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 천인 합창단 모집

세월호 참사 8주기, 지금 당신의 촛불은 어디에 있나요?

by 꿀벌 김화숙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 문화제 1천인 합창단 모집]


1천 명의 시민들과 뮤지컬 배우들이 꾸미는 주크박스 합창 뮤지컬 <다시, 빛>

‘지금 당신의 촛불은 어디에 있나요?’


함께 촛불을 들었던 그 마음으로 함께 합창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 모집 기간 : 2022. 2. 28(월) ~ 3. 18(금)

○ 본 행사 : 2022. 4 15(금) 저녁 8시 / 안산문화광장

○ 모집인원 : 1000명(오프라인:200명 / 온라인 : 800명)

○ 모집 형태 : 개인 또는 단체

○ 참가신청 : https://forms.gle/CGuKDF4xkUDGLGRG8 / QR코드 신청

○ 문의 : 031-483-0416(4.16안산시민 연대)


어느새 3월이다. 그리고 금방 4월이 올 것이다.


오늘 아침 운동길 햇살은 가까이 온 봄을 느낄 수 있었다.

안산 천변의 버드나무 가지에선 연노랑 봄기운이 완연했다.버드나무 위에 둥지를 만드는 까치들, 지저귀는 새소리가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아~ 그러나 이제 봄은 내게 마냥 설레며 즐길 수 있는 계절이 아니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듯

4월을 준비하는 3월 역시 이제 옛날의 것이 아니다. 4.16합창단에서 노래하다 보면 이 계절이 가겠지.

3월 첫 포스팅은 그래서 세월호 8주기 이야기다. <다시, 빛>이란 포스터가 내게 말을 걸어와서다.


다시, 빛, 내게 다시는 무엇이며 빛은 무엇인가?

4년 전 4.16안산시민연대와 했던 내 인터뷰 기사를 가져와 본다. 다시, 빛을, 내 마음을, 그리고 우리 맘을 다시 새롭게 하길 간절히 소망하며.....



[자기소개]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네 안녕하세요. 별을 품은 이웃 모임, 별품사(별을 품은 사람들) 회원이자 4.16안산시민 연대 회원 김화숙입니다.


■ 전 선생님 알고 있었어요. 마을 권역에서 활동하시면서 자주 뵈었잖아요. 별을 품은 이웃 모임 활동도 아주 성실하게 참여해 주시고.


= 그랬나요?


■ 네, 세월호 관련된 행사가 있는 날이면 꼭 선생님을 봤어요.


= 별품사 활동 덕분에 조금씩 함께 하는 정도죠.


아니에요. 별품사 활동도 아주 왕성하게 열심히 하시죠? 현역 활동가들 만큼이나 세월호 관련된 활동에 열정을 쏟으시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곁에서지 못하고 마음으로 응원해도 실천을 힘겨워 하는데, 혹시 계기 같은 게 있을까요?


= 계기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네요. 사정이 있었어요. 제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두 달 후에 암 수술을 했거든요. 그해 말 결국 직장 생활 정리하고 본격 건강관리해야 했어요. 세월호만 생각하면 늘 마음이 불편했죠. 어떤 날은 내가 차라리 아파서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암 투병하는 사람이니 세월호를 외면하는 게 변명이 되잖아요. 그래서 일단 내 몸만 생각하자. 2년 동안은 세월호 소식 가능한 한 못 들은 척했어요.


그러다가 2016년쯤 되니까 몸과 마음이 달라지고 건강해진 게 느껴지더라고요. 때마침 제 삶에 갱년기이기도 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다 설명하긴 너무 길고요. 이전엔 당연하던 일이 자꾸 달리 보이고, 이제 뭐라도 해야 할 거 같고, 불쑥불쑥 분노가 일어나고. 점점 더 불편해졌죠. 촛불 때 광화문으로 주말마다 나가게 되니 세월호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조금씩 활동을 하던 차에 여성 단체 울림에서 ‘별을 품은 사람들’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김화숙과 4.16]


■ 그랬군요. 그럼 그 불편함은 어디서 왔을까요?


= 우리 막내아들이 별이 된 아이들과 동갑이에요. 그때 고2였는데요. 학교가 달랐지만 친구의 친구, 친구의 선생님, 그렇게 연결되기도 했고요. 한동안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막내를 보면 마음이 자꾸 이상한 거예요. 눈물이 나고요. 세월호 엄마들은 바로 저런 아이를 더 이상 못 보는 거잖아요. 우리 애가 그 배를 탔을 수도 있죠. 바로 내게 일어날 사건인 게 이론이 아니었죠. 출퇴근 길 교복 입은 아이들을 봐도 눈물이 나고, 검은 현수막 앞에 다리가 후들거리고요. 지나가는 아줌마가 세월호 엄마 같아서 미안하고 괴로웠어요. 투병한다고 외면했지만, 이제 못다 한 숙제처럼, 자꾸 마음이 쓰이고 짓눌렸달까요. 좀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 힘드셨겠어요.


= 힘들었죠.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 엄청난 참사를 단지 개인의 불행인 양 바라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아이들의 희생을 도대체 설명할 수가 없고요. 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또 어떻게 치유할 거냐고요. 참사 후 박근혜 정부가 가족들에게 한 짓을 생각해 봐요. 나라면 어떻게 살까, 수없이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416엄마 아빠처럼 싸우는 것 말곤 대안이 안 보이더군요. 선명했어요. 너무 흔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4.16 이전과 이후로 인생이 달라졌다고들 하잖아요. 제 경우도 비슷했어요. 그 시기가 암 수술에 갱년기까지 겹쳤으니 어땠겠어요. 그전에는 통념이나 관습에 갇혀 살았다 한다면 좀 과한 의무 부여겠죠? 어쨌건 4.16이후로 제 눈이 달라졌어요. 제 인생과 사회의 이면을 보게 되였달까요.


■ 무엇이 보이던가요?


= 정말 너무 많은데. 일단 4.16이 국가가 저지른 범죄라는 거죠. 국가에 대한 눈이 좀 달라졌달까요. 아, 솔직히 정치나 국가 범죄 이런 거 깊이 안 들여다보고 외면했거든요. 과거에 행동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까지 소급해서 부끄러워지는 거죠. 미안하고요. 어쩔 수 없이 공부하게 됐어요.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그 고민을 안 할 수 없더라고요. 기독교인으로서 그간의 성경해석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니 삶의 모든 게 다시 보였어요.


이야기가 좀 다른 데로 샐까 봐 걱정이 되는데, 남편이 목사에요. 틀에 박힌 목사 부부 아니란 착각 있었어요. 그런데 변화가 마치 쓰나미처럼 덮치니, 헛 짚고 껍데기로 살았구나, 미치겠더라고요. 2016년 12월 마지막 촛불집회 구호 생각나요? “송박영신”. 박근혜 보내고 새해를 맞자는 거죠. 저는 그걸 “송부영신”으로 외쳤어요. 남편 부(夫). 하하하. 한국 정치사적으론 권위주의와 독재 잔재 박근혜를 청산해야 했다면, 제 인생에선 남편이 바로 그런 상징이더군요. 권위주의와 가부장제가 짬뽕된 기독교와 남편을 청산하지 않으면 내겐 희망이 없겠구나. 그런 깨달음이 덮친 거죠. 변하지 않을 거면 이혼하자고 단호히 선언했죠. 장난이 아니었어요. 남편이 충격을 받았죠. 그 계기로 제 삶과 부부 사이, 그리고 신앙과 목회 방향 모든 면에 변화가 일어났어요. 저는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요. 제 삶과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알고 보니 같은 맥락이었더라구요.


■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같은 맥락이라면?


= '가만히 있으라' 같은 것들이죠. 아닌 건 아니라 말해야 하는데 제가 욕 안 먹으려고 침묵하고 살았거든요. 두 눈 똑바로 뜨고 응시해야 하는데 불편한 건 외면했죠.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에 찌든 제 모습이죠. 나와 상관없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기독교가 특히 개인의 사소한 문제를 엄청난 죄로 회개하라고 난리 치면서 종교권력 국가권력의 거대한 범죄는 안 보잖아요. 침묵하는 건 동조하는 거죠. 내가 안 보고 못 보면 결국 그런 범죄를 돕는 거죠.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범죄잖아죠. 그런데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하도록, 그리고 무관심하도록 잘못 배웠더라고요. 계속 반복하면 안 되죠. 단원고 별이 된 아이들 약전을 읽으면서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어요. 아이들을 가슴에 품게 되었어요. 아이들별이 저의 눈을 뜨게 하나 봐요. 그래서 저는, 자기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우스개를 해요. 암 수술로 땡잡은 여자라고요.(웃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그럼 다음 질문으로, 선생님이 생각하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 함께하자고 손잡는 일이요.


■ 네?


= 평범한 사람에게 엄청난 일은 부담되잖아요. 저도 내 여건과 건강이 허락하는 정도만 하자. 아주 작은 시작으로 단원고 약전 읽기를 했거든요. 그 후 4.16엄마 아빠와 만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어요. 관련 모임에 갈 수도 있었고요. 집회에 나가는 것도 제겐 416가족들 이야기를 듣고 사귀는 기쁨이 있어요. 저만이 아니라 남편과 애들과 함께 단원고 약전 읽고 편지도 함께 썼어요. 교회 친구들 단톡방에 세월호 소식을 조금씩 공유했어요. 친구들이 저를 응원하고, 4.16 관련 강의도 듣고, 안산 기억교실 방문도 했어요. 최근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책도 돌려 읽고 있어요. 제가 416엄마라고 생각하곤 해요. 이렇게 저와 마음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너무너무 고맙거든요. 참 보잘것없지만, 이런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 어쩌면, 그 일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고 그런 거 같아요. 제가 416엄마라고 생각하면, 우리 막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선명해져요.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와 손잡아 주는 친구가 너무 절실한 거예요. 물론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거 알기에 늘 마음 한편 미안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고 그렇죠. 어떨 땐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막연히 두렵고요. 그럴 땐 생각해요. 아하, 4,16엄마 아빠 맘도 이렇겠구나.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을까. 그분들이 존경스럽고 귀하고 고맙고 그래요. 용기란 무엇인지 그분들을 보고 배워요. 혼자는 너무 외롭고 힘들잖아요. 함께 용기 내서 걷자고 손을 잡아 주는 친구죠.



[4.16 생명안전공원]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네요. 4.16 생명안전공원이요. 예산이 확정되고. 로고 공모전, 홍보활동, 유가족, 시민 워크숍 등을 통해서 국제 디자인 공모전을 앞두고 있는 4.16 생명안전공원.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어려움 없을 수 없겠죠.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 수 있고요. 그러나 생명안전공원 의미는 크다고 생각해요. 목포신항과 팽목항 다크투어를 하면서 장소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깨달았어요. 기억할 공간이 없으면 쉽게 잊히기 마련이잖아요. 4.3이나 5.18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 작게나마 장소가 남았죠. 다른 많은 국가적 참사들이 외진 곳에 세워진 추모비로 잊히는 게 많잖아요. 아우슈비츠를 생각해 봐요. 인류의 아픔이자 그 큰 부끄러움이 그 현장에 그대로 있잖아요. 4.16생명안전공원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대로 알고 싶어서 생명안전 워크숍에도 몇 번 참여했어요. 납골당 같은 말들은 모두 유언비어죠. 납골당이 아닐뿐더러 저는 어떤 역사적인 공원이 될지 오히려 기대가 많이 돼요. 안산의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될 거예요. 사회적 참사를 개인의 비극으로 치환하면 그런 참사는 계속 반복된다는 걸 역사는 보여줬어요. 지금은 힘이 들지만, 이 일은 정말 힘을 모아 해야 해요. 다음 세대, 그리고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하게 하는 게 우리 시대의 책임이니까요.



[응원의 한마디]


■ 지금까지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혹시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앞서 온몸으로 싸우는 416가족들, 그리고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하죠. 지금까지 훌륭하셨다고 말하고 싶어요. 버텨줘서 고맙고요. 저처럼 미약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온 마음으로 응원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내라는 말은 참 시시하지만 힘내시라고 또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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