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울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웃고 소통하고 사랑하고 춤추고.... 세 아이들 키울 때의 젊은 내 모습이 어른거린 나날이었다. 애들이 놀다 잠들면 엄마에겐 시간이 주어진다. 그땐 내 일에 집중할 찬스! 그러나, 돌봄에 지친 엄마는 멍해서 집중이 잘 안 되고 결국 눈에 보이는 집안 일에 손이 가곤 했지. 노모 돌봄 가정간호 한달 살이도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이름하여,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삶의 현장. 그러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바로 그거였다.
뇌졸중(腦卒中, stroke)은 이름이 보여주듯, 뇌에 갑자기, 졸지에, 중풍이 와서 신경학적인 문제가 생기는 병이다.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 있다. 뇌졸중은 단일 장기 질병으론 사망원인 1위일 정도로 심각한 병이다. 그만큼 후유증도 많다. 9순의 시어머니가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태로 쓰러져 119에 실려 간 건 33일 전이었다. 비교적 가벼운 뇌경색이었던 셈이다. 환자의 뜻에 따라 큰 아들네인 우리 집이 가정간호 돌봄의 공간이 됐다.
가정간호 돌봄 노동에서 '제대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싶다.
시어머니는 고향집으로 다시 내려갔다. 올 때 업혀서 계단을 올라올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진부한 소리 같지만, 이 정도 회복은 기적이고 감사 또 감사다. 아니, 일상으로 누리는 모든 것들이 기적 아닌 게 있던가. 스스로 걷고 뛰고 자고 먹고 화장실 가고 씻고 놀고..... 당연한 건 없다. 간암수술 8년 지난 내가, 노모 돌봄까지 하는 것도 기적 아닌가. 더구나 우리집처럼 편의 시설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는 폭력적인 공간에서 바깥바람까지 쐬어가며 지낸다는 건 기적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렸다.
노인과 장애인과 아이와 환자 등, 세상엔 사지 멀쩡한 건강인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왜 건축물은 멀쩡한 사람들만 살 공간인양 지어졌을까. 왜 설계 단계에서부터 노인과 장애인을 상수로 고려에 넣지 않고도 감히 준공이 될까? 장애란 게 과연 예외며 편의 시설은 특혜요 시혜일까? 생각이 짧고 눈가리고 아웅 세상이다.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세계관이 아니곤 이런 세상이 유지될 수 없겠다. 누구라도 병에 걸릴 수 있고 사고를 당할 수 있잖은가. 누구나 기지도 못하는 아기로 태어나고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어느날엔간 약자가 되지 않던가.
고로, 모든 건물은 사람의 전 생애를 고려하고 장애와 질병과 약한 몸을 포함한 포괄적 설계로 지어져야 마땅하다. 특별히 돈 많은 일부의 사람들만 그런 건물에 사는 나라. 평범한 노인과 환자와 장애인은 집밖에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세상, 그게 우리나라다. 차별이 차별인 줄 모르고 일상이 된 나라란 말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소리 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세상. 눈을 뜰지어다. 이게 차별 아니고 뭐란 말인가. 말하지 않고도 떡 버틴 비인간적인 건물만으로도, 누군가는 날마다 차별받으며 산다.
토요일 오전 손녀딸과 며느리가 노모를 4층 계단으로 동행하고 휠체어를 내리고 산책을 나선다. 난간 잡고라도 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니 얼마나 고마운가. 시골 가시기 전 마지막 산책인 셈이다. 조금 흐리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6월의 하늘과 공기와 녹색이 반갑고 아름답다. 바깥공기를 숨 쉬는 맛! 사람들 사이를 이동하고 움직이며 땅에 발을 딛는 맛! 세상을 구경하는 맛! 내 몸과 발이 묶여 본 사람에게 이 맛이란, 느낌 아니까!
오늘의 운동 목표는 걸어서 분수 공원 한 바퀴 완주하기. 원래도 척추협착으로 허리가 굽고 휜 9순의 노모는 뇌졸중으로 오른쪽 팔다리를 힘쓸 수 없는 상태로 우리 집에 왔다. 집안에 휠체어에 보행보조기에 변기의자에 기저귀까지, 삶의 풍경이 달라진 한 달이었다. 부축 없이 나날이 걷는 양이 늘었다. 몸은 왼쪽으로 기울었는데 걸음은 오른쪽으로 게처럼 기울어가는 어머니. (아~~ 너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이 세상이니 좌편향 좀 하셔도 괜찮다니깐!) 휠체어를 밀고 따라가며 노모를 관찰하며 빙긋 남모르는 미소를 짓는 며느리다.
90평생 가족밖에 모르고 일밖에 모르고 사신 노모의 주름 가득한 얼굴이 많은 말을 한다. 자기를 돌볼 겨를이 어디 있었으며 자아를 위한 시간을 꿈인들 꿨으랴. 다리를 쉬며 숨을 돌리곤 다시 걷는 어머니다.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고부간에 이토록 나란히 나란히 걸어 볼 기회가 얼마나 있었던가. 이제 함께 늙어가는 친구 같고 모녀 같다. 바라보기 짠한 동료 인간이고 자매고 동지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의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 어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 어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시어머니는 두 발로 걸어 어느새 호수 절반을 돌고 있다. 스스로 다리 힘을 걸음으로 확인도 한다. 잘한다 잘한다~~ 며느리의 추임새에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더 신나고 힘차게 걷는다.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본 듯이 날 좀 보소~~ 맞다! 보고 또 봐 줄만한 풍경 아닌가!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즐기는 시어머니와 흥 넘치는 며느리는 결국 즉흥 노래와 춤으로 한바탕 놀아재낀다. 막춤 뻘춤 되는대로 마구 논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가마 타고 시집가긴 다 틀렸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밀양 사람 밀양 할매니 밀양 아리랑이 새삼스러울 것 없지?
흥에 겨워 9순의 시어머니는 옛날 옛적 부르던 노래를 메들리로 쉬지 않고 불러낸다. 환갑 며느리는 노랫말도 가락도 다 알진 못하지만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도 벗어젖히고 가방에서 스카프 하나 꺼내 본격 춤사위를 만든다. 흔들고 흐느적대고 휘돌리고 팔다리를 들고 돌고....신명 나면 춤 아니겄어? 얼씨구~~ 좋다~~ 이게 자연치유 아니겄어?
즉석공연은 이후에도 한참 이어진다. 며느리는 어머니 두 손을 맞잡고 일으켜 세워 마주 춤을 춘다.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들을수록 빻은 가사가 넘친다. 남자는 제멋대로 철새 따라 오고 가고, 여자는 순정을 바쳐 사랑하고. 우라질! 누가 그렇대? 노랫말도 곡조도 모두 남성 중심 판타지로 도배된 게 너무 잘 보여 춤추면서도 속으론 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랴, 어머니 시절에 듣고 배운 노래가 다 이런 것들 뿐인 걸. 그래도 춤은 즐거우니 어쩔?
허리가 굽으니 고개를 빳빳이 들 일 없는 노모다. 하늘을 올려다 보긴 더 어렵다. 잠시 하늘 위 해를 보자고 걸음을 멈춰 선 며느리. 허리 펴시고 자~~ 엄마! 저 위에 하늘 한 번 보고 가자. 해가 비치는 게 보이지? 똑 바로 허리 펴고, 해 쪽으로 한 번 봐. 그렇지 그렇지 더 더~~~ 고개 들고 쳐다보고~~~ 노모의 고개는 최대한 뒤로 젖힌 게 저 정도다. (참고로 이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엄마라 부르고 서로 평어를 쓴다. 시엄마도 아주 좋아한다.)
이제 분수 호수 3면을 돌고 마지막 둘레를 돌고 있다. 걷다 보니 노모의 다리에도 허리에도 힘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힘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굽고 휜 허리는 직립으로 오래 버티기 어려운 게 특징이다. 이제 어머니는 며느리를 휠체어에 태우고 밀며 걷기로 한다. 빈 휠체어는 너무 가볍게 밀려서 위험하니까. 노인들이 왜 유아차 같은 밀차를 밀고 다니겠는가. 굽은 허리 덜 힘들고 오래 걸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힘들면 바꾸자고 해도 싫다는 어머니. 힘차게 휠체어를 밀고 걷고 또 걷는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야호~~ 어머니는 신나는 환호 하라면 대한독립만세~~ 한다. 맞다, 그보다 더 신나는 환호가 있었겠는가. 니들이 이 맛을 알아? 분수 호수 둘레 한바퀴를 걸어서 완주하고 대한독립만세~~ 두 다리 두 발로 땅을 딛고 걷는 즐거움이여!
캠퍼스 내 또 다른 호수 연꽃 피는 연못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는 이번엔 손녀를 태우고 휠체어를 밀고 걷는다. 그렇게 4주의 뇌졸중 시어머니 가정간호가 마무리됐다. 흔하고 진부한 한 문장이 내 마음에 울렸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랬다. 굳이 솔로몬을 언급하지 않아도, 구약 성서 전도서를 가져오지 않아도, 맞다. 세상만사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 생로병사, 날 때가 있었듯 죽을 때가 있고, 아플 때가 있고 치료될 때가 있다. 슬플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듯 춤출 때도 있다. 그래, 춤출 때가 있다. 시어머니 뇌졸중 4주 가정간호 돌봄의 마무리는 바로 춤출 때. 뻔한 소린데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뇌졸중 노인을 위한 한 달 가정간호 자연치유 식단 조금만 맛보자. 피를 맑게 하고 소화 흡수 쉬운 조리로, 지방과 동물성 식품은 피하고 채식 자연식으로 했다. 어쩌다 한번 살코기 다진 것 조금만. 생식과 화식 적절히, 다양한 죽과 무른 밥 적절히, 씹기 좋게 조각내고, 젓가락질 어려우니 작은 숟가락과 포크 사용. 옆에서 다른 숟가락으로 수발했다. 틀니라 입맛 없어하던 분인데 실화냐? 매끼 접시들은 깨끗이 싹싹 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