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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와 반말 트다

왜 아버지는 아버지로 어머니는 엄마로 부를까?

by 꿀벌 김화숙


엄마~~ 안녕? 엄마를 엄마로 부르고 싶었어. 엄마~~ 어때?



내게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이 생겼다. 친정 엄마에게 거의 50년 만에 반말하는 사이로 돌아갔다. 어떤 사람들에겐 당연한 호칭일 텐데 나는 호들갑 떨며 되찾아 가고 있는 셈이다. 전화해서 대뜸 엄마~~ 라 부르며 반말로 시작해 버리니 내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니'를 버리고 '엄마'를 부르니 반말은 따라오는 것. 그놈의 존댓말이 뭔지. 징글징글한 그놈을 드디어 버리니 하늘을 날아갈 거 같다.


우리 엄마 호칭엔 약간의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던가?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친구는 '어머니'라 부르고 있었다. 내 눈엔 참 있어 보이는 집이었다. 왜냐면 나는 '아버지'와 '엄마'로 부모를 차등적인 호칭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아빠'로 바꿀 자신은 없어서 나는 엄마를 '어머니'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울 아버지 살아계신다면 아빠~~ 하며, 새로운 친구가 될 텐데, 아쉽다. 아빠~~ 불러 보곤 한다.)


엄마를 어머니로 바꾸던 나를 생각하면 빙긋 미소 짓게 된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될 싹이 보인달까. 성 평등이란 말을 몰랐지만 느낌으로 알았던 것이다. 왜 아버지는 아버지로 어머니는 엄마로 부를까? 엄마만 반말 대상이지? 어린 내게 그건 불의였다. 시골에서 아버지는 아버지고 어머니는 엄마인 경우가 일반적이었는데 말이다. 울 엄마의 위치가 아버지보다 낮다면 나라도 엄마를 존중하고 싶었다. 내가 호칭을 바꾸자고 말했고 우리 5남매는 아버지 어머니, 다 같이 존댓말을 하게 되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 세월이 흘러 흘러 나는 어느 날부터 가까운 이들과는 반말하기에 꽂힌 인간이 됐다. 나이에 따라 반말 존댓말 다르게 하면 알레르기 반응한다고나 할까. 어떨 땐 구역질 나게 싫다. 나보다 나이 10년 많은 친한 선배 목사님께 반말 튼 일은 짜릿한 사건이었다. 그 목사님네 부부와 우리 부부가 만나면 호칭이 서로 '목사님' 서로 '사모님'인 게 영 재미없었다. 어느 날 내가 미친년이 되어 제안했다. 우리 서로 이름 부르자. 화숙이라 부르라. 불편하냐? 내가 언니 오빠라 불러 줄게..... 그렇게 반말하는 사이가 됐다.


나이 먹는 즐거움을 나는 '자유'라고 노래 부른다. 체면이니 권위니 그딴 걸로 매이지 말자 이거다. 남편과도 여보 당신 버렸다. 숙이와 덕이가 되고 반말하니 세상 가볍고 좋다. 가까운 벗들과 반말 트는 재미가 날로 좋다. 20대 친구들이 화숙이라 부르며 반말하면 내 영혼에 자유를 느낀다. 내가 진행하는 토론 모임 세 개엔 모두 반말이다. 교회와 여성 단체 모임에서도 상호 반말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 세 아이들과도 합의했다. 그들이 데려올 파트너들도 엄마 아빠와 반말하기로.


그런데 왜 내 엄마와는 계속 존댓말을 해야 하지? 불편하면서도 선뜻 바꾸자 하기 쉽지 않았다. 엄마가 먼저 제안하면 얼마나 좋으랴. 지난번 짝꿍과 함께 엄마한테 갔을 때 나는 때가 무르익었음을 확실히 느꼈다. 엄마 인터뷰를 하는데 내 입에서 자꾸 반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반말 쓰다 존댓말 쓰다 하는 내가 싫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바꾸자!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결자해지, 그저께 전화에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과감히 반말해 버렸다. (무슨 결자해지씩이나, 나이 먹는 즐거움이지.)


노인네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역시 엄마 맘도 나와 같았다. 엄마~~ 통화하면서 몇 번을 불렀는지 모른다. 나는 엄마한테 내 마음을 전했다. 내가 나이 먹어가니 자식들하고도 친구가 되더라. 우리 아덜 모두 엄마 아빠하고 반말한다. 사위 며느리 봐도 서로 반말하기로 했다. 자꾸 우리 엄마 생각나더라. 엄마도 자식들하고 친구 되고 싶을 텐데, 존댓말 하는 듣는 게 좋을까? 바꾸면 엄마도 좋아할 거 같았다. 나는 엄마하고 친구로 같이 늙어가련다. 담번엔 시어머니한테도 엄마~~ 반말 틀 예정이다......


엄마의 반응은? 너무너무 좋아하더라. 내가 진작 들이대지 못한 게 미안할 정도였다. 우리 엄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같은 마음이었으면서도 그걸 먼저 말하진 못하고 자기 검열만 했단다. 자식들 앞에 솔직히 망가지며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못할 만도 했다. 더구나 망한 양반 행세하느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여전히 잔소리 대마왕이지만, 딸 덕에 반말들은 울 엄마, 얼마나 좋아하는지 들어보자.


"좋고말고. 내가 솔직히 딸이 엄마하고 반말하는 할마시들 보면 부럽더라. 저 할마시는 내가 볼 때 참 꼬장꼬장한데 자식들은 우째 저래 친구같이 대하노 싶더라. 나이 먹은 자식이 할마시 보고 엄마~~ 이래 부르면 내 귀가 번쩍 뜨이더라. 그런 관계가 참 보기 좋더라. 그런데 우리 아덜은 우째 나를 마카 어머니라 카고 존댓말을 하나 생각해 봤다. 내가 하도 너그를 엄하게 키우고 못되게 마이 해서 너그가 어마이를 어렵게 대하능갑다. 그래 생각했니라. 내가 참 모질게 하긴 했지만, 그때는 다 그러고 안 살았나. 딸이 엄마라 부르이 좋다. 오늘 참 좋은 날이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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