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올 거예요>(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창비, 2016)는 세월호 생존 학생과 희생학생의 형제자매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1명의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 작가들이 26명의 학생을 인터뷰하고 목소리를 기록했다. 2016년 4월 2주기에 초판 1쇄가 나왔으니 작가들도 학생들도 얼마나 힘든 인터뷰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인터뷰 대상자를 찾고 약속하는 것도, 만나 대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참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생생한 육성이라니, 독자에게도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들은 다만 글로써 참사의 증거를 남기고자 했다.
흩어지는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온 사람들.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겪어내야 하는가 고민. 그들은 세월호 희생 아이들의 부모와 친구들을 만나 귀 기울여 들었다. <416단원이고 약전>을 기록으로 남겼고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함께 썼다. 기록의 의미를 굳게 믿는 사람들은 희생자의 형제자매와 생존 학생들도 만났다.
김순천 작가는 <다시 봄이 올 거예요>의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을 떨면서 온 힘을 다해 이야기하는 어린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 대한 나의 절망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를 경험했다." 박현진 작가의 고백도 닮은 목소리다. "작가 기록단에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가려진 존재들일수록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이다.
막 스무 살이 된,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생존학생’이란 이름 외에 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여전히 생존학생으로 불리고 있다. 형제자매를 잃고 '유가족'이 된 이들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된 누나 형도 있다. ‘유가족’이란 이름으로 산 2년, 어떻게 견뎠는지, 그 이름의 무게는 어땠는지,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최초로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슬픔이 저를 조금씩 갉아먹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대처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엄마가 울 때는, 그냥 가만히, 방에 있어요."
"스스로가 강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요."
"엄마 아빠의 동료가 되어 진실에 다가가려고요."
세월호 참사의 생존 학생들과 유가족 형제자매들의 목소리에 깊이 감사한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별을 품은 사람들'에게 고마운 시간이었다. 현경, 은주, 명선, 혜정, 화숙, 그리고 하덕. 9월 모임은 특별히 '416생명안전공원 설명회'를 겸했다. 416생명안전공원 진행 상황을 듣고 이야기나눴다. 416재단 임병광 팀장, 희생학생 신호성 어머니 정부자님, 그리고 안산시민연대 진수경 활동가가 함께 했다. 진심으로 '생명'과 '안전'의 공원이 안산에 완공되는 그날까지 응원할 것이다.
"혼자 읽을 때 무겁던 맘이 같이 이야기하니 좀 가벼워졌다."
매달 같은 고백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별품사'다. 세월호 이야기치고 마음 가볍게 읽은 책이 있던가? 별이된 아이들의 <416단원고 약전> 읽기로 시작된 우리 모임. 해를 거듭해가니 처음만큼 힘든 눈물 바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울고 웃고 벅차고 감사하고 행복한 우리들이다. 세월호와 함께 우리는 역설의 시간을 살고 있다. 별이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길, 그 가족들과 손잡고 가는 길, 우리의 복이라 고백하는 이유다.
이달 책 역시 한 장 한 장 다시 세월호 현장을 떠올리는 이야기였다. 침몰하는 배에서 사투를 벌인, 그 생생한 육성을 읽을 때 특히 힘들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겠다. 희생 학생의 가족들이 팽목과 안산에서, 그리고 이후 이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도 그랬다. 가족을 잃고도 위로받지 못하는 부조리, 도대체 이런 나라는 무엇이란 말인가. 진심으로 목소리에 감사할 뿐이다.
다음 달 우리가 나눌 책 <홀>도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다.
그래픽 노블 <홀>(김흥모, 창비, 2021)은 416재단 공모 '모두의 왼손' 대상 수상작이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맞다. 계속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별품사처럼 뭐라도 함께 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잠시라도 잊는 게 소망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 <홀>의 생존자와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볼 차례다. 10월 19일(화) 오후 2시
'동료'가 되어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의 동료가 되어 함께 가려는가?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 봄을 우리는 어떻게 함께 맞을까?.....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발췌로 정리해 본다.
"계속 생각이 나요. 내가 어물쩡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서 같이 나왔으면, 그때 그랬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이 와요. 도보행진이나 시청 가서 추모제 할 때는 제가 애들을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좋았고 그때만큼은 죄책감이 좀 사라졌어요. 그런데 그때 잠:깐이에요 이제는 혼자서 해보려고요. 전에는 생각을 정리할 엄두도 안 났는데 이제는 조금씩 저 혼자. 시간이 좀 걸리겠죠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제 몫이 있는 것 같아요."(66쪽) 반스 윤,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저의를 보고 같이 슬퍼해 주고 울어주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불쌍하게 보는 건 왠지 좀..... 별로인 거 같아요. 눈빛이 진짜 공감해서 찡한 거랑 불쌍해서 그런 거랑 달라요. 괜히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가끔은 학생들이 팻말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막연하게 슬퍼져요. 언니도 학생인데 또래에게 왜 추모를 받아야 하나 싶어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됐는데...." (99쪽) 이정민, 세월호 희생학생 이지민의 동생
"그 사건이 지금은 저한테 어떻게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솔직히 사는 거에 대해 미련이 없어요.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죽고 싶다는 건 아닌데. 언제 죽어도 별로 예전보다는 두려움이나 뭐, 싫다는 게 덜한 느낌. 그런 거요. 어차피 애들 보러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행복하고 싶다기보다는 내 맘대로 하고 싶다는 게 좀 더 큰 거 같아요."(113쪽) 고마음,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전에는 사회문제에 전혀 신경을 안 썼어요. 요즘은 좀 달라졌어요.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국정교과서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역사를 왜 배우느냐고요? 유리한 건 다 넣고 불리한 건 다 빼는 거잖아요. 오빠 일 아니었으면 보고도 관심을 안 가졌을 것 같아요. 근데 대통령이 바뀐다고 달라질까요?" (120쪽) 허민영, 세월호 희생학생 허재강의 동생
"일생에 겪기 어려운 일 겪어보니..... 모든 게 달라진 느낌이에요. 우리가 국민 맞나 싶기도 하고 배신당한 느낌.....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인데 처음 사고 났을 때만 해도 같이 울어주고 공감해 주고 그랬던 사람들이 갑자기 180도 변해서 '이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그냥 이 상황이 뭔지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170쪽) 이시우,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때문인 거 같아요. 승무원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일반인 생존자들이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한 걸 들은 것과 갑판 쪽 가까이 있었던 거요." (185쪽) 김희은,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애들이 죽은 건, 침묵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이 시대의 어른들, 제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래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난다면 죽는 것보다 더 비극적일 것 같아요. 그렇게 안 살기로 다짐했어요. 성호랑도 약속했어요 불의를 보면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그걸 넘어서 저보다 어린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의견을 존중할 거예요." (219쪽) 박예나, 세월호 희생학생 박성호의 누나
"그때 선생님 열네 분 중에 두 분이 배에서 나오셨잖아요. 두 분 다 선생님을 그만두셨거든요.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 마음이시지 않았을까. 그러실 필요 없는데, 교사니까. 한 분은 그날 이후로 뵌 적 없고, 한 분은 애들 교실 가보시느라고 학교에 오셨을 때 지나가다 뵈었거든요. 뭔가 슬프고 공허한 그런 표정으로 앉아계셨는데 안타까웠어요. 살아나온 거는 우연이고 '나만 살아야지' 이렇게 나온 게 아니니까. 선생님도 애들 구하고 싶었을 텐데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어서...."(258쪽) 한성연,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저희 가족은 4월 16일 이후로 아무리 웃고 있어도,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안 힘든 날이 없었던 거 같아요. 다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빠는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의 50퍼센트를 잃었다고... 50퍼센트가 오빠고 나머지가 나라고. 저까지 잃으면 아빠는 살 이유가 없다고. 그 얘기가 되게 슬펐어요. 아빠는 얼른 저 다 키워놓고 오빠한테 가고 싶다는 말씀도 하세요. 저는 '왜 그런 얘기를 하냐' '아빠 가면 나는 어쩌냐' 그러고. 근데 아빠가 많이 힌드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아빠가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이유를 진짜 잘 알고 있으니까. 아빠가 친엄마랑 이혼하고 혼자서 오빠랑 저를 키우신 게 6년 정도 되거든요....."(294쪽) 김예원, 세월호 희생학생 김동혁의 동생
지난 1주기 형제자매들이 낸 성명에 이런 표현을 넣었어요. '엄마 아빠의 동료가 되어 진실에 다가가겠다'고요. 이런 말이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한테 우선 말하고 싶었고, 높으신 분들한테 말하고 싶었어요. 시행령으로 부모님들을 괴롭혔잖아요. 어느 순간에 보상금도 얘기 나왔고요. 높으신 분들, 종편 방송들은 잃게 괴롭히면 언젠가 우리 부모님들이 보상금 받고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동료'라고 한 것은 이게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정치권의 임기는 몇 년이지만 세월호 형제자매라는 이름의 임기는 죽을 때까지니까.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부모님 세대에서 밝혀내지 못하면 우리 세대에서라도 꼭 밝혀낼 것이다. 그걸 권력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엄마 아빠들한테도 말하고 싶었어요. 엄마 아빠들이 이렇게 하다가 지치셔도 우리가 자라난다. 권력은 지금 착각하고 있어요. 착각하면 안 돼요. 일이 년 지나서 끝날 일이 아니거든요. (333쪽) 남서현, 세월호 희생각생 남지현의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