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보당당(虎步堂堂)! 친정 엄마와 반말 트기 참 잘했다
사랑하는 엄마~~
부를수록 좋은 이름 엄마! 엄마를 엄마라 부르며 반말로 편지를 쓰니 참 좋다. 작년 가을에 50년 만에 우리가 반말 튼 건 생각할수록 잘한 일이었어. 진작 할 걸 그랬어 엄마, 그치?
"이젠 '어머니' 말고 '엄마'라 부르고 반말로 할 거야. 괜찮지?"
더 늙기 전에 엄마랑 반말 트고 친구처럼 살고 싶다. 그런 내 고백을 듣고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했잖아. 솔직히 놀라웠어. 심지어 다른 할머니들이 통화할 때 “엄마” 소리 들리면 엄마 귀가 번쩍했다며? 자식들하고 친구처럼 반말하는 게 부러웠다고 말하데? 그뿐이야? 엄마가 하도 엄해서 애들이 엄마를 어려워하고 존댓말 한다 생각했다고? 세상에! 50년 전 기억이라 흐릿해졌나 보더라? 내가 말해주니 그제야 생각났지?
존댓말의 역사를 내가 정리해 줄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 건너편 동네 친구집에 놀러 갔더니 걔는 자기 엄마한테 "어머니"라 부르고 존댓말 하는 거야. 내 눈에 참 멋져 보였어. 그때까지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한텐 존댓말로, 엄마한텐 반말로 했거든. 우리 엄마한테도 존댓말 써야겠다, 내가 결심했지. 엄마한테 잘하려는 딸이었잖아.
내가 성 평등을 알겠어 페미니즘을 들어봤겠어. 느낌으로 알았던 거야. 엄마아빠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싶었지. 내가 앞장서니까 5남매가 그날부터 어머니라고 존댓말을 했잖아. 아버지를 아빠로 바꿀 자신은 없었겠지. 우리가 모두 엄마한테 고분고분한 편이었던 건 호칭 영향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가 애들을 모질게 해서 그리 된 게 아니란 말씀. 순전히 엄마 딸이 엉뚱하고 유난스러워서 시작된 일이었다는 거 알겠지?
사랑하는 엄마~
재미난 얘기 또 들어볼래?
내가 암 수술하고 갱년기를 겪을 때 엄마가 그랬지? 믿는 사람한테 갱년기가 뭐 있냐고. 다 감사하고 살면 된다고 말이야. 나는 그게 아니라고, 내 생각이 날마다 달라진다니까, 엄마가 무지 적응하기 힘들어했지. 오죽하면 날 볼 때마다 엄만, 애가 자꾸 '못되게' 변해간다고 했겠어. 솔직히 엄마는 갱년기 따위 느낄 여유도 없었을 거야. 나는 반대로 갱년기 아니었으면 더 아팠을 거야. 그러니 엄마, "좀 못되게 변해도 좋다. 튼튼하게 살아만 다오." 어때?ㅋㅋㅋㅋ
반말 존댓말 그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도 바꾸고 싶었을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을 거야. 공적인 관계야 어쩔 수 없다지만 가까운 사람들끼린 상호 반말이 좋잖아? 어릴 땐 왜 엄마한테만 반말하나 그게 싫었는데, 이젠 왜 엄마하고 반말로 못 하나, 그게 싫은 거야. 참 잘도 뒤집어 엎는다 그쟈? 우리 애들하고도, 사위든 며느리든 모두 엄마아빠라 부르고 서로 반말하자, 미리 약속해 뒀어. 생각해 봐. 자기 아들 딸들하곤 서로 반말하고 며느리 사위한테는 어머님 아버님에 존댓말 쓰게 한다? 그림이 영 이상하잖아. 내가 어쩌다 보니 반말 전도사가 됐네? 낄낄낄.
엄만 속으로 걱정하겠지? "야가야가, 간이 배밖에 나오더니 아무나 보고 반말을 한다꼬?" 왜 아니겠어. 사람들 반응이 어땠냐고? 나야 재미난 경험 참 많이 했지. 대체로 젊은 쪽으로 갈수록 상호반말을 반기는 거 알아? 여자들 보단 남자들이 연령 고하 막론하고 상호반말을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도 신기했어. 처음에 형성된 관계와 호칭은 오래 익숙할수록 깨기 힘들어하는 게 분명해 보였어. 나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보고 서로 반말하자 내가 먼저 덤빌 때, 욕먹을 각오도 해야 했어. 그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지. 상호반말 친구가 나날이 늘고 있거든.
우리 부부랑 30년 지기 10년 선배 목사님 부부가 있어. 만나면 호칭이 서로 '목사님' 서로 '사모님'인 거 알지? 이게 난 갈수록 재미없고 답답해 죽겠는거야. 존댓말 안 쓰면 신성모독이라도 돼? 내가 미친년처럼 들이대 버렸어.
"우리 서로 이름 부르고 반말하면 안 돼? 사모님 말고 화숙아!! 해 줘. 이름만 불리니 불편해? 내가 언니 오빠라 불러 줄게." 물론 당황하더라. 그렇게 서로 반말트고 지낸 게 벌써 몇 년 됐어.
얼마 전엔 시어머니한테 내가 "엄마~~ " 하고 전화해 봤어. 시어머니가 "누고?" "여보세요?" 거듭 묻더라. 엄마라 부르는 당신 딸들 목소리가 아니거든. 계속 내가 "엄마~~ 누군지 모르겠어?" 킥킥 웃어댔지. 결국 "어머니~~ "하니까, "아이고~ 우리 큰며느리가?" 하데. 며칠 후 또 한 번 그걸 반복했지. 90세 시어머니와 60세 며느리가 서로 반말하면 안 될까? 작년엔 10살 위 시누이랑 반말 텄걸랑.
사랑하는 엄마~~
87세 엄마랑 친구하니 참 좋다. 이제 조금 엄마를 더 알 것같아. 19세에 결혼한 엄마, 날 낳았을 때가 27세, 5남매 막내 낳았을 때가 30세였더라. 엄마의 청춘은 그야말로 먹이고 키우고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었겠지. 할머니에 고모들에 삼촌에 일꾼들까지, 많을 땐 10명이 넘는 대식구의 맏며느였잖아. 중년엔 5남매들이 낳은 손자녀들 돌봐주느라 또 쉴 틈이 없었지.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셋째 낳았을 때 엄마 나이 63세였더라? 그게 엄마의 마지막이자 10번째 산바라지였고 말이야. 참 길고 긴 돌봄노동이었다 그쟈?
엄마! 참 애썼고, 고마워. 살아내자니 엄마는 자기를 위한 시간이 없었겠지. 호랑이엄마가 돼야 했을 거야. 진짜 무서운 엄마였는데, 이젠 하나도 안 무서워. 호랑이 딸이 이젠 더 무섭지? 환갑 호랑이니까 얼마나 더 무서워.
어흥~~
내가 간염 간암도 이기고 8년간 감기 한 번 안 걸린 호랑이잖아. 작년 말엔 코로나도 무증상 확진으로 도망간 거 봐. 엄마! 호랑이 딸 보기 좋지? 엄마가 나 어릴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말 기억해? 나보고 맨날 아들로 났어야 한다 그랬잖아. “니는 그래도 아침에 태어나서 팔자 드세진 않을 거다. 호랑이는 밤에 설치지만 해 뜨면 얌전해지는 짐승이니라.” 그놈의 팔자타령 호랑이띠 타령. 팔자 따위 내가 만들며 사는 거야! 알지 엄마?
보고 싶은 엄마!
나이 먹으면 사람 안 바뀐다는 말,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더라. 우리 모녀사이만 봐도 그렇잖아. 호랑이 엄마가 편한 친구로 바뀌었고 착한 딸은 호랑이 친구로 변했잖아. 엄마하고 우리 딸하고 모녀 3대가 전복죽 쑤던 그 여행 생각나? 엄마! 그래서 더 많이 고마워. 엄만 '못되게' 변해가는 딸을 사랑으로 지켜봐 주고 지지했잖아.
엄마! 그러니 우리 앞날은 또 얼마나 새로울지 기대되지 않아? 날 더 풀리면 모시러 갈게. 모녀 3대로 또 여행가야지? 같이 영화관에도 가고 카페에도 가고, 꽃 피는 봄길도 많이 걷자. 기운 내서 잘 준비하고 있어. 올봄엔 정서방이랑 쑥 많이 뜯어서 제대로 된 쑥떡도 할 거야. 엄마 오면 같이 먹고 많이 놀자 응?
사랑하는 엄마! 호보당당(虎步堂堂) 알지? “호랑이 기백으로 당당하게 걸어라!” 이런 뜻이야. 이건 우리 딸이 새해 선물로 준 《불멸의 호랑이》란 책에서 건진 말이야. 호랑이띠 환갑 선물인 셈이지. 우리 모녀 삼대에게 참 어울리는 말이지. 100세 시대를 사는 노년의 엄마에게 내가 보내는 뜨거운 응원이기도 해.
호보당당(虎步堂堂)!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