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합창부를 하기는 했어도 노래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거든. 내 음역에 맞는 알토 파트는 곧잘 했지만, 낮은 목소리 때문에 고음이 잘 안돼서 노래 잘하는 애들이 정말 부러웠어. 그래도 춤추는 건 좋아했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혼자 따라 추기 시작했는데, 소심해서 장기 자랑에 나가거나 하지는 못했어. 중3 졸업여행 때 담임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비의 <레이니즘>을 춰본 게 다였지. 지금 생각하면 뭔가 아쉽네. 좀 열심히 나서서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수재라는 별명 좀 얻어 볼걸. 나는 사범대를 졸업하고도 교사가 되기 싫어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사범대를 진학해 교사가 되고 싶어 했던 너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너는 분명히 좋은 선생님이 되었을 거야. 춤과 노래를 좋아하니 인기폭발이었을 테고 말이지!
-별을 품은 사람 민지 언니가
새해 첫 별편지의 주인공 수연아!
3년 전 너에게 보낸 추억의 편지로 시작해 봤어. 기억나니?
'별을 품은 사람들'이 단원고 약전 10권을 다 읽고 250통의 편지를 썼더랬지. <잊지 않을게>라는 제목의 노란 편지 묶음을 만들어 너희들에게 보냈지. 기억교실에 반마다 교탁 위에 놓인 노란 책이 바로 그거잖아. 그 당시 1반 친구들에게 쓴 사람들이 우리집 식구들이었는데, 수연이에게 쓴 민지는 우리 딸이야. 추억놀이로 다시 읽어봤구나. 너에게 쓰는 이 편지는 세 사람의 편지 묶음이 될 거야. 민지 언니 글, 내가 쓰는 편지, 그리고 재석이 편지로 이어질 거야.
재석이는 너와 동갑내기인 우리 집 막내야. 지난번 <잊지 않을게> 편지 묶음에도 함께 했던 친구야. 이번엔 너를 기억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나와 함께 하고 글도 썼어. 이벤트가 뭐냐고? 네가 자주 가던 선부동 동명 상가를 찾아갔지! 롯데리아 건물 4층 '나무그늘 북 카페'에 가서 편지를 쓰고 싶었거든. 아~ 아쉬워라. 네가 친구들이랑 자주 가서 공부하던 그 카페는 없어지고 정형외과가 있더구나. 건물 경비 아저씨께 물어보니 벌써 5년 정도 됐대. 같은 층의 약국이랑 다른 의원들은 그대로 있더구나.
아쉬운 맘으로 우리는 건물 1층 한가람 문구에 들렀어.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가게의 포스가 느껴졌달까. 입구엔 발렌타인데이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눈에 띄더구나. 1층엔 팬시 용품과 옷 등 파는 게 참 다양하더라.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어. 계단에 내 눈이 꽂힌 거 있지. 스페셜 매장, 필기류, 디자인 문구, 이런 글귀가 내게 특별하게 읽혔었거든. 예쁜 필기구 수집하는 게 수연이 취미였잖아. 이 계단을 참 많이 오르내렸겠구나 싶고, 2층에서 볼펜을 고르고 있는 너를 만날 것만 같아 내 걸음이 빨라졌어. 과연 필기구 수집할 만했어. 날로 진화하는 세계잖아. 기념으로 나도 두 개 샀단다.
빼어날 수(秀) 예쁠 연(娟), 수연아!
한가람을 나와 1층 롯데리아에 들렀어. 오전이라 아직 조용한 매장이라 창가 자리에 재석이랑 마주 앉았어. 커피 한 잔을 놓고 창밖을 구경했어. 동명상가 길은 정말 가지가지 물건이 가득한 시장이더구나. 꽈배기, 옷, 채소, 생선, 튀김 등등. 즐비한 좌판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도 했지. 롯데리아 테라스의 빈 의자들과 테이블이 영화의 한 장면이 되더구나. 수연이가 친구들과 와서 먹고 떠들고 놀더니 아빠와 엄마와 와서 앉네.
아! 수연아! 엄마 미소로만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엄마 아빠의 하나뿐인 자식이었잖아. 무남독녀 수연이를 조금이라도 잘 키우고자, 엄마 아빠는 열심히 일하셨지. 매일 너를 태워주고 태워가시던 아빠. 몸이 약하신 엄마. 너를 앗아간 이 나라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삶의 의미이자 전부였던 너를 잃고 두 분만 남은 엄마 아빠.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어. 내가 너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며 무슨 글을 쓸 수 있단 말이냐.
선부동 다음 우리의 여정은 416기억교실이었어. 재석이에겐 기억교실이 처음인 역사적인 날이었어. 1반 교실에 들러서는 네 자리에 앉아 있었어. 책상마다 놓인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패가 새롭더구나. 작년 12월 뉴스로 본 후 이제야 직접 보고 만졌어.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이름으로 만든 기억패. 글씨를 조금 더 크게 했으면 싶더라. 내가 노안이라서 그렇겠지? 아쉬움은 있지만, 너를 담아낸 짧은 글을 읽고 또 읽었어.
2학년 1반 이수연 학생
예쁜 펜을 좋아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노력하며, 국어 선생님을 꿈꾸는 이수연 학생을
우리는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한 희망을 함께 그려나가겠습니다.
2021년 12월 20일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빼어날 수(秀) 예쁠 연(娟), 수연아!
이렇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신 엄마는 네가 얼마나 그리울까. 그 큰 아픔 중에도 감사한 게 있다면 말이 될까? 엄마 아빠 사이가 이전보다 더 돈독해지셨대. 아빠가 '416구술증언록'에서 말씀하셨어. 아빠는 너를 다시 만나는 그날, 네게 부끄럽지 않고자, 사회에 대해 눈을 뜨고 활동하신대. 나는 흐느끼며 읽고 가족에게 읽어 주며 또 울었어. 수연이 아빠를 나는 416희망목공소에서 전에 몇 번 뵈었거든. 별을 품은 사람들이랑 목공 체험할 때 지도하는 세월호 아빠들 중 한 분이었지. 그렇게 만든 리본목걸이랑 스피커를 내가 계속 쓰고 있단다.
노래와 춤을 참 좋아하는 수연아! 이승윤의 <기도보다 아프게>를 너와 함께 듣고 싶구나. 지금도 반복해서 이 노래를 들으며 네게 편지를 쓰고 있어. 네 교실 책상 방명록에도 어떤 분이 이 노래에 눈물을 흘렸다는 글을 남겼더구나. 얼굴은 몰라도 수연이와 함께 이어진 느낌으로 내 가슴이 뭉클했어. <기도보다 아프게> 노래 가사 중 난 이 대목에 무너졌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 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내 마음의 부끄러운 고백이야.
정말 단 한 줄도 쓸 수 없던 말들이 있었어. 기억한다는 말과 함께한 단 말은 펜보다 무거웠어. 아아아 눈물이 고여있던 웅덩이에 들렀던 하늘도 닦아내 버리면 자취를 감췄으니까. 아아아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든 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게.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 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제 너희의 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기도보다 아프게>
빼어날 수(秀) 예쁠 연(娟), 수연아! 재석이와 우리 셋이 함께 보낸 시간 어때? 너를 기억하며 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난 너무너무 행복했어. 수연아 고마워. 재석이도 너를 더 가까이 알게 되어 기쁘고도 묵직한 마음이었대. 기억교실 1층 노란리본 포토존에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어. 돌아와서 재석이가 쓴 편지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할게. 예쁜 네 이름 자꾸자꾸 부르고 싶고 네가 참 많이 보고 싶구나. 수연아 사랑해!
수연이에게
장래희망이 국어교사인 수연아 안녕?
나는 체육 교사를 준비하고 있는 너와 동갑인 친구야. 너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구나. 나는 고등학교 내내 국어 과목이 발목을 잡아서 애먹었던 기억이 있어. 수학을 좋아했던 나는 모의고사를 보면 수학은 늘 1등급을 받았지만 국어는 1등급에서 3등급까지 오갔거든. 국어 과목에서 95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고 하니 너는 언어에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구나! 무척이나 부러워.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문제집을 마르고 닳도록 풀었더니 겨우 점수가 오르던데. 너도 담임 선생님의 과목이 국어 과목이어서 장래희망에 영향을 받았다 했지? 나도 그래. 나는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께 영향을 받아서 고등학교 진학하며 자연스럽게 체육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어. 나는 훗날 제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교사가 되어야지 마음먹었는데 수연이 너 또한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돼.
너도 지금쯤 열심히 임용고시 공부하고 있을 텐데, 그치? 너는 재능이 뛰어나니까 이미 국어샘이 됐으려나? 훌륭한 선생님이 됐을 거라 믿어. 나는 작년에 첫 임용고시를 치렀는데 합격하진 못했어. 작년에 느끼고 배운 것들을 발판 삼아 올해 다시 준비할 거야. 수연이 네 꿈 기억하며 내가 꼭 이룰게. 네가 바라던, 따돌림 없이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한 교실을 만들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