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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는 게 나는 참 좋다

31년 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무지개를 보았다

by 꿀벌 김화숙


대학 친구를 31년 만에 만나러 가을비 오는 어제 인천 영종도에 다녀왔다.


비 오고 바람 불고 햇빛 나다 흐리다, 소무의도에선 무지개도 보았다. 마치 우리의 삶의 파노라마를 하루 날씨로 압축한 듯한 날이었다. 한 10년 전에 연락이 닿았고 온라인으로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 20대 그 시절 서로를 알아봐 주던, 그만큼 서로를 보고 싶어 하던 친구다. 세월이 우리를 속여 각자 흩어져 다른 길을 돌아 돌아 60대를 코앞에 둔 중년에야 얼굴로 다시 만나게 됐다. 친구와 함께 비도 맞고 바람도 맞고 무지개도 보았다.


올가을이 내겐 무슨 번개의 계절인가 보다. 아니 충동의 중년이다. 번쩍! 뭔가 나를 때리면 나는 몸을 움직여 행동하고 있다. 얼굴 한 번 보자 하면서도 이래저래 밀리며 해를 넘기곤 했더랬다. 지난 주말 급 약속을 잡았고 어제 만날 수 있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여름 비인 양 쏟아부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봐야 하리. 내 몸과 마음이 나를 이끄니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 죽치고 수다만 떨어도 가야 하는 거였다.


이런 내가 참 마음에 든다. 이런 나를 보고 싶어 한 친구가 있어 좋다. 이 모습 이대로, 어제 헤어진 친구를 만나듯 그렇게 편히 다녀와서 더 그런 거 같다. 맨 얼굴에, 편한 옷과 신발로, 날씨 도와주면 걸을 작정하고 갔다. 31년 만의 만남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 외모가 왜 변하지 않았겠는가.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아픔과 상처가 왜 없었겠는가. 삶에 차이가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꾸밈도 과장도 허세도 없이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하나도 안 변했네. 그대로다야~~ "


얼싸안으며 서로에게 하는 첫 고백이었다. 20대 그 풋풋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친구를 통해 모자이크처럼 맞춰지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친구 역시 같은 고백이었다. 나를 만나니 잃었던 자기 모습을 되찾는 기분이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친구였다. 친구도 나도 시대가 규정한 '여성의 삶'을 살아야 했고 나이듦과 함께 점점 자기에게로 돌아오고 있는 것도 같았다. 묻어둬야 했던 젊은 날의 꿈을 좇는 것도 같았다. 친구는 나를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잖아. 새로운 거 시도하기 좋아하고. 나는 공부 열심히 하고 싶었어. 그래서 총명한 너랑 같이 공부하고 싶었고 너를 무지 좋아했지.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갔는데 너는 강의도 잘 안 들어오고 볼 수가 없어서 많이 기다렸지. 넌 학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맨날 '방황'했잖아. 네가 선교 단체에 '안착'하는 거 같더니 결혼까지 하더라? 난 네가 낯설었고, 너무너무 아깝단 생각 많이 했어. 지금 이렇게 만나니 20대 네 모습을 다시 본다야. 우리 이제 같이 뭔가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거울이었다. 풋풋해서 아름답고 그만큼 약하고 불안했던 우리 모습을 떠올렸고 삶의 통찰을 주고받았다. 이제 각자의 삶을, 점점 자기답게 살기를 뜨겁게 응원해 주었다. 우리는 같은 고백을 몇 번이나 주고받았다. "나이 먹는 게 나는 참 좋다." 그랬다. "너를 만나니 나이 먹는 게 참 좋은 거로구나 다시 느낀다." 어찌 다 말로 하랴. 두 중년 여성의 앞날이 나는 진심 기대된다. 나는 나이 먹는 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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