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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책벗들과 2018년 노벨문학수상작 <태고의 시간들>을 토론하다.

by 꿀벌 김화숙


엊저녁 안산 한살림 조합원 마을모임 '책살림' 12월 토론 모임을 마쳤다.


올해 마지막 모임의 책은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이었다. 연말에 어울리는 깊고 넓은 서사시 같은 장편소설이었다. 은유와 상징 가득한 문학의 아름다움에 젖는 밤이었다. 놀라운 세계관과 독특한 구성으로 우리의 인식에 지진을 많이 일으켜 준 책과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 좋은 여운이 길다.



"내가 소설을 잘 못 읽는구나 생각했다. 낯설어서 끝까지 읽기 바빴다.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시간 개념, 게임의 시간, 신의 시간, 이게 모두 무슨 뜻일까? 세상 어디나 역시 삶은 한 맺힌 게 보이는 거 같더다. "


"여자들의 삶, 3대에 걸친 가족사 같다. 책에 보이는 신이 내겐 신기했다. 그동안 알고 있던 개념을 다시 묻게 되더라. 신이 초월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신화 같다. 여자들의 삶은 어디서나 다르지 않은 거 같지?"


"처음엔 당황했는데 읽을수록 서사의 재미가 느껴졌다. 큰 세상을 하나 본 듯하다. 맞아 세상이 보였다. 그게 사람 중심만 아니라 동물 버섯, 커피 그라인더까지 다 보여주었다. 책벗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더라."



책벗들의 목소리가 곧 내 마음이었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다 알 수 없어도 충만함과 숭고함과 생명의 힘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책이었다. 한 사람 크워스카로 모든 질문이 연결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간의 눈에는 하찮고 창녀같고 바닥에 던져진 존재이나, 그 속에 신이 있고 온 세상이 있고 인간의 진실이 있는 존재. 여성이란 무엇인가? 다시 묻게 했다.


신을, 그리고 세상을 알려 하는 자, 여성을 다시 보라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크워스카는 어떤 방식으로 메뚜기가 하늘과 이어져 있는지, 숲길의 개암나무는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더 많은 것도 보았다. 모든 걸 관통하는 힘을 보았고, 그 힘이 작동하는 순리를 이해했다. 우리의 위와 아래에 펼쳐진 또 다른 시간과 또 다른 세계의 윤곽들도 보았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또한 보았다."(26쪽)



서로 물으며 함께 고민하며 우리는 다시 읽었다. 각자 나누고 싶은 장을 열어 돌아가며 낭독했다. 무엇이 보이는지 어떤 게 궁금한지 자유롭게 나눴다. 집단지성을 믿고 같이 읽는 시간, 낭독의 힘이었다. 이 깊은 심연을 누가 한 번에 닿을 수 있으며 어떤 언어로 다 말할 수 있으랴. 모르는 대로 읽는 즐거움을 누렸다.



태고, 시간, 공간, 원시성, 전쟁, 사랑, 생명력, 출산, 여성, 신관, 이원론, 초월성, 내재성, 문명, 자연, 세상, 게임......




알라딘 책소개 <태고의 시간들>에서 조금 가져와 본다.


2018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축의 대표작. 폴란드의 국민 작가 반열에 오른 토카르축의 장편소설이 국내에 번역.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폴란드의 한 마을 '태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허구와 현실이 절묘하게 중첩되는 공간인 이 가상의 마을 '태고'는 기이하면서 원형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는 곳이다.


작가는 새롭게 창조한 소우주인 이 마을에서 20세기의 야만적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시간을 기록한다.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로부터 분할 점령당했던 시기, 1.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과 전후 폴란드 국경선의 변동, 사유재산의 국유화, 냉전 체제와 사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폴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이 마을 주민의 신화적 삶과 어우러진다.


토카르축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유서 깊은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폴란드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니케 문학상의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 부문으로 선정되었고, 시사 잡지 「폴리티카」가 선정한 '올해의 추천도서'에 뽑히기도 했다.




코로나가 창궐한 가운데도, 줌으로, 매달 책모임을 줄기차게 달릴 수 있었음도 새삼 고맙다. 매번 느끼지만, 이렇게 안심하고 책 이야기를 즐기는 벗들이 있음이 가장 고맙다. 아이들 키우며 직장 일하며, 대한민국 아줌마의 일상이 얼마나 바쁜가. 한 달 한 번 밤 9시, 아이들 재우고, 책모임을 지킨 책벗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책살림 지기로서 5년을 채워 토론 진행하고 수다 떨고 울고 웃으며 잘 논 내게도 큰 박수를 보낸다. 내 복이다. 모임을 장기간 잘 지켰다고 하니, 책살림 잘했다고, 우리는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쳤다. 함께 읽고 토론할 벗들이 없으면 장기 모임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함께할 새해도 기대된다.


이제 남은 한 해 우리는 새 해 읽을 책 목록을 함께 만든다. 우선 책벗들이 한 권씩 추천한다. 한살림 출판사 책을 포함해 책살림 지기 내가 장르와 주제와 작가 등을 고려하며 책을 보탠다. 어떤 책 어떤 작가와 신나게 놀게 될지, 책살림의 새 한 해가 진심 기대된다. 태고의 시간들, 책살림의 시간들, 우리의 시간들.....



2021년 <책살림>이 읽고 토론한 책 목록


1. 한 살림 선언, 한살림 모임, 한살림, 2019

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2019

3. 내가 시작한 미래, 하만조 외, 한살림, 2017

4.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 앤절라 가브스, 문학동네, 2020

5. 엄마의 20년, 오소희, 수오서재, 2020

6.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김영사, 2019

7.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김금숙, 서해문집, 2020

8. 아무튼 비건, 김한민, 위고, 2018

9. 인라케시 알라킨, 서정록, 한살림, 2017

10.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추적단 불꽃, 이봄, 2020

11. 상주 여행(문경새재 아리랑, 상주 아리랑, 지태옻칠아트센터)

12.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은행나무, 2019

-책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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