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백합과 장미, 모두 저의 큰 영광입니다!
덥고 바쁜 8월엔 방학했던 '백합과 장미'가 9월 토론 모임을 마쳤다.
9월 16일(목) 저녁,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사계절, 2020)로 녹아드는 시간이었다. 선, 영, 혜, 은, 민, 순, 덕, 숙(8명)이 함께 단톡방에서 손가락으로 떠들었다. 요즘 줌 토론이 여러 갠데 백장은 단톡방 토론을 고수하고 있다. 언제나 같은 소감, 역시 토론은 옳다. 전날 교회 모임에서도 이 책을 토론하고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또 함께 한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인양, 또 새롭고 깊은 통찰의 시간이었다.
이런 책을 어찌 두 시간 반 동안 다 나누겠는가. 하고 싶고 짚고 싶은 지점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어른됨보단 어린이됨이 훨씬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는 진리를 확인한 것으로 감사한다. 작가가 책 속에 한 꼭지 언급한 것도 있고 해서 10월에는 낯선 '비건'이라는 세계로 풍덩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선입견 없는 아이처럼.
영화 <내일>과 책 <아무튼, 비건>을 함께 토론하기로 욕심내 버렸다. <내일>은 애초에 계획에서 미뤄진 것. 관련 주제니까 얇은 책 하나 같이 보자, 물론 내 중심적인 합리화겠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연결 주제라 딱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모임 저모임에서 '비건' 토론을 하고 보니, 백합과 장미에서도 하고 싶었던 거야!
언제?: 10월 21일(목) 저녁 7시 30분
어디서?: 온라인 단톡방
무엇을?: 책 <아무튼, 비건>(김한민, 위고, 2018)
영화 <내일>(멜라니 로랑,시릴 디옹, 프랑스, 2018, 왓차 다큐)
-10월 '백합과 장미' 토론 공지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아는 것이 저의 큰 영광입니다."(9쪽)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들어가며 작가가 하는 인사를 보라. 이 책이 어떤 시선으로 어린이를 바라보는지 잘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 책 출판하며 좋은 책을 모았단다. 그리고 지금은 어린이 독서 교실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작가가 만나고 경험한 어린이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린이가 이야기마다 등장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어린이로 인해 깨닫게 된 이야기, 어린이를 통해 얻은 통찰, 어린이로 인해 배우는 이야기가 많다. 그는 그에게 어린 시절 한 부분을 나누어 준 어린이들에게 감사한다. 어린이를 아는 것이 그의 큰 영광이란다. 실은 내 이야기더라고 감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영광입니다."
아름답고 빛나고 탁월한 단어 선정이라 나는 자꾸 칭찬하고 싶다. '영광' 때문에 솔직히 나는 시작부터 살짝 놀라며 책에 빨려 들며 읽었다. 김소영 작가의 태도와 관점이 확 나를 끌어당겼다고 해야 맞겠다. 대개 '영광'은 잘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던가. 상을 받고, 칭찬을 받고, 혹은 권력에게 아부할 때, 영광을 말하는 세상이다.
작가는 반대로 작고 어린 사람들에게 "저의 큰 영광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요란하게 소리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이런 작가 앞에 나는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내용도 없으면서 큰소리를 치며 과장하는 뻥쟁이라면, 김소영 작가는 엄청난 정신을 아주 담담하고 차분한 이야기로 쓰는 사람이라서다.
나도 같은 고백을 하련다.
좋은 책 써 주신 김소영 작가님과 어린이들께 감사합니다.
어린이를 아는 것이 저의 큰 영광입니다!
김소영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저의 큰 영광입니다.
백합과 장미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과 토론하며 배우는 건 저의 큰 영광입니다!
바쁜 세상에 길고 긴 토론 스크립트를 가져오진 않겠다. 살짝 맛보기만 보여준다.
민: 나는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 특히 법학에서 어린이라고 하면 일단 "미성년자"로 규정이 되니까, 아직 미숙한 존재 정도로만 여겨지기 쉬운데, 사실은 그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독립된 인격체라는 거. 마치 아이는 어른의 보살핌을 받고, 어른이 모든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들에게도 생각과 목소리가 있다는 걸 이 책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어. "아직 어른이 덜 됐다"라는 데만 초점을 맞추느라 "그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사실 어른들도 법적으로 "성인"일 뿐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과정인데 말이지ㅎㅎㅎㅎ
선: 음 나는 초등학생 때 일기 써둔 게 거의 다 있는데 ㅋㅋㅋ 그거 보면 나름의 논리가 항상 있고, ‘어휴 어른들이란’ 하는 태도가 ㅋㅋㅋㅋ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었거든. 근데 이 책이 진짜 어른이 되면서 잊게 된 우리의 예전 모습들이나, 아니면 너무 저평가되는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어. ㅋㅋㅋㅋ나중에 그 부분 찾으면 사진으로 공유할게. 맞아 … 나도 맨날 친구들이랑 우리는 아닌 양 ‘어른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ㅋㅋㅋ 언제쯤 그 어른들에 나를 넣을지 모르겠어..
혜: 궁금하네 아이 선은 어떨 때 "아휴~ 어른들이란" 생각을 했는지 ㅋㅋㅋ ㅇㅇ 난 이걸 공유하고 싶단 말이쥐. 성인도 성장한다는 거. 아니 어른도 성장하고 있다는 거
영: 미안, 도서관 책 대기하다 안되어 학교 주문 넣었더니 너무 오래 걸려 추석 전에 온다더니 진짜 오늘 왔어. 그래서 아직 책을 다 못 읽어서...
덕: 자기가 어린아이인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을 긋는 건 항상 위험한 것 같아. 학문이든 법이든 어쩔 수 없이 선을 긋기는 하지만 삶은 아니니까
숙: 맞아. 나도 책 읽고 나니 조금 더 선명하게 와닿았어. 아! 나는 사실 어린이라는 걸 말하는 책이구나. 알고 보면 어린이인데 몸이 어른이 되어서 성인이랍시고 작은 사람들을 어린이라고 타자화하는구나. 실은 자신을 그렇게 하는 건 줄 모르고 말이지.
민: 최근 노키즈 존이 이슈였잖아. 그 문제랑 관련해서 211~213페이지가 인상적이었거든.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소란을 일으키면 보통 '저 부모는 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하면서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지. 그래서 노기스 존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많고. 근데 노기스 존을 설치하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건 어린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걸 느꼈어.
은: ㅇㅇ 어린이에 대한 혐오의 시선이라는 말이 찔림. 아이의 관점에서 보는 저자의 시선 자체가 이 책의 멋있음인 듯. 애들님들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 노기스 존에 대해 아이들과 토론한 적이 있었어. 의외로 아이들은 쿨해서. 자기들만의 공간이 어른들이 들어오면 싫은 것처럼 어른들도 싫을 수도 있겠다는 얘기도 있었어. 노키즈존이 생긴 이유는 아이들이 시끄러워서라는데는 반성을 한다고. 한편 흥분해서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것을 잊지말라고 소리치는 아이도 있었고....
혜: 어맛 놀래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쿨한데?
선: 그렇구나.. 반성은 좀 슬프다.
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 전용" 공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공간이 "어른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드네
숙: 애들은 어른 중심 세상에서 어디서나 소수자인 건 분명한 듯. 쉽게 통제의 대상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고.
혜: 그 소수자가 어느새 다수가 되니 그 기억을 잊는다는 말도 있어
영: 나중에 노인들 금지~ 나오면 슬플 듯......
민: 어린이일 때는 비주류, 소수자였다가 어른이 되는 순간 주류, 다수가 되니까
숙: 군대하고 같지. 짬 낮을 땐 죽어지내고 올라가면 다시 보고 배운 대로 반복. 노기스 존이 답이 아니란 게 보이지
혜: 노키즈 존에 대한 아이들의 목소리도 신문기사에 나왔으면 좋겠다. 모르게 배제되고 소외된다는 사실이 왠지 먹먹하다. 알게 배제되면 자기 목소리라도 낼 수 있을 텐데. 내가 학부모회도 하잖아... 거기 요즘에 학생대표도 불러. 그런데 문제는 뭔 줄 알으? 정작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해.....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아는 것이 저의 큰 영광입니다. 9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18
하지만 모든 무서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어른이 '여성'이기 때문에 무서워하게 되는 그 많은 일들이 모두 그렇다. 그런 무서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을 좀먹고 무너뜨린다. 우리는 어린이가, 여성이 안전을 위협받는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 수수를, 보리를, 검은콩이를 불안하고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 피해자가 고발하고 여성들이 파헤쳐야 겨우 끔찍한 범죄가 드러나는 세상에서, 죄지은 자들이 처벌받으리라 확신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래서 매번 '청원'을 넣어야 하는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 둥굴레가 강낭콩이가 이것을 반복하게 할 수 없다. 53-54
문제는 이 서열 정하기가 민주적인 것은 아닌 관계로, 언니는 할 말 못 해 억울하고 동생은 영원한 이인자의 설움을 안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동생'의 한 사람으로서 문제를 제기하자면 특히 언니에게 하는 "참아라"가 마음에 걸린다. 마치 동생이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언니가 참으라는 말 같아서다. 106
친구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실 나도 채식의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편식을 하고 있다. 고기 요리 사진이나 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 등을 SNS에 쓰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루 한 끼라도 완전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식이나 매식이 줄었다. 육식보다 채식은 재료 관리며 요리에 손이 많이 간다. 대신에 제철 채소를 챙겨 먹는 즐거움이 크다. 128
그러니 부모님들은 어떨까. 비로소 '자녀교육 시장은 불안을 먹고 큰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176
나는 '남의 집 애'라는 날이 좋았다. 그러면 나는 '남의 집 엄마' '남의 집 아빠' '남의 집 이모 삼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고 좋아하고 샘내고 안심하고 걱정하면서 '남의 집 애'를 같이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어떤 어린이의 '남의 집 할머니'도 될 수 있다. 181
존댓말을 하는 쪽은 자기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상대가 표현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대응한다.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지적한 대로다. 191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던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197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격차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영역이 얼마나 많을까?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여러 소수자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둔감했는지 깨닫게 된다.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소수자라기보다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201-202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219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다. 어린이와 정치를 연결하는 게 불편하다면, 아마 정치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보기에도 민망하고 화가 나는 장면들을 어린이들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그런 문제일수록 어린이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어린이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까지도 볼 것이다. 달아날 곳이 없다. 236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에우를 허하게 하라."( <색동회 어린이 운동사>) 238
어린이들에게는 서운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린이날이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린이가 '해방된 존재'가 맞는지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된 사람들답게 자유로운지, 안전한지, 평등한지, 권리를 알고 있으며 보장받고 있는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점검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어린이날은 지금보다 훨씬 거창한 하루가 되어야 한다. 239
TV와 관련해서 특별히 바라는 것은 '최신 어린이 영화'를 틀어 달라는 것이다. 어른들과 함께 좋은 곳, 멋진 곳에서 하루를 보낼 수 엇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런저런 사정으로 최신 영화를 보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날 하루만큼은 꼭 최신 영화를 틀어 주면 좋겠다. 244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253
'김소영'이라는 렌즈로 세계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마침내 깨닫게 된다. 어린이를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우리 안에 오랫동안 꽁꽁 숨겨 둔 가장 작고 여린 마음들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천천히 헤아리는 시간이라는 걸. 어린이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와 마음,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윤가은(영화감독)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