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법, 잊지 않으려는 기록

단원고 2학년 1반 한고운에게

by 꿀벌 김화숙


카메라 감독을 꿈꾸던 고운아!


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카메라가 떠오르곤 해. 너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진 찍기였고 네 꿈은 카메라 감독이었으니까. 아빠가 찍어주신 네 사진 있잖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얼짱 각도로 찍은 네 모습, 정말 너무 멋져. 이 모든 이미지는 너를 기억하게 하면서 또 너를 기억하는 방법이 되곤 하지.


중학교 졸업 앞둔 어느 날 아빠는 네게 아주 특별한 카메라를 선물하셨지. 몇 년을 벼르고 별러 사신 아빠 카메라를 아빠는 딸에게 주셨더구나. 아빠도 너만큼 사진 찍기를 좋아하셨는데, 네 열정과 꿈을 위해 기꺼이 주셨지. 너를 향한 아빠의 마음이 카메라에 담겨 전해지더구나.


"고운아, 이거 고장 나도 되니까 너 찍고 싶은 대로 실컷 찍어 봐. 아빠가 해 보니까 찍으면서 배우는 게 진짜더라. 사진은 거짓말을 안 해 딱 애쓴 만큼씩 좋아지거든."


캬~~ 그날부터 카메라는 네 보물 1호가 됐고 네 꿈이었어. 늘 네 손엔 카메라가 있었지.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너는 학교 도서관에서 카메라에 관한 책을 빌렸고 사진을 스스로 공부하더구나. 공책에 기록해가며, 너만의 생각과 의도대로 사진을 찍어가더구나. 교내 UCC 대회에서 너는 당당히 상을 받더구나. 멋져!


엄마 아빠께 참 오래 기다린 딸로 태어난 너. 어릴 때부터 뭐든 신기한 건 묻고 궁금해하고 기록하길 좋아하던 너. 겁 없고 뭐든 시도해 보는 아이. 카메라만 있으면 너는 잘 놀았어. 동생 수광이랑 단짝 친구 희정이 남매랑 너희 4총사는 사진 찍고 영상 찍으며 참 창의적으로 놀더구나. 춤을 연습해서 동영상을 찍었고 전날 본 드라마 한 장면을 연습해서 찍는 식이었어. 영상 담당은 물론 주로 고운이가 했지.



SE-39960c79-0644-49c3-a6f1-2b2070e2c1c2.png?type=w1
SE-080ea65e-5743-4535-b0fa-de2c1d197cd3.png?type=w1


아빠 카메라를 뺏으려고 애를 썼던 아이

사람들 사진 찍어주는 걸 좋아했던 아이

구름 따라 햇빛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과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교정을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던 아이

"나는 무거운 카메라도 잘 메고 다닐 수 있을 거야."

방송사 카메라 감독이 되어 전 세계를 누비고 싶어 했던 당찬 아이

'추억을 찍으러 갑니다.' 마지막 메시지 남기고

긴 추억 여행을 떠난 아이는 지금

하늘길 어디선가 친구들의 희로애락과

끝없이 펼쳐지는 멋진 풍광을 담는

카메라 감독이 돼 있을 것입니다.

카메라 감독을 꿈꾸던 고운이에게 이 패를 드립니다.

-2018년 MBC가 고운이에게 준 명예 카메라 감독 임명패



카메라 감독 고운아!


MBC TV 카메라맨 협회가 준 '명예 카메라 감독 임명패' 마음에 들어? 패에 새겨진 글을 옮겨 봤어. 엄마가 너 대신 임명패를 받고 언론 인터뷰도 하셨지. 너를 그리며 눈물로 말씀하시던 엄마를 잊을 수가 없구나. 키도 크고 체력이 좋고 활발했던 너는 틀림없이 무거운 카메라도 잘 메고 다니는 카메라 감독이 됐을 거야. 지금도 긴 추억여행 중에 카메라를 메고 종횡무진 작품을 찍고 있는 네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멋진 작품 찍고 있지?



SE-282edeae-50ac-11ec-913c-f7a20cef5c1d.jpg?type=w1
SE-702f4003-4fef-4259-8068-1bac062aaa66.png?type=w1


부르고 싶은 이름 고운아!


단원고 기억교실 네 책상에 놓인 카메라 말이야. 2학년 1반 복도 쪽 분단 맨 뒷자리 네 책상 왼쪽 모서리에서 오도카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더구나. 지난달 기억교실에 가서 또 만져보고 왔어. 그 옆엔 아빠가 찍은 명작, 네 독사진이 있고 말이야. 너는 서울 예술대학 방송영상학과를 거쳐 KBS 카메라 감독이 되고 싶었잖아. 너를 기억하는 KBS 관계자가 기억교실을 다녀가며 네게 카메라를 선물하고 갔다는구나.


또 다른 카메라 이야기도 있어 고운아. 엄마가 '스물두 살 너에게 주고 싶은 선물'로 그림으로 그리신 카메라 알지? 그토록 갖고 싶어 한 비디오 촬영용 큰 카메라를 네게 사 주지 못하신 게 엄마 맘엔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는구나. 너를 보내고 4년이 됐을 때 엄마의 마음을 큰 카메라 그림과 글로 액자에 담아 전시하게 되었지.


"카메라 감독이 꿈이었던 고운아! 아름다운 것들만 담고 유명한 카메라 감독으로 당당하게 세계를 누비며 살길 바란다. 고운아 미안해 사랑해." -스물두 살 고운이에게 엄마가



SE-b201ba9d-50ab-11ec-913c-130f14e3453c.jpg?type=w1
SE-b2067591-50ab-11ec-913c-9565b60a0b67.jpg?type=w1
SE-b2095bc4-50ab-11ec-913c-1da0019410af.jpg?type=w1


카메라 감독 고운아!


너처럼 사진과 영상으로 표현하는 법을 나도 배우고 싶어. 글보다 사진이, 영상이 더 잘 말하고 더 많이 표현할 때가 있잖아. 나도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면 카메라 감독 고운이를 생각하곤 해. 사진작가 이동호의 <기억의 방법>을 읽은 것도 네 덕분이었어. 부제 '잊지 않으려는 기록'도 제목만큼 마음에 들었어.


2014년 12월에 나온 책이니 느낌 알겠지? 잊지 않으려면 기록하기를 멈추면 안 되는 거 맞지, 고운아. 얼마나 우리 기억이란 허약한지 말이야. 책은 노란 표지에, 시작과 끝, 그리고 각 장 사이에 배치된 노란 여백의 속지가 인상적이었어. 2014년 팽목항과 안산, 그리고 광화문에서 찍은 세월호 관련 사진들에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야.


"어쩌면 우리는 지금 커다란 벽 앞에 서있는 것일지 모른다. 담쟁이가 저 벽을 넘기 위해 더디게 한 뼘씩 성장해 가듯이 우리도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도 있다."(164쪽) - 방송인 김미화



20211129%EF%BC%BF091522.jpg?type=w1
SE-b20a1f15-50ab-11ec-913c-2988cbef65fb.jpg?type=w1
SE-b210d5dd-50ab-11ec-913c-21ed0eda33eb.jpg?type=w1


제1장 '슬픔'에 실린 유시민 작가의 글도 울림이 컸어.


"자아는 기억의 덩어리이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관계의 시작은 우연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를 뻗고 풍성한 잎을 매달게 만드는 것은 기억이다. 딸, 아들,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 동생, 남편, 아내, 친구, 선생님, 그 대상이 누구든, 사랑의 감정은 모두 기억을 먹고 자란 것이다. (21쪽)


고운아! 기억하기 위한 노력, 기억의 덩어리, 감정은 모두 기억을 먹고 자란다..... 책에 실린 사진을 다 보여 줄 수 없어 아쉽구나. 결코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 문구들을 잊을 수 없구나. 들어 볼래?


"배가 160척 비행기가 30대 잠수부가 500명.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 그러나 사고 첫날, 실제 투입된 잠수부는 고작 16명 실종자 가족들은 배도 비행기도 보지 못했다. 왜 구조를 안 했을까? 왜 거짓말을 했을까?"

"우리 아이가 왜 죽었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국회의원도, 정부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냥 덮을까요? 다음 순서는 당신입니다."

"당신의 피붙이가 무고하게 참사를 당했을 때, 당신은 우리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나요?"



사랑스런 고운아! 다시 미안해. 너를 기억하기 위해 늘 노력하며 기록하며 살게. 고운아 사랑해~


(단원고 2학년 1반 한고운에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