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단톡방> 서평, 아이들이 노출된 사이버 폭력의 현실을 묻다
13일의 단톡방/ 방미진/ 루크하우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해자 일곱 명은 수많은 친구들을 상대로 언어 성폭력을 저질러 왔습니다. 심의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해서 무려 A4로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을 말입니다."-김예은 세바시
대학생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대화방) 성희롱' 피해자 김예은 씨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의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그의 뒤 스크린에는 남학생들의 단체 카톡 대화 장면이 띄워져 있다.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도록 심한 언어폭력이 세상에 알려진 건 내부자 남학생의 제보 덕분이었다. 피해자는 참지 않고 그 사건을 공론화하고 씩씩하게 대중 강의까지 하게 된다.
그로부터 5년이 더 지난 지금, 인터넷 검색창에 '단톡방'을 입력해 보라. 바로 '단톡방 성희롱'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단톡방 관련, 성희롱과 폭력 관련 검색어도 줄줄이 따라나온다. 단톡방 언어 성폭행은 대학 내, 아르바이트 현장 등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갈수록 피해자가 늘고 있지만 가해자들이 받는 처벌이란 고작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정도의 솜방망이란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사이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편리한 신문명 스마트 기기와 SNS의 어두운 그림자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보듯 열 살도 안 된 사이버 성착취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IT강국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인 사이버 폭력을 어떻게 대처하고 예방할 수 있을까?
『13일간의 단톡방』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이버 학교 폭력을 보여주는 창작동화다. 단톡방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13일간 벌어지는 따돌림과 언어폭력을 탐사 보도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루킹은 별명이 ‘악질 해커’, ‘지옥에서 온 악마’인데 정작 그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이유도 모른 채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민서는 루킹이 주동자라고 생각한다. 루킹의 정체는 뭘까? 이 궁금증을 끝까지 끌고 가며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한다.
책 표지 왼쪽 위에는 '인성학교 마음 교과서 제6권 미디어 윤리'라는 글자가 있다. 어린이 인성교육을 위한 특별 기획으로 발간된 창작동화라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인성'을 어떻게 가르칠까? 이전 시대엔 주로 효도와 윗사람에 대한 예의범절이 인성의 주제였다. 오늘을 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주제를 옛 동화들이 결코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인성학교 마음 교과서가 담아낸 주제는 차이와 존중, 감정 조절과 감정 표현, 소비와 절제, 다문화, 정의와 실천 등을 거쳐 미디어 윤리에 이르렀다.
저자 방미진은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가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금이 간 거울』로 국내 창작 동화 최초로 미스터리 호러 동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 청소년 소설 『손톱이 자라날 때』와 『괴담: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외에 『인형의 냄새』, 『비누 인간』 등 다수 작품이 있다. 책 머리에서 사이버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향해 작가는 부탁한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10년 뒤에 떳떳하고 좋은 어른이길 바랍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이 상대방이 겪는 고통을 상상해 볼 기회라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맞게 그려진 좋은 삽화도 책의 장점이다. 국민지 작가의 그림은 심각한 사이버 폭력의 현실을 쉽고 깔끔하게, 만화처럼 이해하기 쉽게 잘 보여 준다. 특히 단체 톡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마치 실시간 중계처럼 실감있게 그려져 있다. 그는 『강남 사장님』 『4학년 2반 뽀뽀 사건』 『담임 선생님은 AI』 등에 그림을 그렸다.
교육부 공식 블로그에는 사이버 폭력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이버폭력이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서 폭력, 음란,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는 학교폭력에 해당합니다. 사이버 폭력의 유형에는 사이버 명예훼손, 사이버 언어폭력, 사이버 영상 유포, 사이버 따돌림, 사이버 스토킹, 사이버 갈취 등 다양한 유형들이 있습니다."
단톡방에서 행해지는 따돌림과 언어폭력은 명백한 사이버 학교 폭력이다. 책에는 자기가 속한 반 단톡방에서 민서는 따돌림과 희롱과 언어폭력을 경험한다. 점점 고립되고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한다. 아이들은 그러나 전혀 민서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놀이처럼 계속한다. 읽는 이도 괴롭다. 책은 왜 독자를 불편하게 몰아갈까?
교육학자 신나민 교수는 이 책이 "사이버 폭력 교재로도 손색이 없다"라고 추천한다. 만연한 사이버 폭력의 현실을 말로 가르치기 보다 느끼게 해 주며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디지털 문명. 그 빛과 그림자를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을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사고실험이 되고 현실 직면의 기회가 될 것이다. 상황 속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연결될 것이다. 아이와 부모, 어른과 아이, 선생님과 학생, 모두에게 추천한다.
미디어란 무엇일까?/ 미디어 윤리가 필요해/ 고통에 대한 공감을 길러요/ 스마트 미디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원칙.... 책에 덧붙여진 미디어 사용 관련 부록 제목들이다. 생각해 볼 문제를 정리해 놓았다. 여기 더해 독자를 위한 좋은 질문 꾸러미가 책 말미에 가득하다. 누구라도 책이 묻는 질문을 따라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통하고 가벼워질 것이다. 아이도 어른도 사이버 폭력의 현실을 더 직시하며 대처방안과 예방책을 보게 될 것이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톡이나 문자로 대화를 하나요?
실제 얼굴을 보면서 나누는 대화는 하루에 몇 시간 정도 하나요?
스마트폰 대화와 직접 만나서 하는 대화의 장점과 단점을 각각 말해 보세요. ( 183쪽)
여러분 반에 민서처럼 고통받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 아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