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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마지막 생일 단상, <세 자매>

남의 눈에 좋게 잘하려는, 그건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by 꿀벌 김화숙


오늘은 50대 마지막 내 생일이다.


62년 생이니 '환갑'을 365일 앞 둔 셈이다. 또 한 번 생일 맞는 게 뭐 별난 일이냐고? 그럴 수도 있지만 아주 특별한 날이기도 한다. 우리 오빠는 생전에 50세 생일을 맞아 본 적 없었다.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맞고 싶던 내일'이라 했던가. 오늘은 내 남은 생에 가장 젊고 눈부신 날이다.


암 수술 후 만 7년이 지났다. 삶이 선물임을 알게 한 시간이었고 매일이 낯선 새 길이었다. 인간 김화숙을 다시 알고 나와 내 몸과 다시 사귀는 시간이었다. 쓰나미 같은 갱년기를 통과하며 결혼생활도 대수술을 받았다. 스위트홈을 위한 남편과 아내 역할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 설레고 낯선 사귐을 누리게 됐다. 31년을 넘어 32년 째 둘이 같이 가는 이 여행은 계속 되고 있다.


내 50대 마지막 생일을 자축하며 영화 <세 자매> 이야기를 소환한다. 좋은 영화의 감동이 크면 글 욕심을 내다가 시간을 끄는 수가 많았다. 영화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쓰지 못했다. 내 생일 아침, 나는 오직 오늘을 위한 글을 쓰고자 한다. 잘 쓰려하지 않겠다 마음먹으며, 쓰는 데 의미를 두기로 한다. 다 잘하려는 게 내 인생 아킬레스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면서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커 온 모든 아들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 영화를 보는 걸 전 힘들어하는 편인데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눈물이 많이 나 부끄럽기도 했다."


영화 <세 자매>에 대해 배우 문소리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출연 배우이자 공동제작자로 나선 이유도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세 자매>를 본 내 마음도 그랬다. 너무나 그대로 나의 이야기였고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의 이야기였다. 가슴으로 보고 온몸으로, 눈물로, 공감한 작품이었다.


영화 속 세 자매가 정확히 셋으로 나눈 내 모습으로 보였다. 나를 3 분할하면 딱 세 자매구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랬다. 덕이랑 같이 개봉날 보고, 여운에 이끌려 나 혼자 한 번 더 영화관에 가서 봤다. 또 봐도 그랬다. 결혼 후 각각 다르게 살고 있는 세 자매가, 내겐 자꾸 나 한 사람을 나눈 모습으로 보였다.


첫째 희숙(김선영)은 내 지나간 '흑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었다. 희숙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큰딸로서 자기보다는 세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를 생각하는 딸로 자랐다. 자기주장을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밟히고 눌리고 무시당해도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다. 암 진단까지 받았지만 드러내 말하지 않는다. 착하게 다 주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캐릭터다.


둘째 미연(문소리)은 반듯하고 경건한 기독교인 내 모습이었다. 매사에 완벽해 보이고 주변의 칭찬을 받지만, 실은 위선적으로 산다. 미연이 스스로의 실체를 대면하기 어렵듯 나 역시 그런 세월을 살았다. 암 이전까지 나는 내 가정생활과 신앙생활이 '완벽한' 줄 알았고 완벽하려 최선을 다했다. 여성이 왜 그런 식의 삶을 택하는지, 이면적인 구조가 있음을 영화는 잘 보여주었다. 단순히 기독교 '까는' 영화가 아니다.


셋째 미옥(장윤주)은 두 언니와 달리 착하지도 반듯하지도 않다. 착한 남편과 그의 아들을 쥐고 흔들며 성질대로 화내며 사는 거 같다. 업으로 글을 쓰지만 뜻대로 안 되니 알코올을 의존한다. 결핍과 트라우마를 광기와 분노로 내지르며 자기를 찾아가고 있다. 내가 암수술 후 폭발한 광기를 너무 잘 보여주었다.


세 캐릭터 모두 내겐 소름이 끼칠 정도로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세 자매지만 어찌 보면 한 사람이기도 하다. 상처와 응어리는 누르고 덮어도 때가 되면 터지는 법. 희숙과 미연과 미옥을 합하면 바로 화숙이었다.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본 날 나도 짝꿍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 대화를 조금만 정리해 본다.




숙: 이런 영화 어때? 볼 만했어?


덕: 영화 잘 만들었네~~. 이전 같으면 이런 영화 나는 불편해서 못 봤을 거라는 거 알아. 그런데 숙이라는 사람을 겪고 난 후라 이젠 다 이해됐어. 저럴 수밖에 없는 정황과 맥락이 읽혀. 진짜 잘 그려냈네 인물들을.


숙: 우와~ 정말? 너무 과장되고 불편한 지점 없었다는 거야?


덕: 아냐, 없어. 공감하며 재미있게 봤어. 이런 영화 불편하게 볼 사람들 당연히 있다는 거 알아. 기독교인들이 오독할 가능성이 있지. 내가 그랬으니까. 캐릭터가 조금만 바람직한 경계를 벗어난다 싶으면 내가 어려워하고 힘들어했잖아. 감독이 참 섬세하게 짚어냈어. 예술이야. 대단해.


숙: 아~~ 격세지감이다. 우리가 이렇게 공감을 나눌 수 있다니! 뭐가 젤 공감됐는데? 궁금하다. 세 자매 중 숙이 모습이랑 누가 가장 닮아 보였어?


덕: 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시스템인지 잘 담아냈어. 표면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문소리가 숙이 모습을 잘 보여줬지. 물론 지난 모습이지만.ㅋㅋㅋㅋ 내 모습도 보이던데? 김선영에게도 장윤주한테도 우리 모습 다 보여서 신기했어. 교회가 보여주는 경건한 가정이니 신실함이니, 그 개념 재고할 필요가 있어.


숙: 맞아. 나도 그런 생각 했어. 근데 첫째한테도 너무 감정 이입되는 거 있지. 믿음, 순종, 이런 거 내세우면 내 목소리를 죽이게 되잖아. 결국 내면은 그렇게 무력하고 자기 방어능력이 없는 지경인 게 보였어. 분노하는 셋째도 마찬가지지. 내지르고 지랄 발광하는 덴 다 눌린 게 있다는 거거든. 셋이 결국 한 사람이야.


덕: 그렇지. 세 자매가 가부장제 아래 눌리고 상처 받은 사람의 모습을 세 단면으로 보여주는 셈이네.


숙: 그치. 가부장제 자체가 폭력이라고 말하는 거 같지 않아? 아버지 태도 봐. 절대 사과를 안 해. 젊어서는 처자식한테 폭력 행사했으면서 지금은 경건한 신자래. 목사한테는 죄송하다 하면서 가족들한텐 왜 안 해? 그땐 내가 무지했다, 잘못인 줄 몰랐다, 미안하다, 뭐 그렇게라도 하면 안 돼? 사과는 안 하고 머리를 창에 찧는 거 봐. 가부장 권력이라는 게, 평등한 인간으로 내려오면 죽을 거 같은 거지. 두렵고 답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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