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자주 듣던 숫자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하루 이틀만 아프고 사흘 째 영면하자!"라는 뜻이다. 100세 시대를 사는 노인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오늘 거룩한 글쓰기 시즌 2 마지막 날, 내 마음에 다가온 숫자다. 100세 인생, 9988123, 그리고 100일 글쓰기. 숫자 100 잔치다.
100일 참 짧다. 글감이 떨어질 새 없이 쓰다 보니 끝이다. 100일 덕분에 두 100을 종종 생각했다. 하나는 시험 100점, 다른 하나는 100세 인생. 100점 시험지를 생각하면 재미가 살짝 떨어졌다. 다 채우지 못하면 어딘지 실패나 게으름일까? 아니라며 나는 또 하나의 100을 즐기곤 했다.
100세 인생, 100세 시대 9988123. 99라는 숫자는 만점 받으란 압박이 아니었다. 99세까지, 지금처럼 팔팔하게 글 쓰고 하루 이틀만 피곤하다가 셋째 날 영원히 잠들다. 그건 대박 보너스였다. 지금도 새로 살고 있지만, 다가올 노년 역시 선물이니까. 지금처럼 팔팔하게 쓰다 보면 그런 그림이 될 것이다.
100일 글쓰기 시즌2는 내게 그런 선물이었다. 첫 번 보다 훨씬 수월하게 재미있게 즐긴 시간이었다. 잘 쓰려하지 않았고 자기 검열도 없었다. 일단 쓰고 인증하다 보니 일상처럼 흘렀다. 전반에 브런치 북 퇴고도 했다. 글벗들의 글 맛 즐기는 재미 장난 아니었다. 진심으로 선물세트 100일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10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나는 지금 <100세 인생> 노래를 들으며 쓰고 있다. 내게, 그리고 글벗들에게 9988123을 응원한다. 생뚱맞게 들리려나? 나는 진심으로 9988123이다. 팔팔하게 글 쓰며 99세를 맞을 거니까. 어깨 들썩이며 쓰다 보니 <100세 인생> 가사에 자꾸 빙긋거리게 된다. 얼쑤~~
토비 맥과이어(Tobey Maguire),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이 다섯 사람의 공통점은? 저녁에 '러빙 헛' 비건 식당에 갔는데 벽에 '채식주의자 & 비건 엘리트'란 제목의 액자가 있었다. 좋아하는 배우들 이름과 얼굴이 거기 보였다. 동물권을 생각하다 비건이 된 사람들이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세 살 때부터 비건이다. 그의 형제들은 물고기가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죽는 광경을 목격하고 비건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평소 철저하게 비건을 실천하며 동물권을 비롯한 여러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우다. 가장 최근 본 그의 영화는 아마도 조커(Joker)지 싶다. 거의 충격에 가까운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지난 2월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도 이랬다.
"우리 중 다수는 우리(인류)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자아 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졌다. 우리는 마치 인공적으로 소를 수정시켜 번식하게 하고, 암소가 새끼를 낳으면 아기를 빼앗고, 암소의 젖을 빼앗아 우리의 커피와 시리얼에 부어 먹는 일들을 할 자격이 있다(entitled to)고 느낀다."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의 매력을 어찌 잊으랴. 평소 그가 환경과 동물권, 빈곤 퇴치 등 사회적인 문제에 앞장서며 중요한 목소리를 낸다는 건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비건 가죽 회사에 투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런데 아홉 살 때부터 채식주의자다! 아빠를 따라 의학회의에 참석했는데 닭에게 레이저 수술 시범을 보이는 광경을 보고 충격받았다.
열두 살에 환경보호단체에 가입한 원조 그레타 툰베리다. 스물두 살에는 국제공동체 지원재단(FINCA) 대사로 활동했다.
"하루에 세 번씩(식사 때마다) 나 자신에게 생명을 존중하고 다른 생물에게 고통을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상기시킨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며,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채식주의자다."
세상에! 나머지 배우들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이어서 쓰기로 한다. 어쨌거나 오늘 소박하고 건강한 비건 저녁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나는 어쩌다 비건이 된 복 받은 사람이다. 건강 때문에 채식을 택했고 자연식을 추구하며 가지를 뻗어 공부하다 비건에 닿았다. 건강이란 게 나 하나 잘 먹고 잘 산다는 뜻이 아니잖은가. 마음을 열고 보면 페미니즘이 그렇듯 결국 세상은 다 연결되는 거였다.
채식도 건강도 결국 생태와 동물과 지구까지 연결된 개념이었다. 동물권 운동가에게만이랴. 사는 동안 동물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걸 잊고 사느냐 인식하느냐의 차이뿐. 그런 점에서 첨부터 동물을 생각해서, 동물을 사랑해서 비건이 된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진심 고개가 숙여진다. 다른 종과 다른 생명을 타자화하지 않고 존엄으로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비건은 진정 숭고함 맞다.
바깥 음식 먹을 일 드물고 인공첨가물 싫어하는 저라지만 향기 때문에 즐기는 외식 메뉴가 있답니다. 광덕로 '연제네'서 먹는 똠얌 쌀국수죠. 오늘은 여유롭게 혼자 들러 먹었어요. 단, 주문할 때 귀찮게 말해야 하죠. 해물은 빼고 숙주와 고수 듬뿍 넣어 주세요! 이 집에서 저는 아마 '고수 진상'이거나 '고수 듬뿍 똠얌 아줌마'로 통할 거예요. 매번 고수를 털고 오니까요.
고수요? 생채로 씹어 먹는 고수 너무나 맛있어요. 먹다 보면 접시가 비죠. 국수 국물에 넣어 살짝 숨죽여 건져먹어도 좋고요. 향, 풍미로 먹다 보면 접시 그득하던 고수가 금방 사라지고 또 추가요~~~ 외치죠. 그러면 끝이냐고요? 다시 듬뿍 가져오죠. 오늘 먹은 고수 접시는 모두 몇 개? 다섯 개밖에 안 되던걸요? (사진엔 접시가 치워져서 다 안 보여요.)
똠얌이 뭣이 그래 좋으냐고요? 맛있고 향기로우니까요. 동남아 향신료랑 향기 나는 채소가 다 좋아요. 이 집 똠얌은 기성품 액상 국물이 아니라 레몬그라스 갈랑갈 월계수잎 등등 자연재료로 끓인 국물이죠. 고기도 넣고 끓인 건 알지만 100% 채식 고집하지 않고 비건 똠얌이라 여기고 즐겨요. 국물은 물론 남기죠. 한 번씩 가다 이렇게 향신료 가득 고수 가득 먹어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