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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추적단 불꽃, 그리고 나

100일 글쓰기 밴드에 쓴 자투리 글 몇 꼭지

by 꿀벌 김화숙


글벗들과 함께 하는 100일 글쓰기가 어느덧 91일 차까지 달려왔다.


지난 열흘 동안 쓴 글을 휘리릭 갈무리해 볼까 하고 돌아보았다. 매일 쓴 글에는 매일의 내 흔적이 남아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읽은 책 이야기, 먹은 음식과 계절과 여행 이야기를 쓴 게 보인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생각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20대 젊은 여성들인 추적단 불꽃 이야기에서부터 지난 시절의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도 있고, 중년의 이영미 작가가 보이니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 내가 보여서다. 자기가 쓴 글을 읽으며 내가 보인다고 말하는 거 이상한가? 하나마나한 소리겠다.


밴드에 자투리로 쓴 글 그대로 몇 꼭지만 가져와 본다.




1. 81일 차 11월 20일-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20대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대학로의 작은 서점 '어쩌다 산책'에 들렀다가 6,800원 작은 책으로 나온 걸 보고 냉큼 샀다. 젊은 날 나는 뜻도 모르면서 계약결혼에 꽂힌 적이 있었다. 책을 읽었고, 나는 뻔하고 전통적인 결혼제도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리라 했었다. 남자의 아래 갇힌 여자로 살지 않으리라 했더랬다.


계약결혼을 몽상했지만 나는 제도권의 결혼을 했고 한 남자와 32년째 살고 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본 데가 없었다. 뻔한 구조를 넘어서지 못하다가 한 번 '이혼'했다. 전혀 새로운 관계로 다시 '결혼'했다. 반농담 반진담 진실이다. 이전의 가부장적인 결혼 관계는 청산하고 새로운 계약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결혼이라는 틀을 유지하되, 사랑과 관계에서는 새로운 길을 가는 중이다.


그러자니 모든 게 실험적이고 더듬어가며 질문하고 시도해 볼 수밖에 없다. 뻔한 관계로 돌아갈 거 같으면 서로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식이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그 시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 그들에게 비할 정도야 되겠는가. 우리는 결혼 제도가 주는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 점은 보완해 가는 얼치기니까.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결혼은 생각처럼 멋지기만 한 건 아니었다. 사르트르는 사상적으로야 얼마든지 앞선 남자였다. 그래 봤자 그가 보고 배운 건 남성 중심의 세계였다. 플레이보이 사르트르를 그 똑똑한 보부아르가 왜 못 버리는지. 여남의 동등한 관계란, 서로 다른 그림이었음이 보였다. 심지어 사르트르보다 더 탁월한 철학자였음에도 보부아르의 삶은 사르트르에게 막히곤 했다.



내가 볼 때 사르트르는 한 여자에 매이지 않는 게 좋아서 계약결혼을 택했던 거 같다. 반면 보부아르는 계약결혼이라 해봤자 한 남자에게 매이고 남자 때문에 속 끓이는 여자의 삶을 벗어나진 못했다. 산다는 게 그런 거다. 당시로서야 세상 막 나가는 사람들처럼 욕도 많이 먹었지만, 들여다보면 그래 봤자 사르트르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새삼스레 내가 '계약결혼'을 읽는 이유도 그렇지 싶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진정 대등한 동료요 파트너로 산다는 게 어떤 그림인지, 우리 문화에선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역사 속의 존 스튜어트 밀과 헤리엇 테일러의 관계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가 그나마 지적인 동료이면서 사랑하는 남녀였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겨우 32년 같이 살고 있다. 서로를 너무 잘 알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인 것 역시 사실이다. 우주와 같이 오묘한 인간을 가까이서 알아갈 수 있는 관계란 특별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점점 서로가 가장 좋은 연인에 비판자이면서 지적인 동반자요 거울이며 선생임을 즐기고 있다. 이건 결코 짧은 시간에 만들기 어려운 관계요 사랑의 주제임에 틀림없다.


책 표지에 있는 문장 중 우리 부부의 삶과 닮은 부분만 좀 옮겨 본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서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확실한 협력자와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각자 사유 체계를 정립하거나 자신들의 작품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항상 자신의 원고를 상대가 읽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격렬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아참, 글벗님들, 짬 날 때 대학로 작은 서점 '어쩌다 산책' 들러 봐요. 너무 좋아서 강추합니다. 사람은 공간의 지배를 받죠. 정말 오래 머무르고 싶은 북카페입니다. 시집 몇 권과 좋은 책 좀 지르고 왔지 뭡니까.




2. 83일 차 11월 21일-추적단 불꽃을 아시나요?


텔레그램 N번방은 알아도 '추적단 불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추적단 불꽃, 이봄, 2020)는 텔레그램 기반 디지털 성착취의 실태를 최초로 세상에 드러낸 이들이 쓴 책이다. 젊은 두 대학생 여성들이 잠입취재로 낱낱이 기록한 'N번방 추적기'는 독자를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 차마 눈으로 볼 수도 그대로 글로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저자들 역시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현실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관심했다. 경찰도 사법당국도 느렸다. 이들에게 욕하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이 몸을 던져 취재하고 갈무리한 자료를 제보받고도 기성 언론은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았다. 선정적인 보도로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 가해자의 입만 바라보며, 그를 악마로 만들어 '가해자 서사'를 보도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피해자의 안위에는 무관심한 언론에 실망한 추적단 불꽃은 2020년 3월 23일 다음과 같이 언론에 입장문을 발표했다.


............


안녕하십니까. 추적단 불꽃입니다. 저희는 대학생 두 명으로 구성된 '텔레그램 기반 디지털 성범죄 추적단'입니다.


불꽃은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범죄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해 여름부터 N번방, 지인능욕방, 딥페이크방, 박사방을 비롯해 디지털 성범죄가 벌어지는 텔레그램 대화방 100여 개에 잠입 취재했습니다. 잠입 취재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약 9개월간 텔레그램을 수시로 확인하며 대화방 내용 중 문제가 될 만한 것을 갈무리해 경찰과 언론에 제보한 바 있습니다.


불꽃은 최초 보도자, 최초 신고자입니다. 저희는 2019년 9월 뉴스통신진흥회 '제1회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한 기사는 지난해 7월 한 달간 텔레그램 'AV-SNOOP 고담방'을 중심으로 퍼진 각종 불법촬영물 공유 대화방과 'N번방'을 잠입 취재한 탐사보도의 결과물입니다. 2019년 9월 저희 기사가 튜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에 공개됐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취재하며 심각성을 인지했고 2019녀 7월 중순, 지방 결찰청에 신고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한계레신문, 2020년 2월 MBC, 국민일보, SBS 등에 제보했습니다. 언론에는 2019년 7월부터 우리가 수집했던 대화방 링크와 갈무리 등의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불꽃은 '최초 보도, 신고자'라는 타이틀을 지키려고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왔습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불꽃의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디지털 성범조히 '문화' 해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기반 성범죄는 거대한 디지털 성범죄 문화에서 빙산의 일각임을 알리겠습니다.


불꽃은 앞으로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며, 텔레그램 기반 디지털 성범죄의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더불어 피해자 지원과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는 디지털 성범죄로 분노하고 불안한 여성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2020년 3월 23일 추적단 불꽃




3. 86일 차 11월 24일- 마녀체력의 두 여자



엊저녁 <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 작가를 얼굴로 만났다. 책이야 도서관에서 봤지만 작가를 얼굴로 만나고 싶으니 강연장에 가 볼밖에. 처음 책이 나왔을 때부터 나는 멋진 제목을 선점당한 배아픔을 느꼈더랬다. 임펙트 쩌는 제목 아닌가. 그 위세를 몰아 두 번째 책 제목은 <마녀엄마>인데 첫 책만 한 임팩트는 아니었다.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게 원래 작가가 쓴 제목이었단다.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서 줄여서 마녀 체력, 중의적이고도 강력한 제목이 됐단다. 잘나가는 출판사 편집인으로서 100여 권 책을 만들었지만 남은 건 고혈압과 스트레스에 저질체력뿐. 그는 운동을 했고 전혀 달라진 몸과 정신으로 살게 됐다.


트라이에슬론, 철인3종경기를 13년째, 경기에 15회 참가했다니 체력에 대해선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다. 마라톤 풀코스 10회,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강철 체력의 여자. 마녀 체력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체력 운동을 하고 있었다. 마녀 체력 맞습니다 맞고요.


궁금하던 작가를 얼굴로 직접 만나는 즐거움이었다. 개 해 체력의 중년에 어떤 계기로 운동하고 몸을 관리했더니 마녀 체력이 되었더라. 나는 그와 공통의 경험을 가진 친구라 여겨버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운동 강도와 기록에서 수준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하는 생활운동이 제일 좋다고 겸손히 말해 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작가 중에 하루키만큼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도 트라이 애슬릿이다. 자전거 타고 수영하고, 달리고 달렸다. 그의 운동은 깊은 글이 나오는 샘 같았다. 이영미 작가도 하루키를 좋아하고 책에도 언급하였다. 그래서 나는 여자 하루키라 이름 붙이려다 참았다.


전문 편집자 출신답게 그는 성공적인 책 쓰기 3T는 보너스였다. Target, Title, Timing. 요즘은 누구나 책 내는 시대, 3T를 잘 맞추란다. 내가 봐도 그도 첫 책은 세 요소 다 잘 맞아떨어졌다. 계속 잘 팔릴 책을 써낼 게 보였다. 55세, 그의 건강과 체력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마녀 체력, 마흔에도 쉰에도, 예순에도 일흔에도, 체력을 기를지어다.




4. 87일 차 11월 27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차차차


뭐하고 놀 생각에 그렇게 콧노래가 나오냐고? 내일이 특별한 날이걸랑. 하여간 놀 건수가 생겼지 모야. 뭐하고 노냐고? 아들하고 딸하고 놀게 될 거야. 우리 셋째 녀석이 내일 큰 시험을 보걸랑. 녀석을 태워주고 맛있는 밥 사주려고 지 누나가 왔지 모야. 그래서 내일은 두 아이들 동행해서 핑계로 놀 계획이거든. 물론 이런 계획도 우리 딸이 짰어. 서울에서 대학원 공부하다가 지 동생 차 태워주려고 왔어.


우리 딸이 운전을 참 즐긴단 말이지. 나랑 다른 점이 참 많은 딸이야. 나는 마흔이 돼서야 운전을 했고, 지금까지도 운전을 썩 즐기지 못해. 장거리는 특히 부담이 돼. 그러니 내 볼일 볼 때만 운전하지 평소는 뚜벅이로 살아. 물론 애들 어릴 땐 엄마 기사 노릇도 했지. 근데 성인이 된 딸 아들이 모두 운전을 하니 내가 가족을 태울 일은 극히 드물어. 내일도 딸이 운전해서 지 동생을 시험장에 데려다준다는 거야.


나? 내일 이른 아침 나도 아이들을 따라가는 거야. 시험장은 광교 쪽 어느 학교래. 8시 전에 녀석을 내려 주고 나면 모녀가 논다는 계획인 거지. 아침에 광교 호숫가를 모녀가 걷고 브런치 집이 문을 열면 분위기 좋은 데서 브런치 먹고 커피 마시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거래. 오후 2시 넘어 막내가 시험 끝내고 나오면 딸이 다시 운전해서 이동할 것이고 맛있는 걸 먹는다는구먼.


나는 내일 저녁엔 서울에서 한 단체 총회에 참석하게 돼.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저녁엔 '공무'를 조금 보는 거지. 아~~ 잠시 후면 우리 셋째가 곧 도착할 거야. 시험 전날 저녁에사 집에 오는 거지. 막간을 이용해서 나는 인증글을 남겼어. 아들 시험 보는 덕에 나는 놀 생각하니 너무 신나. 이번 한 주도 나름 바빴걸랑. 그러니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그치?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할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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