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Nov 20. 2021

올해 첫 김장김치를 먹으며

김장을 할까 말까, 고민만 한 달째


김장철이다. 여기저기 김장하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금방 한 김장김치로 이웃 간에 정이 오가는 요즘이다. 나도 어제는 안산에서 오늘은 서울에서, 금방 한 이웃의 김장김치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역시 김장철에는 내가 하지 않은 김장김치 얻어먹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김장이란 하는 사람은 일에 치일지 몰라도 곁에서 맛보는 사람에겐 잔치 기분이기 때문이다. 



어제 회의 일정이 오후 5시에 끝났는데 나는 친구네 집에 들렀다. 김장하는 날이라 갓 담근 김장김치 한쪽 맛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백팩을 등에 메고 30분 이상 걸어서 친구네 도착했을 땐 등에 땀이 흥건했다. 그리고 친구가 주는 김치 보따리를 들고 다시 30분을 걸어 집으로 왔을 땐 정말 높은 산을 등산한 사람처럼 땀에 절었다. 친구가 준 김치는 한쪽이 아니라 한보따리였다.



엊저녁 밥은 갓 버무린 김장김치를 주메뉴로 먹었다. 짜지 않게 절여진 배추 맛이 양념과 어우러져 천하일품 맛이었다. 나는 평소엔 며칠 맛이 든 김치를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김장김치는 역시 금방 담근 맛이다. 배추 줄기가 아직 숨이 덜 죽고 살아있으면 더 좋다. 친구네 김치가 딱 그런 상태였다. 양념도 순한 편이라 양념 버무려진 배춧잎을 10쪽은 먹었나 보다. 정말 맛있었다.  


김장김치, 살짝 찐 양파, 생 아로니아, 그리고 현미 보리 잡곡밥.   




이 철이면 나는 덩달아 상상의 김장을 하곤 한다. 싱싱한 김장 채소의 식감에 양념의 향기가 환각처럼 내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내 예민한 코는 김장김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럴 거면 김장을 해야 마땅하건만, 나도 모르겠다. 김장을 할까 말까, 이 고민만 나는 한 달 이상 하고 있다. 



살다 보니 그리됐다. 나는 조금씩 자연식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다. 김치를 사 먹은 경우는 손가락 꼽을 정도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장을 하는 건 습관이 안 됐다. 겨울에도 배추 무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세상 아닌가. 김치냉장고 없이 중간 크기 냉장고 하나로 살다 보니 많은 김치를 할 이유가 없었다. 양가에서 김치를 주던 시대에도 우리는 그때그때 가져다 먹곤 했다.



사람 사는 풍습과 문화가 만들어지는덴 나름의 맥락이 있는 것이다. 31년 결혼 생활 내내 김치 떨어지지 않고 해 먹는 집인데 김장은 안 하고 산다? 그런데 김장을 할까 말까 해마다 고민한다? 김치 담그길 즐기는데 김장은 안 한다? 암 수술 8년째 자연식을 추구하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이런 일이 있다. 내 몸과 마음이 그러라고 해야 움직이지 않겠나. 망설이다 결국 안 한 관성이 작용하지 싶다. 



김치는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담그는 거 같다. 단순한 양념으로 배추 두세 포기 정도가 내가 하는 최대치다. 무 깍두기, 총각김치, 열무얼갈이김치, 고수비트김치, 샐러리김치, 파김치, 양파김치, 양배추 김치, 갓김치, 감김치, 고구마 김치, 콜라비김치, 연근김치, 고구마줄기김치..... 담가 본 김치 이름을 적어 봤다. 내 멋대로 재료에 양념이 버무려져 발효하면 깔끔하고 상큼한 김치가 된다.




결혼 31년 지나도록 나는 대규모 김장 노동에 참여한 적도 없다. 직장에서 행사로만 해 봤다. 무늬만 5남매의 맏며느리란 걸 깨닫는 순간이다. 시어머니가 농사짓고 시누이들과 김장하던 시절에도 나는 내려간 적이 없었다. 누구도 나에게 김장하러 내려오라 하지 않았고 나도 자발적으로 갈 생각도 없었다. 담가 둔 김장을 시골 다니러 가면 한 통씩 가져다 먹었으니, 뺀질이였구나 싶다. 



딱 두 번 내 손으로 김장을 제대로 해 본 건 8,9년 전쯤이겠다. 도시 텃밭 주말농장에서 배추 무를 길렀을 때다. 씨 뿌리기부터 가꾸고 거두기, 절임과 헹굼과 버무리기까지, 짝꿍과 함께 제대로 한 적이 있었다. 그래 봤자 작은 냉장고 아래칸 다 채우고 베란다 통 하나 두고 먼저 먹은 정도 양이었다. 그것도 내가 수술하면서 거리 핑계로 접어 버렸고, 크게 일 벌일 일은 더욱 없어졌다. 



김장철만 되면 김장을 생각하는 나는 뭘까. 하루에도 열두 번, 기와집만 짓고 부수며 가을이 깊어 간다. 올해는 특히 서울 집엔 김치냉장고가 하나 생겨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교회 식구가 세놓은 집에 뒀던 건데 세입자가 새것으로 사서 필요 없어졌단다. 멀쩡한 김치냉장고가 떡하니 들어온 날 나는 김장김치 상상부터 하긴 했다. 그러나 그때뿐, 현재는 곡류와 과일 보관용으로 쓰고 있다.



김치냉장고도 있는데 이제 김장을 안 할 이유는 어디서 찾지? 나더러 김장 좀 제대로 해 먹으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위로 하는 일이었으면, 안 하고 내가 배겼을까. 양가 어머니들과 주변에서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잖은가. 우리 자식들이 모두 '엄마표 김장' 타령이라도 하면 그땐 모르겠다. 엄마 김치 최고라는 딸이 아직 결혼할 가능성도 희박하니, 또 이러고 해가 가지 싶다.



그래도 김장철엔 김장의 향기와 맛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시절에도 김장하는 날은 잔치에 가까웠으니까. 그 많은 양을 해 낸 어머니들의 수고를 생각하니 새삼 가슴 뻐근하다. 이 무렵이면 세대가 다른 나 같은 며느리들이 시집 김장 행사에 '동원 노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나이를 먹으면 자식들 위해 김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화와 관습은 그렇게 이어져가겠지.



아직 고민이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김장을 할까 말까?




매거진의 이전글 2주 효소 단식 끝, 점액질, 보호식의 중요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