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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란

자기소개란 참 재미난 일 같다

by 꿀벌 김화숙


자기소개란 참 재미난 일 같다.

어떤 맥락, 어떤 매체,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 이야기도 조금씩 변주될 수 있으니 말이다. 너저분한 책상정리랑 자기소개글쓰기가 조금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봤다. 귀찮은데 하고 나면 기분이 좋으니까.


어제 내 근황 소식을 짧게 쓸 일이 있었다. '한국여성신학'지 겨울호를 위한 서평 청탁과 함께 회원소식을 달란 요청이 있어서였다. '여신협'(여성신학자협의회) 회원으로 지낸 십수 년 동안 회원소식은 처음이었으니, 내가 나름 '소극적' 활동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여신협 회원소식이란 주로 여성신학계의 근황이기도 했다. 누가 학위를 했고 어느 박사가 어디에 논문을 냈고, 누가 목사 안수를 받고, 유학을 마쳤고, 누구는 어느 교회로 옮겼고 혹은 어떤 강의, 현안 이슈, 국제 행사, 교계 행사 등등. 나같이 '삶의' 여성신학을 하는 아줌마 소식관 여러 모로 결이 다른 거였다. 그러나 그런 구별 자체가 바로 여성신학과 배치되는 세계관이다 싶어, 휘리릭 일필휘지로 써 보냈다.


나온 김에 여성신학 이야기를 조금만 짚자. 여성학 또는 페미니즘이 남성 중심 가부장 문화에 딴지를 걸듯, 여성신학 역시 남성 중심 신학을 비판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듯, 개인적인 것이 신학적인 것. 모든 배제되고 주변화되던 존재에 목소리를 주고 여성의 눈으로 성서를 읽는다. 따라서 쟁쟁한 여성신학 박사님들 사이에 내가 있는 것 자체가 여성신학 현장이고 실천 아니겠나. 작은 자들이 말하게 하는 게 예수 정신이니까.


그럼에도 별 내세울 것 없는 '회원소식'을 글로 제출하려니 살짝 민망했다. 나는 자기 삶이니 생생한 감동감사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뭐지? 할지 누가 알겠나. 정황과 맥락에 따라, 나이와 위치에 따라, 무슨 소린지 혹시 못 알아듣게 쓴 건 아닌지 등등. 그러나 그게 나고 내 근황이라는데 어쩔 것인가. 있는 대로 갈밖에. 어차피 글은 손이 알아서 쓰는 것. 손이 마구 달려가 마감해 버렸다.


쪽팔릴 작정하고 자기소개글 두 개 공개해 본다.


근황 인사를 8년 전에서 시작할게요. 제가 간암 수술과 갱년기를 통과한 때거든요. 그때까지 당연한 줄 알던 것들이 뒤흔들린 때였죠. 자기 주도적 자연치유를 하며 몸과 맘, 관계와 신앙까지 ‘변혁’이 일어났어요. 이후 저는 ‘그림자 사모’ 말고 ‘브런치 작가, 페미니스트 독서 활동가, 시민활동가 김화숙’으로 살게 됐어요. 다양한 글쓰기로, 독서와 영화 토론 진행으로, 시민활동과 강연 등으로 예수 정신과 페미니즘을 ‘살고’ 있어요. 지난가을 <B형 간염 간암 자연치유 일기>란 브런치 북도 발간했어요. 제가 진행하는 페미니즘 토론 모임들 중 교회에서 하는 ‘백합과 장미’만 소개할게요. 책과 영화로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을 짚어 온 게 어느새 3년이 차네요. 담임 목사인 짝꿍은 교회 안팎 참여자 중 하나로 동참하죠. 아, 이 모임에서 남녀노소 우린 모두 평어 써요. 내년에도 계속 온라인이겠죠. 12월 11일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에서 있을 ‘416 합창단 2021 기획공연’ 지금 연습하고 있어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저는 알토 시민 단원으로 노래한답니다. 한 달 한 꼭지 ‘별에게 보내는 편지’ 연재 등, 세월호로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하는 글을 쓰고 있어요. 이곳에서도 글로 또 뵙겠습니다!
<한국여성신학>지에 보낸 회원소식글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와일드>에서만 길을 잃을까요? 저는 갔던 길도 까먹고 헤매기 잘하는 지독한 길치랍니다. 길치가 새 길 만든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저는 가족력 B형 간염 보균자로 50대에 간암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오빠도 간경화 간암으로 돌아가신지라, 병원에선 제게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연치유를 택했습니다. 2년 만에 30년 붙어 있던 B형 간염 항원이 소실되고 항체가 생겼습니다. 간암 수술 8년 차, 저는 20대 때보다도 더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저의 'B형 간염 간암 자연치유 일기'를 공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듭니다. 내 안에 있는 '100명의 의사’를 깨우면 몸과 삶이 달라지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달라진답니다. 우리, 함께 걸으며 길동무 할까요?-
내 브런치북 <B형 간염 간암 자연치유 일기>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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