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으로서 강추죠. 쥐깁니다. 욕에 무슨 품격이냐고요? 그러게 우리말 번역이 그리됐어요. '욕의 역사'라고 하려니 너무 싱겁긴 했겠죠? 제 관심사기도 하고 요즘 이 주제로 쓸 글도 있고 해서 심지어 다시 봤어요. 다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걸랑요.
교양 머리 없게스리 욕을 쓰냐고요? 물론이죠. 영어 대표 욕 단어를 한 편에 하나씩 집중 탐구해서 모두 6편 시리즈죠. 20분 남짓씩 하니, 다 봐도 그리 길지 않고 참 재미있어요. fuck, shit, bitch, dick, pussy, damn. 욕의 역사를 살피고 품격을 논한 이들에게 진심 박수를 보내며 봤어요. 영어 욕을 한글로 옮겨 말해 보면 어떨까요?
씨발! 똥! 썅년! 좆! 씹! 젠장! 영어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요렇다는 거죠. 거기 더해서 우리가 쓰는 욕이야 셀 수 없이 많잖아요. 망할! 염병! 우라질! 지랄! 발광! 개새끼! 좆까!..... 역시 욕은 가장 원초적 언어임에 틀임 없습니다그려. 솔직히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리말 욕이 풍부하다는 건 이미 학계에 알려진 바죠?
전문가들 뭐 하십니까? <우리 욕의 역사>, <한국말로 하는 욕의 품격>, 또는 <우리는 왜 이렇게 욕을 많이 할까?> <그 많던 욕쟁이 할매는 다 어디로 갔나> .... 이런 교양 프로그램도 나오면 좋겠구먼. 힌트 되나요?
마구 지껄이다 보니 그러네요. 솔직히 동네마다 옛날엔 욕쟁이 할매가 있었죠. 제가 자란 시골 동네에도 있었어요. 키 크고 목소리 큰 순이네 할머니, 생생히 기억나요. 왜 할매는 욕쟁이가 되었나. 젊어서부터 욕쟁이였을 리가 없죠. 가부장적인 이 땅에서 젊은 여자가 어디 감히 욕을 합니까. 억압과 차별과 설움의 세월을 속으로 삭이며 살아내죠. 어느 지점에 가면 속에 것들이 욕으로 폭발한 거 아닐까요?
바로 그겁니다. <욕의 품격> 첫 회에서 진행자인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하는 말도 그래요.
"배우의 가장 큰 도구는 상상력인데 욕을 잘 쓰는 것도 큰 능력 중 하나예요. 욕을 쓰면 상처 주고, 달래고, 어르고, 겁주고, 모욕 주고, 유혹도 할 수 있죠. 영어에서 사용하는 모든 욕 중에 뻑 fuck이 가장 다양하게 쓰입니다. 그 단어로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요. 고통과 경이로움 그리고 부적절한 육체관계도 이 한 음절로 표현해요. fu~~~~ck!"
실은 저도 욕에 좀 꽂혔거든요. 전에도 욕을 했냐고요? 어디 감히! 지집애가! 어디 감히 사모님이! 그럼요. 조신한 척 좋은 말만 입에 달고 살았죠. 근데 어쩌다 욕에 꽂혔을까요? 이러다 좀 더 나이 먹으면 제가 '욕쟁이 할매'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아니, 어쩜 이미 해소하고 살기 때문에 굳이 욕쟁이 할매까지 안 갈지도요.
우아한 척 고상한 척 애들한테도 절대 욕 못 하도록 하던 엄마였더랬죠. 그러나 삶이 그대를 속이니 어쩌겠나.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쌓여있던 건 결국 튀어나오게 되고요. 임계치에 다다르면 주전자 뚜껑도 넘치게 되잖아요. 한번 '욕 방언'이 터지니 이건 뭐, 욕의 정치학에까지 뚫리게 되더군요. (뭐래?)
우선 나 스스로에게 무지 욕을 해댔죠.
천하에 한심한 년, 위선자, 겁쟁이, 근본주의자, 명자, 흉자, 광신자, 비겁자, 이상주의자, 가부장제의 하수인, 노예, 가식덩어리, 멍청이, 헛똑똑이, 거짓말쟁이, 앞뒤가 안 맞는 인간, 미친년, 망할년, 썅년, 지랄발광, 또라이.... 그리고 이 사회와 세상을 향해 욕을 마구 퍼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운 인간들에게. 결과요? 대지각변동이죠.
요즘요? 1년에 몇 번? 폭발 껀수가 있으면 튀어나오죠. 욕에 관해 생각하며 글쓰기로 '승화'하고 있습죠. 어쨌거나 사람은 욕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욕 안 하고 사는 게 대수가 아니더라는 헛소리였습니다.
욕을 살펴보면 그 사회의 젠더 구조, 부조리, 성차별, 여성 혐오까지 다 보이죠. 양반 욕해주는 게 탈춤이고 각설이 아니겠어요? 권력 욕해주는 게 데모고 집회 아님? 여자들이 못 참겠다고 욕하는 게 여성 운동 아니겠어요? 문제는 욕나오는 세상인데 욕할 수 없게 틀어막는 구조가 있다는 거죠. 욕 들어야할 인간이 도리어 욕을 맘대로 하는 세상이죠. 욕이라는 도구를 장착하고 욕을 해야 마땅한데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는 세상이고요.
며칠전 때마침 '욕'에 관한 이웃 블로거의 글이 올라왔더군요.
아이가 '나쁜 말'을 쓰는데 어떻게 지도할지 고민하는 엄마들 이야기였어요. 고민이 아닐 수 없겠죠. 우리 애들 어릴 때 생각도 나서 감정이입하며 읽었어요. 그런데 남자 아이니 욕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쪽으로 글이 마무리되는 거예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제가 그만 폭풍 댓글을 달고 말았어요. 가끔 꽂히면 그렇게 긴 글을 댓글로 쓰고 자빠졌지 뭡니까.
거기 젠더본질주의가 있더라는 겁니다. 물론이죠. 욕이라는 것 자체가 다분히 남성중심 언어인 것도 사실이죠. 욕에는 여성 비하가 철철 넘치니까요. 여성을 혐오하고 모욕 주는 게 곧 욕이었으니까. 모욕하려면 상대 엄마 욕하는 거 봐요. 아, 욕 나오려 합니다. 아무리 청정 집안에서 욕 안 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도 이 사회는 욕하게 만드는 겁니다. 욕을 배워야 하고 욕을 써야 하는 구조는 있죠. 남자에겐 관대한 욕, 이러면 심한가요?
남자아이니까 욕해도 된다? 그건 노노! 댓글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그 이웃의 의견과는 반대 방향이었어요. 어쩌면 반대방향까진 아니었을라나? 여자여 욕을 하라! 이런 주장을 하는 모양세였거든요.
기왕 엎질러진 물, 제가 달았던 댓글을 긁어와 이쁘게 전시해 봅니다.
욕, 아주 중요한 의사 표현 수단이죠. 제 관심 주제라 한마디만. 저도 그 엄마처럼 애들한테 욕을 허하지 않는 엄마였다가, 어느 시점에서 보니 욕하라 가르치고 욕의 모범을 보이고 있더랍니다ㅋㅋㅋ 남자만 아니고, 남자라서 허하지 말고 모든 인간이 정황과 맥락에 따라 욕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죠.
오히려 여자가 더 욕을 잘 배워 써먹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젠더 불평등, 계급 불평등 사회에서 욕은 매우 정치적인 개념 아닌가 해요. 욕이 입에 붙고 튀어나오면서 제 삶도 관점도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할 정도니, 좀 많이 욕에 꽂힌 거 같죠?ㅋㅋㅋ
욕이 필요한 쪽, 욕이 하는 선기능 분명히 있죠. 물론 잘못 쓰는 경우가 더 많지만...... 탈춤이라든가 각설이타령 보면 양반과 권력자의 허세와 위선을 민초들이 걸쭉한 욕으로 패주잖아요. 참 좋은 욕의 예 아닌지. 약자가 강자를 조롱하고 훈계하고 혼내주고 뒤집어엎을 수 있는 욕,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죠.
반면 힘 가진 인간이 우월한 지위에다 욕까지 한다는 건 봐 줄 수 없는 폭력의 극치요 부끄러운 짓이고요.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욕은 중요한 싸움의 수단이죠. 그러나 사회는 약자가 강자를 향해 욕하는 걸 결코 쉽게 허용하지 않고, 불편해하고 미워하죠. 왜 그런 욕이 나왔는지는 사라지고 역고소가 난무하는 경우가 많고요. 쩝.
어쨌거나 한창 언어 습관 들일 나이에 함부로 욕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애들에게도 욕을 허하라. 저는 그 쪽에 한 표입니다만. 여자는 특히나 고분고분 하라 요구하는 세상을 향해 욕을 하라! 불평등과 차별을 감수하지 말고 대놓고 욕을 하라. 이러면 또 욕먹는 겁니다잉! 단, 욕의 정치학도 같이 잘 장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