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동 여노 사무실에서 회의하는 중이라 안 받고 밀쳐두었다. 안 받고 울리기만 하던 전화가 멈추고 다시 울리고 또 멈춘 전화가 울고 또 울었다. 분명 오늘 내 일정을 알고 있는 딸인데 뭐지? 직접 끊어봤다. 안 받고 끊으면, 받을 형편이 아닌가 보다 알아들을 딸인데, 또 울렸다. 그제야 이상했다.
네 번째 전화가 걸려왔을 땐 내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회의 자리를 나가 딸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별일 없는 거지? 휴~~"
전화를 받는 딸의 목소리는 당황 그 자체였다. 엄마 목소리에 안도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세상에! 또 보이스피싱이었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엄마 안전을 직접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이 새끼들이 딸과 엄마 두 번호를 맘대로 가지고 변주하며 놀고 있나 보다. 엄마 번호로 딸에게 걸려온 전화인데 무슨 재주로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겠나. 엄마 번혼데 낯선 남자가 엄마가 다쳤다니, 미친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나? 이놈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할수록 정말 나쁜 새끼들이다. 진짜 더러운 사기 수법 아닌가. 엄마의 안전 가지고 딸을 놀라게 하고 당황하게 하고 걱정하게 하고.... 그런 정서적인 조작을 통해 정신없게 해서 사기치는 수법. 끝엔 돈을 빼앗아가려 했겠지. 어쩌면 그러냐. 그냥 돈 털어가는 수법보다 더 야비하고 더럽고 구리다 진짜.
딸이 가족 톡 방에 남겨 준 '보이스피싱 일기'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엄마 전화번호로 연락이 와서 받았더니 웬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 그러더니 엄마가 다쳤대. 옆에 있으니까 바꿔주겠대. 그래서 ㅇㅋ 하고 기다렸는데 엄마 목소리는 안 들리고 또 다른 아저씨가 여보세요? 몇 번 하더니 끊음.
끊긴 번호로 바로 다시 걸었더니 없는 번호래. 엄마 번호가 없을 리가 없잖아? 전화받는 사람 목소리도 조선족이었고 유령 번호인 것도 그렇고 보이스피싱이 의심됐는데, 일단 엄마 번호로 왔으니까 엄마 목소리를 확실히 들어야 안심이 되겠더라고.
근데 엄마는 오늘 여노 회의에 간다고 했고, 아무 일 없었다면 회의를 하고 있을 시간이라 전화를 안 받음. 제발 받아라 하면서 계속 전화했더니 나중에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라. 엄마는 멀쩡히 여노에서 회의 중이었음ㅋㅋㅋ
찾아보니까, 전화기에 단말기를 부착하는 식으로 해서 번호 조작도 가능하대. 그런 식으로 가족 번호로 사기 쳐서 돈 뜯어내는 케이스 많다 카더라
"개인 정보 털어서 돈 빼가는 놈들보다 더 나쁨 ㅂㄷㅂㄱ"
"진짜. 가족으로 구라 쳐서 가디치는 사람들."
"사람이라 하기도 더럽다. 나쁜 새끼들!"
식구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쌍욕을 해 봐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았다. 알고 보니 딸의 친한 친구도 같은 전화를 받았단다. 지난번도 그러더니, 그놈들이 가진 리스트에 같이 올라가 있나 보다.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이런 농간에 당황했을까, 생각할수록 괘씸한데, 어떻게 해야 하지? 으~~
누군가 걸려들어라.
하다 보면 언젠가 걸려들겠지.
그러면서 또 날 노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 나쁜 새끼들은 지난 5월에도 딸과 나를 농간했다. 그땐 딸 번호로 내게로 문자가 왔더랬다. 그때도 그놈들이 성공하진 못한 경우였다. 다행이라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내가 그 문자를 한참 시간이 지나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문자를 봤을 땐, 바로 직전 가족톡으로 딸과 멀쩡하게 이야기한 후였다.
이건 뭐지? 말려들 건수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곤 문자를 캡처해서 가족톡방에 올렸다. 역시나 애들이 한목소리로 보이스피싱이라 했다. 내겐 처음이지만 널리 알려진 흔한 수법이란다.
"엄마, 잘 했어. 이런 거 받으면 무조건 우리한테 먼저 확인하는 거야. 알았지?"
그땐 같이 웃으며 배우는 기회로 넘길 수 있었다. 그 문자 어투가 이미 딸의 것이 아니지 않냐는 둥, 이 새끼들이 허접한 가족 구라를 치고 자빠졌다는 둥. 엄마한테 언제 이름을 저렇게 공식적으로 대더냐는 둥..... 스마트폰에 당황할 중노년을 호구로 알고 있다는 둥....
심지어 보이스피싱 문자 덕에 나는 자식들한테 엄포도 놓았더랬다.
"야! 그래도 니네가 엄마한테 연락 안 하고 소통 안 되는 사이였어 봐. 사기 문자 받으면 엄마 맘 어떨 거 같냐?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당장 그 번호로 전화하게 되지 않을까? 이 새끼들이 그런 약점 노리는 거잖아! 개새끼들이 어리버리한 사람들의 약점을 노려 등쳐먹는 더러운 새끼들이잖아! 그러니 자식들, 가족톡방에 자주 흔적 남겨라잉?"
불쾌하다.
나는 어쩌다 보이스피싱의 단골이 되었지? 나한테서 뭘 뜯어먹겠다고 노리는 거냔 말이다. 개인 정보가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니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 참 무섭다.
알고 보면 우리 딸은 대포 통장 사기도 당한 적 있었다.
대학 재학 중에 방학이면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었다. 알바 전문 사이트에 그런 사기 일이 올라온다는 것 또한 황당한 일이었다. 급여가 비교적 좋은 일자리길래, 구직했더니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급히 면접도 없이 채용한다며, 사람을 보내 딸의 카드를 받아 갔다. 나는 요양차 집을 떠나 있었고 집엔 딸 혼자 있을 때, 그렇게 순식간에 당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알바가 절실한 가난한 젊은이를 그렇게 후리는 세상인 것이다. 그 일로 딸은 대포통장의 명의자가 되어 경찰을 드나들어야 했다. 사기당한 게 밝혀지고 다 풀릴 때까지 이만저만 불편을 당한 게 아니었다. 그 일은 딸의 삶에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이참에 보이스피싱 유형 인터넷 뒤져서 갈무리해 본다. 나는 두 가지 겪었지만, 변주는 넘치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