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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를 아는 사람, <코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by 꿀벌 김화숙


영화 <코다 CODA>(Children Of Deaf Adult, 청각장애인의 자녀)는 눈물과 웃음, 재미와 의미에 깊이와 넓이를 갖춘 영화였다. 안산 개봉관에서 딸과 함께 한 번, 서울에서 씨네 페미 팀과 또 한 번 보았다. 서울 신사동까지 버스와 전철 왕복 4시간에 영화와 토론까지, 8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벌써 또 보고 싶다.



1. 자기를 알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아름답다


우리 딸은 오른쪽 귀가 난청이다. 딸의 난청을 통해 우리 가족들은 청각 장애와 수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딸이 혹시 한쪽 귀마저 청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가정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만큼 들을 수 있는 한 귀가 고맙고 소중했고 자기로 살면서도 소통하는 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난청은 딸의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불편이었다. 학기 초마다 교실에서 좌석 배치를 할 때, 길을 걸을 때,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듣기 등등. 나는 딸과 외출할 땐 늘 딸의 왼쪽에서 걸어야 한다. 우리에게 장애란, 극복의 대상이기보단, 끼고 함께 살아야 하는 작은 '문제'이자 소통의 창구 같은 게 됐다.


나는 청인 부모의 자식이고 건청이지만 코다에 완전 감정이입하며 봤다. 코다 루비(에밀리아 존스)에게서 경계인들의 고민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특히 남성 중심 사회 속에 여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코다 루비에게 농인 부모의 장애란, 이 불통의 가부장적 시스템에 비해 얼마나 소통 가능하고 유연한 존재인지. 눈물 나게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였다.


루비는 어려서부터 농인 부모와 오빠의 입이 되어야 했다.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조였다. 자기 삶과 가족생활이 분리되기 어려웠다. 루비는 학교에 늦더라도, 수업 시간에 엎어져 자더라도, 가족들의 '귀와 ' 역할을 먼저 해야 했다. 루비가 노래를 하고 음악학교로 가고 싶어 했을 때 비로소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너는 너를 아는 사람이라서 나는 좋아."


루비 엄마의 대사가 아직도 내 귀에 울리는 거 같다. 청인이면서 농인의 삶에 너무너무 밀착된 루비의 삶이었다. 루비가 집을 떠나 음악학교에 진학한다는 건, 루비에게도 가족 전체에게도 새로운 문제를 의미했다. 딸을 집에서 떠나보내는 정서적인 분리, 가족에게 아픔을 주는 괴로움, 농인 가족들이 겪을 불편, 새로운 대안 마련, 경제적인 난관 등등. 엄마는 아직 이런 상황에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루비 역시 가 본 적 없었지만 가고 싶은 길이었다. 딸의 뜻을 확인하고 엄마는 말했다. 딸이 엄마와는 달라서 좋다고. 자신을 알고 자기 길을 가고자 하는 딸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갈 것인가, 가족이 원하는 역할, 익숙한 구조에 머무를 것인가? <코다>는 자기를 알고 자기 길을 가는 용기를 묻는 영화였다.



2. 여성 감독 션 헤이더의 시선이 아름답다.


<코다>는 단지 장애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성 감독에 의한 여성 영화, 또는 휴먼 드라마라 말하고 싶다. 그동안 영화에서 본 장애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장애인'으로 호명됐으리라. 그러나 <코다>의 농인 부부와 그 아들의 삶은 '온전한' 인간으로 입체성을 띠었다. '문제' 혹은 '어려움'은 비장애인들도 다 가진 것.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어려움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농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비춘 영화였다. 즉, 농인들이 이야기와 장면의 중심을 차지하였다. 이들보다 더 멋있게 나오는 캐릭터가 없었다. 수화가 보여야 하니 카메라는 농인들의 정면을 잡아야 했다. 뿐 아니라 중년의 농인 부부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친밀하게 소통하며 사는 모습이 멋있었다. 루비의 남자 친구도 루비보다 돋보이지 않는 캐릭터로 그려줬다. 매력적인 음악 선생님을 백인이 아닌 멕시코 출신으로 한 것 역시 영화의 다양성 균형을 잘 잡아준 포인트였다.



<코다>의 션 헤이더 감독


영화 제작노트에서 감독 션 헤이더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현장에서 디렉팅은 당연히 수어를 사용했지만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신호나 팬터마임을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액션'이나 '컷'이라고 외칠 수 없어서 우리만의 신호를 만들 필요가 있었죠. 배 위에서 저는 조타실 바닥에 누워 농인 배우인 트로이 코처에게 다시 연기해달라는 말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대신에 그의 발을 붙잡기도 했어요.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 저에게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틀을 깨버렸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수어를 배우고… 감독으로서 지금까지 겪지 못한 경험들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코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열리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는 농인과 청인으로 구분 짓지 않고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죠. 누구든 이 작품에 들어올 수 있어요"



3. 농인 배우들의 모습도 연기도 아름답다



말리 메트린/ 오빠 다니엘 듀런트, 엄마 말리 메트린, 아빠 트로이 코처



농인 배우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영화로 처음 알았다. '헐리우드의 사각지대'라는 말도 이해하게 됐다. 장애인 영화 자체가 귀한데 장애인이 연기하는 영화란 전체 영화의 한자리 대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세 사람의 농인 배우를 알게 된 게 그만큼 기쁘고 반가웠다.


목소리로만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손으로 하는 말, 표정과 행동과 삶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고 전달력이 좋았다. 연기도 외모도 모두 출중한 배우들인데,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만큼 통역 없이도 나를 울고 웃게 하는 연기였다. 코다 루비가 노래를 잘하는 게 이상하지 않듯, 농인 배우의 존재 역시 당연한 세상인데, 내 시야가 좁았을 뿐이다.


이참에 세 농인 배우들의 이름이라도 단단히 기억하고 싶었다. 아빠 역에 트로이 코처, 엄마는 말리 메트린, 그리고 오빠는 다니엘 듀런트. 특히 말리 메트린은 올해 56세인데 1986년 첫 데뷔작인 <작은 신의 아이들>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해 스타덤에 올랐다. 트로이 코처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농인 역할에도 청인 배우를 많이 써왔던 걸로 알아요. 유명한 배우이기 때문에 명연기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선택을 하지만 제 입장에서 솔직히 그들의 수어는 이해하기 힘들어요. 감독 션 헤이더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현실적인 캐릭터들을 구성해냈죠."



4. 내 말을 하고 남의 말을 듣는 게 아름답다


코다, 말을 하고 듣는 것의 의미를 묻는 영화다. 목소리가 있어야 말을 잘하는 건 아니다. 목소리가 좋다고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농인이라고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다. 귀가 있다고 잘 듣는 게 아니다. 농인이라고 듣지 못하는 게 아니다. 영화 속 농인 가족은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 소통하고 대화를 잘했다. 몸짓과 표정과 분위기를 누구보다다 잘 읽고 들었다. 아빠는 딸의 목소리와 노래를 손으로 느꼈다.


미스터 V를 통해 영화는 말했다. "세상에 할 말이 없는 예쁜 목소리는 많고 많다. 너는 할 말이 있니?" 그의 질문에 루비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자기 속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다고. 코다로 자라서 어릴 때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게 어색한 아이였다. 자기 목소리로 맘껏 노래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루비는 자신을 아는 아이였다. 자기 목소리를 냈고 소통했다. 가족들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길을 갔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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