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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Oct 21. 2022

고수 빼 주세요? 고수 마니아!

세계에서 먹는 고수가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뭐지?

"누가 고수가 많다고 주길래 니 생각나서 좀 만들어 왔어."


지난주 친구 숙경이 서프라이즈 선물을 내밀며 한 말이다. 옹기 모양 작은 통 두 개. 양념을 살짝 무친 녹색이 살아있는 고수 겉절이와 양념장에 비빈 풋고추가 담겨 있었다. 둘 다 내가 환장하며 좋아하는 음식이다. 이런 걸 만들어 줄 생각을 하다니! 고수가 많이 생기니 고수 좋아하는 친구가 생각나 참을 수 없었단다.


맞다. 나는 고수 마니아다. 단골 베트남 식당에 가면 고수를 자꾸 달래서 눈총을 받을 정도다. 고수는 내가 거의 매일 먹지만 늘 또 먹고 싶은 채소다. 그걸 아는 친구이니 고수 겉절이를 혼자 먹을 수 없었던 것. 과연 요리 고수의 별미 고수를 나는 삶은 고구마에 곁들여 한 끼에 해치웠다. 비워진 통을 못내 아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언제 고수를 처음 먹었지? 고수 먹은 역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20년은 안 될 것 같다. 이전엔 알지도 못했고 어릴 적 먹은 적은 더욱 없는 낯선 풀 고수. 고수를 처음 먹는 순간 나는 눈이 반짝 뜨이는 기분이었다. 아니, 코로 먹었다고 해야겠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향기에 반했다. 고수는 전 세계에서 먹는 허브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호불호가 갈린단다. 더 놀라운 건 이 땅에 오래전부터 고수가 있었고, 고수 토종 씨앗도 있다는 사실이다.




고수가 토종도 있다고? 그렇다. 토종이란 어떤 기준으로 정할까? 옥수수나 고추도 알고 보면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이라니, 우리가 익숙하게 먹고사는 것들 중 토종인 것과 아닌 걸 어떻게 구별하지? 당연히 토종 고추 토종 옥수수 있다. 토종씨앗 기준이 사전엔 이렇게 나온다. 1. 본디부터 그곳에서 나는 종자. 2.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오는 사람. 비슷한 말로 토박이, 본토박이, 재래종, 토산종이 있다. 토종 또는 재래종이란 개념 자체가 좀 모호하다. 언제부터? 본디부터? 대대로?


본디부터는 언제를 기준으로 하지? 과연 이 땅이 생긴 그때부터 있어온 씨앗이란 있을까? 이런 질문에 안완식이란 학자는 이렇게 답해 줬다.


"토종이란 전부터 있어서 내려오는 품종 또는 어떤 지방에서 여러 해 동안 재배돼 다른 지방의 가축이나 작물 따위와 교배되는 일 없이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게 된 종자."


즉, 토종씨앗이란 한반도에서 '자생'한 씨앗만 말하는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이 땅에 자생한 작물은 콩뿐이라고 한다. 토종이란 옛날부터 이 땅에서 자라난 씨앗이면서, 어느 시점엔가 우리 땅에 들어와서 이 땅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자라난 씨앗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람으로서 내가 밥과 김치 좋아하듯 고수 좋아하는 건 별 특이할 게 없는 말이 된다. 고수는 토종이 있으니까. 시답잖은 깨달음이다. 중국 음식 또는 동남아를 먼저 떠올리는 건 내가 알고 경험한 세상이 좁아서였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교역이 많아지다 보니 고수가 대중화된 점은 있을 것이다. 허나, 오래전부터 이 땅에는 고수가 있었고 우리는 고수를 먹어 온 민족이었다.


고수는 이 땅에 조선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부터 한반도에서 고수를 먹었다는 설도 있다. 물론 토종 씨앗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고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종자 시장이란 게 다국적 기업으로 지배되고 있으니까. 그래서 한살림에선 토종 씨앗 나눔을 하는 거고 나 같은 사람한테도 토종 고수 심을 기회가 있었던 게다. 토종. 토종 한국인, 토종 입맛, 이것과 순혈주의는 연결하지 말자. 오랜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이 땅의 풍토에 적응하며 함께 사는 모든 존재는 결국 이 땅에서 토종이 되는 것이다.


그럼 어느 지역엔 전통 고수 음식이 있을 법 하지 않은가? 


저 남쪽 여수 하면 돌산 갓김치가 떠오르듯 말이다. 그랬다. 함경도 고수김치, 파주 고수김치가 있었다. 파주 어딘가엔 고수에 특화된 식당이 있다고 한다. 절에선 오래전부터 달래 대신 고수 양념장을 만들어 밥 비벼 먹었단다. 오신채 없는 절음식에 고수는 좋은 풍미 포인트가 됐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수 먹고 싶어 절에 들어갔다는 글을 나도 어디선가 읽었다. 내가 고수 양념장 만들어 먹는 게 별 새로울 것 없는 일인 걸 확인한 셈이다.




고수는 왜 호불호가 갈리지? 고수 마니아로서 한 번 정리해 본다.


나는 미각과 후각의 복을 타고난 덕을 보는 것 같다. 내 몸에 좋은 건 내 입에 맛 좋은 걸 어쩌나. 내 후각은 개의 그것보다 살짝 못한 수준. 미세한 향기가 주는 감각에 내 몸과 정서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너무나 즐기는 깻잎, 미나리, 각종 쓰고 향기 나는 산나물도 어떤 사람에겐 도저히 못 먹을 정도란 걸 나는 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후각이 그렇게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누구에겐 향기로운 게 누군가에겐 너무 역하고 고통이 될 수 있단다. 오죽하면 "고수 빼고 주세요!"를 외워 해외여행 가겠는가. 샐러드와 생채로, 김밥에 무침에, 고기와 생선 요리에, 수프와 찌게, 카레 등 만능으로 쓰이는 고수. 고수 안 먹으면 뭘 먹지? 의문이 들 정도다


아름다운 풀 고수를 효능으로 평가하긴 좀 미안하다. 그래도 고수 효능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효능 1번은 소화를 촉진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점을 들겠다. 해독작용, 식중독 예방, 부패 방지에 기여하는 참 고마운 풀이다.


염증을 치료하니 고수는 해열작용, 감기 예방, 면역력 증진에 좋다. 내가 간염과 간암에서 건강해진 덴 고수의 공로도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사는 100명의 의사가 고수를 좋아해서 깨어나 일했음에 틀림없다. 피부 미용에 좋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비타민C, 칼륨, 칼슘이 풍부하다. 입 냄새 제거에도 좋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식욕을 증진한다. 리날울 제날리올 등의 정유 성분 때문에 빈대풀이라고도 불린다.


고수는 생채로 그냥 먹는 게 최고다. 고명 정도로 살짝 곁들여도 좋지만 쌈 채소처럼 아삭아삭 씹어 즐기면 된다. 자연식이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며 단순한 공정으로 먹는 게 포인트다. 생채식이 좋은 건 깨끗이 다듬고 씻기만 하면 되니까 싱크대 앞에 오래 노동하지 않아 좋다. 고수만 아삭아삭 씹어 먹기도 하지만 소스 하나 만들어 곁들여도 좋다. 고수를 다져 된장과 단호박을 버무려 만든 쌈장은 밥에 비벼 먹어도 좋다. 들깨를 껍질째 갈아서 고수 위에 뿌리고 발사믹 식초 또는 레몬즙 떨어뜨려 버무리면? 환상의 샐러드가 된다.


물김치와 무채, 깍두기, 열무김치, 배추김치, 고구마줄기 김치 등등. 나는 고수로 김치 담그기도 좋아한다. 배추김치는 자체 맛이 좀 심심하다 싶을 때 고수 향이 풍미를 더해 준다. 비트나 돌나물 등 물김치를 만들 때 고수를 섞으면 발효 국물이 천상의 맛이 된다. 고수만으로 김치를 담가 먹은 적은 아직 없다. 고수를 그렇게 듬뿍 사기엔 넘 비싸니까. 고수 들어간 김치류는 하루 상온에서 맛을 들이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은은한 고수 향의 김치가 된다. 고수 씨앗도 잎도 줄기도 뿌리도 카레와 잘 어우러진다.


가끔은 우리밀 국수와 고수를 먹는 맛도 좋다. 이름하여 '향기 나는 녹색 잔치국수'다. 다시마와 표고 등으로 다시 국물을 우려낸다. 국물과 국수물이 끓는 동안 채소를 씻어 적당한 길이로 썰어 둔다.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군다. 조리 국자에 국수를 1인분 넣고 뜨거운 국물에 적신다. 그릇에 담고 국수 위에 고수를 듬뿍 얹고 뜨거운 국물을 끼얹는다. 숨이 살짝 죽은 고수와 국수가 어우러진다. 아주 가끔은 한살림 라면에다 고수를 넣어 보라.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이 된다.


고수의 꽃말을 아는가? '지혜'요 '아름다운 점'이라니, 이것 또한 고수답다!

고수 좋아하세요?

나는야 고수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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