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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Aug 08. 2021

두 번 봐도 잘 모르겠다 <블랙 위도우>

낯선 장르 영화 도전하기, 호기심과 절망으로 뒤죽박죽이었다

<블랙 위도우>가 나의 '절망 영화'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다. 엊저녁 딸과 함께 봤다. 지난 주 안산에서 나 혼자 한 번 보고, 오늘은 서울에서 두 번 째 봤다. 아, 우째 두 번 봐도 잘 모르겠다. 심지어 졸았다! 그럼 말 다 한 거 아냐?


역시 마블 유니버스는 나 혼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세계다. 넓고 넓은 영화의 세계여, 이건 뭐 넘사벽이다. 호기심 반, 낯선 장르 개봉 영화 보기 반으로 덤볐다. 한 번 볼 땐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다시 보면 읽히리라. 두 번 보고 영화관을 나올 때, 나는 뭘 봤는지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야속한 마블이여 <블랙위도우>여!


지난주 나 혼자 볼 땐 최악은 아니었다. 잘 만든 영화라는 느낌 있었다. 공허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두 자매의 연기며 나름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이제 딸과 한 번 더 보면 토론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딸의 눈을 빌어 내가 모르는 마블 세계를 알게 될 기대로 신나기까지 했다. 우리 딸이 워낙 좋은 선생이요 토론 상대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뿔싸, 영화 전에 먹은 맛있는 저녁과 맥주 한 잔에 탓을 돌려 버리자. 영화 초반부터 졸음이 쏟아지는 걸 이길 재간이 없었다. 처음 혼자 봤을 땐 스토리를 어지간히 따라간 거 같은데, 이번엔 졸고 깨고 하다 보니 뒤엉키고 엉망이었다. 두 번 봤다고 말하기조차 무색할 지경이었다.



딸이 그나마 영화의 중요한 코드와 마블 세계관을 짚어주었다. 나타샤는 시리즈 상 이미 죽었단다. <블랙 위도우>는 시간 상 죽기 전 이야기를 하는 스핀 오프에 속한단다. 그렇구나. 이 시리즈에서 내가 본 작품이 몇 개나 되더라? 겨우 몇 손가락 꼽을 정도 아닌가. <캡틴 마블>이 그 중 좀 이해하며 본 기억이 난다.


아, 그랬구나. 그래도, 나도 좀 더 알고 싶다. 이건 아니다. 나는 꼭 한 번 더 보고 다시 딸과 토론하겠다 다짐한다. 이런 멋진 영화 앞에서 어떻게 졸 수 있겠냐. 그러게 말이다. 딸이 다운로드해놓은 파일 있는데도 지난 시리즈들 보기 엄두를 못 냈더랬다. 좋아. 못 하란 법 없지. 도전할까 보다. 콜?


내겐 호기심과 절망으로 뒤죽박죽된 <블랙 위도우> 보기였다. 딸의 감상을 나는 다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그냥 듣기도 바빴지만 막판에 집에 돌아와서는 아주 조금만 타이핑해 봤다. 딸의 목소리 맛보기다.






나타샤와 옐레나 두 자매 가족 관계가 감동적이었어. 나타샤랑 옐레나는 위장 가족에서 자매 역할극을 했잖아. 레드룸이 오하이오 작전을 위해 스파이로 보낸 위장 가족의 일원일 뿐이었지. 옐레나는 너무 어려서 자기에게는 그게 진짜 가족이었어. 다른 가족들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어 마음 아파했는데, 나중에 모든 거 끝난 후에 나타샤가 옐레나 안아주면서 말하잖아. 나에게도 진짜였다고.


그렇더라. 가족은 결국 혈연이냐 아니냐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느꼈어. 자매뿐 아니라 엄마 아빠도 다 작전에 들어와 있던 거잖아. 자매들이 손절하고 레드룸에 들어가 박살 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결국 다 한 팀이 되는 거였어. 서로를 받아들이고 지지하잖아.


와, 영화 잘 만들었네 하며 봤지. 자매 둘이 구출한 위도우들이 그냥 안 떠나고 옐레나 데리러 왔잖아. 평생을 드레이코프한테 조종당하고 살다가 나타샤가 구출하면서 너네들이 선택하고 판단하면 된다고 그랬잖아. 걔들이 선택을 하지. 마지막으로 얼굴 망가진 드레이코프 딸을 구출해서 같이 갔어. 자기에게 죄책감을 안겨준 존재기 때문에 없애버리는 게 속 편한데 살려주고 같이 탈출했지. 그 위도우들하고 같이 갔잖아.


드레이코프가 위도우들을 세뇌시킬 때 페로몬에 반응하도록 훈련시켰어. 드레이코프 페로몬 냄새를 맡으면 여자들은 공격을 못 하게 돼. 아무리 죽이려 하고 가도 때려도 약하고 힘을 못써. 그러면 넌 겁쟁이야 그러고 여자들을 기죽이잖아. 그걸 멜리사가 가르쳐주잖아. 페로몬을 못 맡게 후각 신경을 마비시켜버리면 상대를 때릴 수 있겠지. 여자들이 그런 상황에서 결국 자기 코를 책상에 박아서 페로몬 냄새 못 맡게 해버리고 나서 세게 공격하잖아.


상당히 은유적인 걸로 읽혔어. 페미니즘 코드 요런 식으로 잘 다뤘구나 보였어. 여자들이 가부장제 하에서 원수니 뭐니 하지만 막상 남자 앞에서 작아지고 힘을 못 쓰잖아. 결국 순해지고 부드러워진단 말이지. 이게 가부장제의 세뇌에 당하는 거란 말이야.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여자 스스로 자기 코를 깨버리고라도 공격할 힘을 얻어야 해.


넷이서 멜리사 집에 모여서 싸움이 났을 때 화가 나서 방에 들어가 버릴 때 뚱뚱이 아빠가 따라들어오잖아. 마지막 날 헤어지기 전에 차 안에서 틀어주던 노래를 멜리사네 집에서 다시 부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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