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거나 빳빳이 들거나

최은영의 <밝은 밤> 서평

by 꿀벌 김화숙

이민진의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파친코> 첫 회는 시장 장면으로 시작한다. 선자는 아버지를 따라 장을 보며 남의 흥정도 돕고 시장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그때 제복을 입은 일본 순사 둘이 걸어오는 게 저만치 보인다. 장터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차례로 고개를 숙인다. 순사가 가까워오자 아버지는 선자를 앞에 세우고 이렇게 속삭인다.


"선자야 고개 숙여야지."


선자는 등을 아버지 몸에 바싹 붙이고 아래를 내려다 보되 고개는 숙이지 않는다. 일본 순사들이 지나가자 씩 웃으며 그들을 일별한 후 나풀나풀 제 갈 길을 간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방을 맘대로 둘러보면서.

아버지는 왜 딸에게 고개 숙이라고 했을까? 선자는 왜 고개 숙이지 않았을까?

일본 순사 앞의 조선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는 세상이었다. 사람 중에도 여자는 남자 앞에서 고개 숙이는 게 당연한 시대가 있었다. 여자는 밖에 나다니려면 얼굴을 가리고, 남자가 지나가면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아야 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다니고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여자는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었다.



<밝은 밤>(최은영, 문학동네, 2021)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다른 말로 하면, 당당한 인간으로 살고자는 여자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까지 여성 4대가 "백년의 시간을 감싸 안으며 이어온 사랑과 숨의 기록"이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엄마에서 딸로 그리고 딸의 딸로. 이 모계 서사에 '외'할머니란 차별적 이름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작품은 단편집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를 쓴 작가 최은영이 낸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밝은 밤>을 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대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에게 결코 다정하지 않은 세상이란 말이다. 작가는 여자가 말 많고 센 건 좋지 않다고 배웠단다. '분란 일으키지 마라' '목소리 낮춰라'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갈등을 회피하는 성격이 돼 갔다. 그런 자신이 어느 날 너무 싫어서 좀 다른 여자들 이야기를 쓰기로 했단다.


작가는 선대의 여성들의 입을 빌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있다면 그건 여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산다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에게 가혹한 세상을 여자들이 말도 못하고 견뎌야 했다면, 그건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터득한 방법"이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맞거나, 이혼을 당하거나, 아이를 뺏기거나, 경제적인 토대를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을 내몰아 그런 선택을 하게 한 사회의 책임은 묻지 않고 여성 개인에게만 탓을 돌릴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책이 <밝은 밤>이다.


책에는 밝은 밤을 상징하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반복해서 나온다. 겉표지를 열면 달빛에 빛나는 검은 바닷물의 이미지가 좁은 띠처럼 배치된 속표지다. 그 뒤로 목차에 이어 1부 이야기 역시 그림으로 시작된다. 어두운 하늘에 보름달이 있고 검은 바다는 달빛에 반짝인다. 1부에서 5부까지 각 장 시작 부분에 반복 배치된 이 이미지는 독자를 질문으로 이끌어 간다. 밝은 밤? 어둠은 무엇이고 밝음은 무엇이냐고.


증조할머니 삼천이와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밝은 밤을 조금 들어가 보자.


증조할아버지는 양민으로서 백정의 딸인 삼천이를 '다 같은 천주의 자식'이라며 아내로 맞았다. 일본군 성 노예로 끌려갈 위기에서 삼천이를 구해준 게 결혼이었다. 삼천이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인 걸 알수록 남편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남편으로서의 일말의 권위마저 빼앗길까, 아내가 그를 비웃을까. 양민으로서 백정의 딸과 혼인하며 그는 아내로부터 더 대접받고 더 고마운 소리 듣길 기대했는데, 삼천이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의아했고 아내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는 그저 자기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양민이었던 것처럼 굴었다. 백정인 주제에 말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내를 그렇게 바라봤다. 본데없이 자라서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늘 고개를 빳빳이 드는 모습에 그는 옅은 노여움을 느꼈다. 그런 일로 노여워했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밝은 밤> 61-62쪽


그는 만민 평등을 믿는 사람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삼천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그의 지식과 별개였다. 백정의 딸인 삼천이 어떻게 양민 남편 앞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지? 그는 익숙한 세계관을 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깨인 남편이라도 아내보단 위에 있어야 정상 세상이니까. 양민은 백정 위에 있어야 마땅했다. 백정의 딸 삼천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남편과 동등한 인간으로 사는 걸 보면 그는 화가 났다. 감히, 처음부터 양민인 것처럼 굴다니!


지난 대선에서 “우리나라에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고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 말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그 말로 논란이 확산되자 그는 남녀 차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여성가족부 해체 때문이라 얼버무리며, "개인적 불평등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을 바꿨다. 개인적인 불평등은 뭐고, 거기 집중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 구조적인 성차별과 개인적인 차별이 어떻게 관계없다는 말이지? 모호하고 뜻 모를 정치인의 말잔치였다.


젠더 인식 또는 성차별에 대한 관점이 사람에 따라 다른 건 놀라운 일은 아니다. 100년 전 양민 남자가 백정의 딸 아내한테 느낀 그 불편한 감정을 보라. 사회적인 위치성과 입장에 따라 그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른 입장을 잘 모르면서도 낯선 목소리를 묵살하는 데 있다. 속담이 말하지 않던가. "제 배가 부르면 종배도 부른 줄 안다"라고. 늘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산 사람이 배고픈 종의 입장과 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성차별과 여성 혐오는 그래서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다. 정황과 맥락이 있고 여러 사람들의 입장이 보이는 소설 한 권이 백 권의 정치 이론서보다 좋은 이유다. <밝은 밤>은 우리 사회의 젠더를 둘러싼 논란에 밝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구조적인 성차별과 개인적인 차별이 무슨 관계인지, 가족, 결혼, 부부와 부모 자녀 관계와 구조는 어떤 관계인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역사와 개인의 삶은 어떤 관계인지, 쉬운 이야기로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이 연대하며 우정을 나누며 사는 밝은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밝은 밤>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 독자를 다독이는 다정한 목소리도 들을 것이다.

"고개, 숙일 것인가 빳빳이 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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