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더 두꺼워져야 해요

8월 말 나올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의 편집본이 나왔다

by 꿀벌 김화숙

건축 현장에서 콘크리트 작업에 양생이란 과정이 있다. 콘크리트 치기를 한 후 제대로 마르고 굳기까지 적당한 온도와 습기(수분)를 주어 충분히 단단해지도록 두는 과정을 말한다. 충격이나 하중에서 보호하고 비바람과, 서리, 햇빛, 냉기 등으로부터 콘크리트의 노출면을 지켜줘야 한다. 양생 과정이 좋지 않으면 콘크리트는 내구성이 떨어진다.


양생(養生)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느 건축 현장을 지나다가 '양생 중'이라는 팻말을 처음 보았을 때였다. 하도 신기한 단어라서 사전에 찾아보았다. "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 이 양생의 뜻이었다. 비슷한 말로는 섭생, 섭양, 양수다. 그게 콘크리트를 굳히는 과정에 쓰인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양생의 의미가 내게 좀 더 다가온 건 암 수술 후 내 몸을 돌보면서였다. 나는 내 몸을 병원과 의사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접수하기로' 했다. 내가 의사이자 선생이자 돌보미가 되기로 했다. 내 몸 안에 있는 100명의 의사를 깨워 스스로 몸을 만들도록 해야 했다. 그러자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내 몸에 적절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게 단번에, 한 방에,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지난한 실천의 반복, 즉 양생의 시간이 필요했다.


글쓰기에도 양생이 있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일필휘지로, 단번에 쓰는 줄 오해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썼다 지우고 써 놓고 다시 고치는 수고로운 과정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쓰는 천재이고 싶었다. 그런 길은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쓸수록 글은 결국 양생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건축 같은 작업이었다. 써 놓고 묵히고 또다시 고쳐 쓰고 다시 쓰는 수고를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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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이달 말 나올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도 양생의 시간을 거쳐 왔다.


책은 기획 단계부터 생각하면 8년 만에 나오는 셈이다. 나는 무슨 기운에 씌었을까? 간암 진단을 받은 그 순간부터라 면 좀 과장이겠다. 암 수술 후 본격 자연치유를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책에 들어간 이야기는 그래서 멀게는 6년 전에 쓴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시간을 두고 양생을 거쳐 책으로 묶은 셈이다.


오늘 오후 생각비행 출판사 조성우 대표와 만나 책 편집 이야기를 나눴다. 출판사가 교정 교열을 거쳐 출력해 온 편집본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이제 내가 검토하고 10일까지 보내면 다시 편집 과정을 거쳐, 삽화와 표지 디자인까지 포함해서 그다음 주에 PDF 파일로 나온단다. 그걸 내가 확인해 주면 8월 말 안에 내 책은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책 출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때로부터 5개월을 채우고 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참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아 처음엔 답답해 보였다. 완성된 원고를 넘겼으니 한 달 정도면 책이 될 줄 알았다. 그건 아마추어의 생각일 뿐, 출판사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우선 내 책만 붙들고 뚝딱 만드는 사람들도 아니잖은가.


출간 계약 체결 한 달 후 4월에 조 대표를 만났을 때, 나는 중요한 비밀을 혼자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내 책이 나오는 걸 보고 싶었지만 달리 서두를 길이 없었다. 9월 이전에 출간되기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조 대표는 그날 만남에서 내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책은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질 거 같아요. 자연치유로 몸이 회복된 이야기와 페미니즘으로 삶이 회복된 이야기죠. 그 흐름과 구성을 생각할 때 빼도 될 거 같은 두 꼭지가 있고, 마무리 글 한두 꼭지를 추가로 써 주시면 좋겠어요."


글쓰기의 양생이었다. 내 손을 떠난 원고를 나는 까맣게 잊고 맘 편히 살았다. 출판사에서 알아서 편집할 걸 믿었으니까. 한 달 훨씬 지나서 원고를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글은 그대로였으나 내 눈과 마음이 또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글이 다시 보였으니 퇴고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집장의 주문대로 몇 꼭지는 빼고 몇 꼭지는 다시 썼다. 서문에서 오마이뉴스와 브런치도 언급하고 추천사들도 줄여 모두 싣기로 했다.


내가 진짜 마지막 퇴고해서 보낸 후 다시 두 달 가까이 흘렀다. 오늘 만나 편집본을 보니 또 한 번 양생의 시간이었음을 느꼈다. 편집자들의 교정 교열을 거친 글이니 어련히 깔끔하고 매끄러워졌을까. 노련한 편집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묵혀뒀다가 퇴고할수록 글이 좋아진다는 것을. 이제 저자로서 내가 손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출산 전 마지막 검진받는 기분이랄까. 이제 곧 얼굴로 만날 아이를 낳을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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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굴 두꺼워져야 해요


"입말과 글말이 조금씩 달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능한 작가님의 글을 그대로 살리도록 노력했고요. 조사 생략된 건 살리고 처음 읽는 독자를 생각하며 가독성을 살리는 쪽으로만 손댔어요."


작가를 존중하는 편집자의 말을 듣는 게 나는 즐거웠다. 내가 편집을 얼마나 알며 출판을 어찌 알겠는가. 내가 몰라서 궁금해하는 눈빛만 보내도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제목도 내가 잡은 그대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보다 더 좋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서란다. 책 쪽수는 270쪽 안쪽, 책값은 15,000~16,000원, 초판 1,500부 찍을 것 같단다. 올해 종이값이 30%나 인상됐다는데,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


마무리로 내가 대표에게 그동안의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혹시 "아~ 내가 왜 이런 글을 계약했지? 이건 아닌데~~"라며 후회하는 순간은 없더냐고. 그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리고 나를 격려했다.


"몰입도가 참 좋은 글입니다. 후회되었다면 미안하지만 계약 파기했겠죠. 좋은 책을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어요. 제 개인적으론 특히 교회 여성들이요. 페미니즘 토론도 많이 하면 좋겠어요. 이 책으로 인한 어려움을 저자가 겪지 않을까 조금 걱정도 됩니다. 닥치면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얼굴 더 두꺼워져야 해요. 아시죠?...."


무지 설레면서도 솔직히 나도 좀 긴장되는 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순 없다. 내 책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 얼굴이 더 두꺼워져야 한다. 아!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내 책도 나도 충분히 양생의 시간을 거친 걸까? 이 기다림의 시간도 내게 양생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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