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란 무엇일까
새 명함이 생겼다.
마지막 직장 이후 8년 만에 갖는 명함이다. 가로 9cm, 세로 5cm, 까만 글씨가 박힌 하얀 종이다. 내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나를 소개하는 몇 단어가 명함의 내용이다. 뒤집으면 연한 회색 바탕 한가운데 내 이름의 영어 첫 글자 세 개만 보인다. 앞도 뒤도 내 이름이 전부인 명함이다.
명함이란 무엇일까? 한 사람을 명함 한 장으로 다 소개할 수 있을까?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 정도 능력자야, 나 이런 데 속해 있고 이런 자리에서 일해. 명함에 있는 이런 정보 중 진짜 그 사람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 어차피 편집된 종잇조각. 더구나 평생 성실하게 일해왔고 지금도 일하지만 명함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소개할까?
내 명함에는 색다른 맛이 있다. 없는 게 많은 명함이라서다. 우선 내가 어디 속했다는 정보가 없다. 직장 로고도 간판도 없다. 업무 소개도 전화 팩스 등 긴 연락처도 없다. 내 이름 앞에 ‘장(長) 자’가 붙은 직책도 없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늘 붙어 다니던 후원 관련 정보도 없다. 내 이름과 몇 단어 외에 어떤 ‘후광’도 없는 하얀 종이다.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와 함께 내 명함이 왔다.
책은 경향신문사 젠더기획팀이 작년 10월부터 진행한 특별 취재의 결과물이다. 제목 그대로, 명함은 없지만 일 좀 해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명함을 만들어주는 기획이었다. 특별 취재팀이 직접 만난 중노년 여성들의 일과 삶 이야기와 명함이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이 책과 내 명함이 어떤 관계가 있냐고? 이 특별기획 펀딩에 우리 딸이 참여한 것이다. 취재원으로 참여한 여성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명함 제작에 관여했다. 반면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 중엔 자기 엄마든 누군가를 위해 명함을 신청할 수 있었다. 딸이 자기 돈 들여 펀딩하고 명함 없는 엄마에게 산뜻한 명함을 책과 함께 선물한 것이다. 이름하여, 최강모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나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해 온 그림자 노동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책인 셈이다.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라.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 이야기다. “우리가 만난 여성들은 명함이 없다고 했다. 일을 쉰 적은 없다. 그들의 노동을 사회에서 ‘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5쪽) 그랬다. 책은 큰 소리로 나 같은 여성들을 대변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
첫 장에 소개된 손정애씨(72)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칼국수 식당을 운영한다. 그는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라고 삶을 말한다. 명함에 적힌 그는 ‘훈이네 대표’다. 20년째 운영하는 국숫집 훈이네 말고도 ‘제사공장 근무, 한식당 오너셰프, 여성복 디자이너, 훈패션 대표’가 그가 해온 일이다.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한 게 아니었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책 속 여성들의 삶과 일마다 내가 보였다.
이선옥씨(55)는 결혼 이후 늘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독서실과 보습학원을 운영했다. 그가 명함 한 장 없이 ‘내조’라는 이름으로 일할 동안 남편은 독서실연합회, 학원연합회 등으로 명함이 두둑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혼과 함께 그가 일궈온 모든 건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는 빈손이 되었다. 자기 이름으로 다시 출발하는 50대 여성에게 일자리는 제한적이었다. 그는 새롭게 교육을 받고 20여 개 자격증을 얻어 자기 일을 만들어야 했다.
명함은 그를 ‘교육전문가 이선옥’으로 소개한다. 그는 ‘학습 코치, 맘시터, 독서실·학원 운영자, 독서치료사, 진로적성상담사, 한국어지도사, 엄마’이기도 하다. 책은 저출생·고령화 사회에서 ‘필수노동하는 고령 여성’들에게 명함을 만들어 준다. 김은숙씨(66) 명함에는 ‘베테랑 미화원’으로 시작해 노동조합 조합원, 페미니스트, 가사노동자, 육아전문가가 적혀있다(페미니스트를 명함에 박은 언니에게 박수!) 김춘자씨(74)는 파농사 전문가, 가사노동자, 요양보호사, 육아전문가다.
나도 평생 놀아본 적 없이 일했다. 집 안팎에서 교회에서 선교현장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내가 월급 받고 명함을 가지고 한 일은 내 노동의 극히 일부였다. 세상이 내 노동을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림자 노동을 죽을 때까지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삶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니, 나는 내 이름으로 말하고 글 쓰는 여자가 됐다.
명함은 이제 나를 ‘작가’로 소개한다.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냐고? 이쯤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 문장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 글을 쓸 때면 내가 자주 생각하는 문장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잘나가지 않아도, 나는 쓸 것이다. 내가 작가로 살겠다는데 누가 말리랴. 내 글이 곧 내 명함이 되는 날을 소망하며.
명함에 나를 소개하는 단어는 작가 말고도 8개나 더 있다. 여성활동가, 양육전문가, 사회복지사, 상담가, 시민기자, 세월호 시민활동가, 독서토론 진행자, 그리고 강연가. 어떤 단체 이사네, 어떤 위원이네, 그런 건 없다. 내 이름으로 하는 활동명을 늘어놓은 셈이다.
조금 단순하게 줄여 나를 소개하면 작가와 활동가가 되겠다. 나는 글만 쓰는 작가도 싫고 활동가로만 사는 것도 싫다. 글과 삶이 하나이며, 활동가와 작가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된 삶일 때 나는 만족스럽다. 외부 일정이 많은 땐 글쓰기에 목마르고, 글에 매이다 보면 사람들과 접촉하는 활동이 그리운 걸 어쩌랴. 그래서 새 명함이 내 맘에 든다.
명함 덕분에 새삼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암 수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하고 확장된 내 삶이 보인달까.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작가요 활동가로 여기까지 온 내가 사랑스럽고 대견스럽다. 누가 시켜서 한 건 하나도 없다. 남이 내 삶을 결정하게 할 수 없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오길 잘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이 점점 더 기대된다. 나와 연결된 사람들과 세상과 함께 만들어 갈 새 길도 설레며 그려본다.
무명의 작가로서 좋은 출판사와 편집자를 만난 건 큰 복이다. 이제 가을이면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 내 글을 읽어 주고 나와 소통하는 사람들이 고맙다. 변화와 모험을 같이 하는 우리 가족들, 낯선 길을 동행하는 교회, 그리고 여성단체와 416시민연대, 그리고 독서토론하는 모든 벗들이 고맙다. 거침없이 말하고 움직이는 내게 용기를 주는 이들이 고맙다.
명함으로 시작해서 또 한 권의 책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제목만 보고 산 책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를 읽고 있다. 내 마음이 그대로 책 제목이 되다니!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작가 아냐? 이런 책을 쓴 작가 미셸 딘을 직접 만나고 싶을 정도다. 책에 소개된 여성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도로시 파커, 레베카 웨스트, 조라 닐 허스턴, 한나 아렌트.... 나도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되고, 내 글이 곧 내 명함이 되는 그날을 바라본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