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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좀 바꾸고 갈게요"

기후 정의 청소년 활동가 제이미 마골린의 책 <세상 좀 바꾸고 갈게요>

by 꿀벌 김화숙

“세상엔 여러분의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 책은 청소년 혁명의 선언문이다.”

“우리 함께 하자. 기꺼이 싸우고, ‘이기는’ 활동가가 되자.”


<세상 좀 바꾸고 갈게요>(제이미 마골린, 서해문집, 2021)의 책머리에 있는 ‘저자의 말’에서 뽑은 문장들이다. 8쪽에 걸친 긴 글인데 이렇게 발췌해 놓으니 과연 혁명의 선언문답다. 누가 청소년을 어리다고, 감히, 가만히 있으라 했던가? 세상을 바꾸자고, 기꺼이 싸워서 이기자는 ‘우리’를 아이라 하지 말자.


책의 원제(Youth to Power: Your Voice and How to Use It)는 ‘우리’가 누구인지 더 분명히 보여준다. “세상 좀 바꾸고 갈게요”도 '기후 위기와 젠더 문제가 공부만큼 중요하다고 믿는 십대들에게’라는 부제도, 청소년의 절박한 목소리다. “가만히 있지 말고 싸워서 세상을 바꾸라.”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책은 “세상은 누가 어떻게 바꾸는가?” ‘체인지 메이커’ 청소년들이 묻고 행동으로 답하는 책이다.


저자 제이미 마골린(19세)은 국제 청소년 기후 정의 조직인 ‘제로 아워’ 공동 설립자다. 2018년 여름, 워싱턴 D.C.와 전 세계 25개 이상 도시와 '청소년 기후 행진'을 이끌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에게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영감을 주었다. 콜롬비아계 미국인, 지역 공동체 조직가, 활동가, 작가, 연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지역 선거 사무소에서 최연소 인턴으로 활동했고, 풀뿌리 조직에 참여했다.


저자는 ‘청소년 vs 워싱턴주 소송’에 원고로 참여해, 청소년 세대가 살기 좋은 환경을 누릴 헌법상 권리를 부정한 데 대해 워싱턴 주를 고소했다. 또 <뉴욕타임스>, <타임>, <가디언>, CNN 등 미국과 영국의 주요 매체에 칼럼을 실었고,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연설했다. 2018년 <틴 보그>의 세상을 바꾸는 21세 이하 여성 21인, <피플>의 세상을 바꾸는 여성 25인, 2019년엔 BBC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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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의 추천사대로 이 책은 “행동하는 우리를 위한 도구 상자” 맞다. 1장~3장은 먼저 자신만의 ‘왜’를 찾은 후에 행동주의 여정을 시작하라는 조언이다. 지역 공동체나 비영리 단체에 들어가기 전 이곳저곳 살피고 공부하며, 지역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며, 목소리 내는 법을 안내한다. 4장부터 저자가 제로 아워 팀을 시작한 과정, 재정 조달, 조직 운영 방법이다. 예술적 기량을 발휘하란다. 청소년 활동가가 가진 역량과 ‘없는’ 힘을 알려 준다. 실패 경험을 두려워 말라. 부당한 법을 어겨야 할 때 시민 불복종 행도 가이드가 있다.


9장부터는 정치인, 의회, 로비, 언론과 소셜미디어 관련 전략이다. 청소년 활동가로 산다는 게 낭만적인 게 아니다. 일상과 학교와 행동주의에서 조화를 이루는 법. 번아웃에 빠지지 않는 법, 번아웃을 대처하는 법도 안내한다. 16장부터 마지막 세 장은 활동가 동료와의 관계 돌보기, 공동체 만들기, 그리고 앞선 세대를 인정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활동 가이드다.


청소년 행동주의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주는 건 책의 큰 장점이다. 3쪽 분량으로 요약된 3분 인터뷰를 각 장마다 한 명씩 배치했다. 이름이라도 들어 보자. 후안 다비드 히랄도 멘도사, 피전 파고니스, 데빈 할버, 프란잘 제인, 사라 제이도, 지나 압둘카림, 말리아 홀레만, 하디야 압잘, 안드레아 알레한드라 곤잘레스, 에즈라 그레이슨 휠러…….(추천사를 쓴 기후 정의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저자까지 19명의 활동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활동가들이 얼마나 다양한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여성 권리 활동가, 기후 정의 활동가, 트렌스젠더 권리 활동가, 인도 여성 권리 및 이민자 권리 활동가, 퀴어 아시아인 옹호 활동가, 블랙 라이브스 매터 활동가, 총기 폭력 예방 활동가……. 청소년 활동가의 목소리를 조금만 들어 보기로 하자.



“이슬람교도 미국인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충격적이었다. 몇 달 침울하게 지내다 여성 행진에 참여하러 워싱턴 D.C.로 갔다. 시위 현장을 보니 ‘그래, 세상이 끝난 건 아니었구나. 투쟁심이 여전히 살아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카운티 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위원회의 대표성이 너무 떨어지더라. 히스패닉도 청소년도 대변자 할 위원이 없었다…….” -하디야 압잘하디야 압잘(19세, 여성) 청소년 시민 참여 활동가, 시카고 듀페이지 카운티 위원회 출마했다.



"활동을 시작한 건 아홉 살 때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설했다. 그전에는 서구적 교육 체계 밖에서 가르침을 얻으며 원주민 문화 속에서 성장한 걸 행동주의의 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2016년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반대 투쟁에 내 인생을 던지게 됐다. 열두 살이었는데, 그때 그 송유관이 우리 공동체 바로 옆에 지어질 예정이란 걸 알게 된 거다. 나는 십대로서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고민했다....."

-토카타 아이언 아이즈(17세, 여성) #NODAPL 운동 주창자, 수자원 보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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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또 다른 장점은 새로운 활동과 단체 조직에 참고할 자료 상자들이다. 예를 들어 ‘제로 아워의 탄생’ 상자는 ‘제로 아워의 문제와 해결책’이다. ‘나는 어떻게 제로 아워 팀을 꾸렸나’ 상자는 아이디어 단계부터 사람을 만나고 조직이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제로 아워 사명 선언문, 비전 선언문, 연대 조직들, 자금 조달 타임라인, 심지어 ‘힘 있는 어른들이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의 대처법’까지. 그대로 쓸 수 있는 도구들이다.


제이미 마골린의 '제로 아워의 탄생' 도구 상자를 열어 조금만 더 보자.


1. 문제

기후 위기의 시급성과 청소년 및 어린이의 삶과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데 대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부족하다. 2017년에는 기후 변화와 기후 정의 관련 내용이 주류 언론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돼 있었으며, 정치권과 민간 부문, 일반 대중 모두 기후 위기의 시급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환경 운동도 다양성 부족, 인종 차별 문제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여성 청소년과 유색 인종 청소년이 미국 기후 운동을 폭넓게 이끌 수 있는 전국 규모의 공식적 공간이 없었다.


2. 해결책

여성 청소년이 이끄는 기후 정의 단체 제로 아워를 통해 세계 청소년 기후 행진과 로비 데이를 진행해 기후 위기의 시급성에 대해 세계적 관심을 이끌어낸다. 106-107


3. 제로 아워 사명 선언문

제로 아워의 사명은 기후와 환경 정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화의 장에 다양한 청소년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로 아워는 청소년이 이끄는 사회 운동 조직으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구체적 행동을 취하고자 하는 새로운 청소년 활동가, 조직가들에게 참여 통로, 교육과 각종 자원을 제공한다. 우리가 미래에 단지 생존하는 것을 넘어 번창하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안전하며 건강한 자연과 천연자원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다 함께 이에 대한 권리와 접근권을 보장받기 위해 활동하는 거침없는 청소년 조직을 표방한다. 112


4. 제로 아워 비전 선언문

기후변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 영향은 완전히 불공평하게 닥친다. 미국 내에서나 지구 전역의 최전선 공동체(frontline communities)들은 기후 변화로 다른 사람들보다 막대한 수준의 직격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해결책에도 가장 가까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이 공동체들은 적절한 해법과 변화 방안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이들 고유의 지혜와 경험, 리더십을 중심으로 영향력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최전선 공동체-유색 인종, 원주민, 빈곤층, 노약자, 여성 등 사회 인프라에 대한 접근도가 낮아 기후 변화의 영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계층.




책이 여성 청소년의 목소리라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책의 특장점이라 하겠다.


여성, 그리고 청소년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는 얼마나 귀 기울일까? 한국처럼 미국 청소년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미래를 준비하라”란 말을 듣고 자란단다. 저자는 되묻는다. “그렇게 공부해서 준비할 미래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지구가 기후 변화로 더는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19세 소녀 활동가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을 귀 있는 자 누구인가 묻는 책이다.


제이미 마골린은 청소년만 기후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어른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인정한다. 세대 간의 대립을 조장하거나 앞서 애쓴 세대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대를 아우르는 운동을 하자고 분명히 말한다. 청소년들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전진하자고 독려한다. 한국의 ‘청소년 기후행동’도 제이미 마골린과 제로 아워에게 영감을 받아 조직될 수 있었다.


<세상 좀 바꾸고 갈게요>를 읽는 청소년은 세상을 바꿀 용기와 지혜를 얻을 것이다. 어른에겐 다음 세대에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 통찰과 지혜를 주는 책이다. 세대와 상관없다. 읽고 토론하며 기후 변화를, 기후 정의를 고민하자. 자기 ‘혁명’과 세상을 바꾸는 힘을 함께 얻게 될 것이다.


여성 청소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 보자. 공감하자. 청소년 활동가들이 이기도록 지지하는 어른이 되자. 거기 예수를 따르는 길과 닿은 새 길이 보일 것이다. 어린 사람들처럼 되는 게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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