는 내 마음에 꿈틀거린 질문입니다. 2박 3일간 쫓기지 않게 편안한 여행을 그리면서 말이죠. 코로나 시대잖아요. 사람 사는 모양이 참 궁금한 요즘입니다. 길 떠나서 영덕 친정, 밀양 시가, 1박씩 하며 오가며 기분 따라 머무르고 쉬기로 했거든요. 해변에서 멍 때리는 시간도 갖고요. 첫 휴식으로 금왕휴게소 뒷산을 오르며 비에 젖은 아침 숲과 매미소리 새소리를 즐기고 갑니다.



비 소식이 있어 휴가 첫날은 우산과 함께 보내겠구나, 각오하고 나선 길입니다. 그러나 비는 금방 스쳐 지나가고, 대신 여름 하늘과 흰 구름이 끝없이 변신하며 달리는 우리와 동행해요. 이른 아침 출발했으니 중간중간 멈춰가며 두리번거리며 쉬엄쉬엄 동쪽으로 달립니다. 도로는 붐비지 않고 좋습니다.



여행 경로는, 안산에서 울진까지 동쪽으로 달립니다. 그다음 울진 불암사 계곡길을 달리며 산과 계곡과 하늘을 즐깁니다. 울진 동해 해변길을 따라 남쪽으로 구비구비 달립니다.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산과 들과 마을인 길이 참 좋습니다. 그렇게 남쪽으로 영덕까지 가서 동창생 누나네서 영덕복숭아를 사기로 합니다. 둘째 날엔 밀양을 가며, 그리고 수요일은 남해 쪽을 돌아보며 돌아오게 될 그림입니다.



여행 중에 휴게소 말고 밥 먹을 곳 찾기 만만하지 않더랍니다. 특히 국도변인 경우, 더 쉽지 않네요. 폐점한 식당도 제법 있네요. 다행히 챙겨간 과일로 차에서 요기를 하고 울진에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후포시장 들러 모자 하나 사 쓰고 갑니다. 쓰고 온 챙모자 이마 둘레 와이어가 툭 부러지지 뭡니까. 태양과 바다를 즐기자니 모자 없인 아무래도 무리겠죠. 맘먹고 병곡 고래불해수욕장 주차장으로 들어갑니다.



고래불, 이름대로 해수욕장 입구엔 전에 못 보던 고래 조형물도 있고 주변이 참 깔끔하게 정비돼 있네요. 방역은 당연히 잘 지켜지고요. 이곳 해변 모래가 이리 넓고 고왔구나, 이렇게 멋있는 곳이었구나, 재발견하는 시간이네요. 고향이 근처라 별 생각없이 지나쳐 보던 곳이었거든요. 이번처럼 여유 있게 와 보긴 처음이죠. 코로나에도 그러나 갈매기들만은 서로 가까이 날고 쉬는 모습을 보는데 내 맘이 왜 뭉클해질까요?



맨발로 바닷물과 백사장을 느끼며 걷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오감이 다 깨어나고 시심이 살아납니다. 애들 어린 가족들이 이곳 주 고객인 게 새삼 보이네요. 코로나 시대라 사람 많지 않은 곳을 찾았겠죠? 텐트며 캠핑카들이 오는 동안 많이 보였어요. 사람이 바글거리지 않는 게 좋네요. 그래서일까, 바다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와요. 너무나 깨끗하고요. 여유 있게 맨발로 천천히 바다를 느끼며 걷고 또 걸었어요.



내 생애 휴가철 동해바다에서 이런 여유로운 숨을 쉬긴 처음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쪽도 평소 이맘때 풍경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한가해 보이고 차분하답니다. 구름이 살짝 가려줘서 미친 듯 무덥진 않아요. 공기는 상쾌하고 바닷물도 딱 좋게 미지근하고, 모래도 어쩜 이리 걷기 딱 좋게 따끈한지요.



해변의 파라솔들도 나날이 업그레이드를 거듭해 깔끔하고 세련되게 정돈돼 있네요. 격세지감이라 할까요. 해수욕장에 너무 오랜만에 온 건가 봐요. 모든 게 맘에 들고 보기 좋아요. 저 멀리 보이는 등대며 고래조형 전망대도 맘에 드니 안 올라가 볼 수 없죠. 수영할 계획 없이 왔는데 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갈까 여러 번 망설일 정도로 기분 좋네요. 사람들이 다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즐기는 걸 구경하는 맛도 좋고요.



혹시 멍 때리기 좋아하나요? 해변에서 멍 때리기는 어떤가요? 아니, 요즘 멍 때릴 시간이 좀 있긴 한가요?

저만치 바다를 바라보며 멍 때릴 수 있는 자리가 보이네요. 잔디밭과 주차장을 등지고 앉아 멍 때리라 권하네요. 모자 쓴 소년과 강아지 한 마리가 떨어져 앉아 있는 조형물이 보기 좋죠. 맨발로 올라가 앉는 이 여행자에게 곁을 주는 강아지가 참 고맙죠. 오래간만에 해변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 보았네요.



멍 때리기는 시간을 잊고 해야 맛이죠. 그런데, 일어나야 하네요. 실은 서울에서 부고 전화를 받았거든요. 이렇게 되면 오늘 저녁 친정어머니와 자고 내일 바로 안산으로 돌아가게 생겼어요. 고래불 해변을 나와 다시 남쪽으로 바다 곁을 달려요. 내 고향 영해 대진해수욕장을 내리지 않고 지나고 사진과 축산까지 계속 바닷길을 달리죠. 옛 친구들과 왔던, 추억 있는, 사람 사는 마을의 정겨움을 느끼며 바닷길을 달려요.



구비구비 해변길을 계속 달립니다. 지도만 보면 동해 안는 서쪽 바다에 비해 해안선이 직선처럼 보이죠. 그러나 가까이 다니면서 보면 동해도 나름 들고 나는 그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알죠. 숙덕처럼 둘이 천천히 다니는 여행자들은 동해 해변이 구불거리며 품을 내주는 걸 그윽하게 즐길 수 있답니다.



영덕읍이 가까워 오는 바닷가에 숙덕은 또 한 번 멈춰 섭니다. 갯바위마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거예요. 사람 구경 바다 구경에 빠져보는 거죠. 뭐가 보일까요? 낚여 올라오는 게 물고기만 아니랍니다. 바위틈에 기어 다니는 작은 게들을 낚아 올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갯바위를 기어 가까이 다가가 구경합니다. 두 시간 정도 갯지렁이 미끼로 낚은 거라며 어르신이 자랑스럽게 보여주네요.



꼼지락거리는 게가 미끄러운 스테인리스 통 벽을 기어올라가지 못하고 갇혀 있네요. 미끼를 앞발로 잡아채는 순간 낚시꾼은 끈을 잡아당깁니다. 그러면 게는 바위틈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 발을 동원해서 버팁니다. 그러나 먹이를 놓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낚여 올라옵니다. 이렇게 잡은 게들을 가져가면 손자들이 너무 좋아한다네요. 손자들한테 잘 보이려니 조금은 위험한 짓을 한다며 어르신이 웃네요.



영해면에서 베란다에 꽃이 요렇게 이쁘게 핀 집에 우리 어머니가 사십니다. 자세히 보면 키 큰 목화에 꽃이 조롱조롱 탐스럽게 매달려 있어요. 꽃이 피고 나면 솜이 열리죠. 작년에 서울에서 심어 봤지만 어머니 거만큼 예쁘게 자라지도 꽃이 피지도 않았더랬죠. 우리 어머닌 정말 화초를 잘 가꾸시죠. 토마토도 있고 가지도 주렁주렁 열린 게 보여요. 이 예쁜 꽃들 볼 시간이 길지 않은 게 참 아쉽습니다.



친정어머니와 짧은 1박, 눈도장만 찍고 화요일 아침이 밝았네요. 전화 통화로만 확인 안 되는 안부를 직접 확인한 데 의미를 두고 떠납니다. 노모 혼자 생활한다는 참 말이 안 되는 상황 아닌가 해요. 급할 때 보호자 할 자식이 가까이 하나도 없다는 것. 다니러 와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고 가는 딸입니다. 이번엔 더구나 계획 수정이 불가피한 휴가가 되네요. 밀양 시어머니한테 가는 건 미뤄지고 맙니다.



큰아들과 며느리가 다니러 오는 줄 알고 기다리던 시어머니는 아쉬움이 크죠. 다음 주 다시 시간을 내서 내려가기로 할 수밖에요. 이제 안산으로 출발해서 동해안을 다시 달립니다. 안산 도착하면 씻고 옷 갈아 입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야 하죠. 코로나 때문에 밤 10시 이후엔 조문을 받지 않는다는군요. 그러니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어머니가 싸주신 찐 옥수수 먹으며, 돌아가는 길도 여행은 계속됩니다.



계획이 변경되든 경로가 수정되든 여행은 즐겁습니다. 달리며 떠오르는 벗들에겐 소식도 날리고 사진도 찍고 할 건 다 하며 달립니다. 삶이란 게 알고 보면 여행이잖아요. 계획대로 하는 여행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길 때, 여행 맛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되니까요. 울진 방향 북쪽으로 달리다 숙덕은 망양휴게소에서 마지막으로 동해바다를 한 번 더 마음에 담고 가기로 합니다. 아침 커피도 한 잔 마십니다.



망양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휴게소라 해변 풍광이 죽여주죠. 바다 쪽으로 뻗어 나온 데크로 걸어가면 발아래 아찔한 바다와 바위와 파도가 일렁인답니다. 멀리 해안선과 수평선이 탁 트이고요. 이곳에 서면 무조건 환호하고 싶어 져요. 남쪽으로 봐도 북쪽으로 봐도 바다, 봐도 봐도 바다는 들어오라고 부르는 거 같지 않나요?



영해 출발 후 7시간 걸려 안산에 도착합니다. 씻고 좀 쉬었다가 옷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출발하는 숙덕입니다. 코로나 속 장례식장이라 조심스럽지만 함께 하고자 합니다. 장례식장 밥도 먹습니다. 유가족들 곁에 머물고 싶어 수다 떨며 앉아 고인에 대한 이야기도 듣네요. 7년 전 친정 아버지 장례식 기억이 나고, 홀로 남은 어머니도 떠오릅니다. 생전 뵌 적 없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땅의 삶이란 정말 잠깐의 여행이구나, 다시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혜화에서 자고 수요일 낮 장례식장에 다시 가 발인에 함께합니다. 벽제 승화원까지 장례차 타고 동행하고요. 고인의 부인과 수다로 사귈 수 있어 감사하네요. 화장 후 유택동산에서 산골 하는 과정을 나는 오늘 처음 보았어요. 유골함을 남기지 않는 장례문화, 생각해 보던 주제가 마음에 질문으로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유골함, 고인을 화장하고 남은 뼛가루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화장장에서 바로 산골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장례차를 타고 오가며 숙덕은 많은 이야기를 하겠죠. 우리는 가까운 사람 산골 경험이 아직 없습니다. 화장 후 뼛가루 상자를 따로 보관하는 것만 많이 본 거죠. 유골함을 집에 두면 왜 안 되지? 굳이 납골당에 둬야 하나? 그러게. 유골함도 종내는 처리하고 버려질 거잖아. 지금이냐 나중이냐 차이겠지. 결국 남은 자들의 고민이겠지. 이별에 시간이 좀 필요한 것. 산골은 대안이 될까... 이렇게 숙덕의 어떤 2박 3일 휴가가 저물어 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순 소박한 자연식 밥상 Vs 자취생 요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