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섹스턴의 생몰연도를 나는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나와 지구에 함께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시인은 마흔여섯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당시 미국 사회에 물결치던 페미니즘의 파도에 몸을 실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몸이 살고 있는 현실은 다른 세계였다. 그의 의식이 써내는 글도 다른 두 세계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아니 인류 역사 내내, 여자들은 두 세계를 살아내야 했다.
<가정 주부>가 포착한 여자의 현실은 처절하다. 스위트홈이 된 주부, 집 말곤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진다. (집이 된 기쁨의 노래로 감상하는 것도 자유다) 여자들조차 서로 하찮게 본다. 기준은 남자의 삶. 여자는 남자에게 집이요 엄마다. 남자의 폭력과 지배조차 용납하는, 늘 같은 벽돌색의 집이다. 남자를 향한 여자의 사랑의 끝은 무엇인가. 여자는 스스로를 죽이고 만다.
나도 집과 결혼한 것처럼 산 적이 있다. 여자의 마땅한 길이라 배웠으니까. 그 끝이 죽음일 줄 누가 상상했으랴. 이쯤에서 아~~ 또 다른 시구와 한 남자 시인이 떠오른다. 칼릴 지브란(1883~1931)이다. 그가 결혼에 대해 쓴 유명한 시가 끼어들었다. 한 때 나도 그를 <예언자>로 여기며 읽은 적이 있었다. 오늘은 앤과 나란히 보이니 그가 전혀 달리 읽힌다. 결혼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쩜 이리도 다른 세계를 살았을까. 놀라워라. 앤이 살아내야 했던 현실과 칼릴이 서 있던 땅이 달랐을 것이다. 그에게 결혼이란 저토록 고상한 '뜬구름'일 수 있었다. 바람이고 파도이고 사원의 기둥일 수 있었다. 여자가 집이고 엄마일 때, 남자에게 결혼은 떠남이요 거리두기일 수 있었다.
그도 세상 모든 사람이 같은 입장에서 산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칼릴이 <예언자>를 스물한 살에 썼다니, 설마, 여자를 알기나 했을까? 떠났다가 돌아오면 그를 반겨주는 집이 있었겠지. 삼나무도 참나무도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랄 수 없다고? 그 그늘에 사람이 있었다는 걸, 그는 볼 수 없었으리라. 이해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되 사랑에 속박당하지 않는 결혼. 누가 원하지 않으랴.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멋지고 말고. 여자도 주체였을까? 붙박이 집이 돼 버린 여자에겐 언어가 필요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건 남자의 언어였을 뿐이다. 멋있게 들리던 '예언자'의 목소리가 이젠 공허한 메아리인 이유다.
결혼에 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스캇 팩의 '베이스캠프'다.
인간은 여자도 남자도 독립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또한 어울리고 사랑하며 함께 살아간다. 결혼이란 파트너십은 베이스캠프 같은 것. 각자가 개인으로서 자기 길을 만들어 가되. 같이 또는 따로, 떠나고 돌아오며 함께 가는 여정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흡수되다거나 한쪽만 집이 되는 건 안. 된. 다.
결혼도 가정도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말도 된다. (교회도 단체도 국가도.) 가정이 그 자체로 숭고한 목적이 되면, 그걸 유지하려고 누군가는 붙박이 집이 된다. 바람이고 구름일 수 있는 사람 따로 있게 된다. 얼마나 불공정하고 허술하고 모순 투성이인가. 허접하게 무너질 텐트는 베이스캠프가 될 수 없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스캇 펙, 율리시즈, 2012)
부부를 다룰 때 아내와 나는, 결혼을 산을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에 비유했다. 등산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그곳에 머물고 양식을 공급받고 다시 다른 정상을 찾아 모험을 나서기 전에 몸을 돌보고 쉬어야 한다. 등산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실제로 산에 오르는 시간만큼-그 이상은 아닐지라도- 베이스캠프에서 이것저것 살피며 마음을 써야 한다. 그들의 생존은 견고하고 잘 정비된 베이스캠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p. 241)
여성해방운동은 무엇이 유일하고 이상적인 해결책인지 분명히 그 길을 제시해 준다. 진정한 결혼은 공동 협조 체제로서 상호 간의 협조와 배려,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영적 성장의 정상을 향한 여정에 들어선 서로에게 힘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남성과 여성 둘 다 가정을 돌봐야 하고, 둘 다 각자의 생에 도전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p. 242)
우리 결혼 이대로 괜찮은가?이 시스템에 우리를 맡겨도 되는 걸까? 이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일까? 우리는 계속 같이 갈 수 있을까? 끝까지 완등 할까? 같이 하고 싶어? 각자의 길을 갈까? 우리에게 과연 베이스캠프는 있는 걸까? 떠남과 돌아옴이 네게도 내게도 가능한 거야? 우리 이 집 부수고 다른 집 만들까? 24년이면 어떻고 30년이면 어때, 낡았으면 버리고 다시 만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