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좋아하세요? 시 읽어요!

내 책 출간을 앞두고 안현미 시인의『곰곰』을 종이책으로 읽으며

by 꿀벌 김화숙


시 좋아하세요?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시 읽어요!


내가 특별히 시에 재능이 있다거나 열심이란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순전히 글쓰기로 만난 벗들 덕분이었다. 단톡방지기 효숙샘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로운 시 한 편을 올려주는 게 10년이 훌쩍 넘었다.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세월 아닌가. 매일 밥 먹고 잠자고 운동하듯, 날마다 꼬박꼬박 아침 인사하듯, 최소한 시 한 편 읽으며 살다 보니 그리됐다. 시는 내게 평범한 일상이자 최고의 문학이요 친구요 글쓰기로 보인다.


한때 나는 시란 특별한 사람만이 쓰고 읽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른이 되고 글쓰기를 하면서도 내가 시를 쓰기 까진 할 수 없으리란 막연한 편견이 있었다. 자꾸 끌리니 시 쓰기 강좌라든가 시인의 강의는 몇 번 들었다. 시를 읽었고 습작도 해 봤다. 그래도 시는 내게 만만하지 않은 문학으로 보였다. 왜냐면 나는 재능을 의심했으니까.


매일 시를 읽다 보니 그런 장벽은 확실히 허물어졌다. 시 읽는 즐거움, 시를 가지고 노는 재미가 좋다는데 누가 말리랴. 하루 한 편을 최소한 두 번 이상은 읽는다. 첨엔 눈으로 그다음엔 소리 내어. 그리곤 감상을 달기도 하고 농담을 하고 비틀기도 한다. 짝꿍에게 오늘의 시를 읽어주기도 하고 같이 수다도 떤다. 다른 방에 퍼나르기도 한다. 마음이 움직일 땐 시가 손으로 가 글이 된다. 짧은 한 편의 시가 때로 긴 이야기로 뻗어가곤 한다.


이제 곧 나올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도 시를 읽고 쓴 글이 한 꼭지 들어가 있다. 37꼭지 중 34번째 글 <비굴 레시피>다. 안현미 시인의 시 제목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와 제법 긴 글이 된 경우였다.






비굴 레시피


안현미



재료

비굴 24개 / 대파 1개 / 마늘 4알

눈물 1 큰 술 / 미증유의 시간 24h


만드는 법

1. 비굴은 흐르는 물에 얼른 흔들어 씻어낸다.

2. 찌그러진 냄비에 대파, 마늘, 눈물, 미증유의 시간을 붓고 팔팔 끓인다.

3. 비굴이 끓어서 국물에 비굴 맛이 우러나고 비굴이 탱글탱글하게 익으면 먹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비굴을 잔굴, 석화, 홍굴, 보살굴, 석사처럼

영양이 듬뿍 들어 있는 굴의 한 종류로 읽고 싶다

생각건대 한순간도 비굴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므로

비굴은 나를 시 쓰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체하게 하고

이별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당신을 향한 뼈 없는 마음을 간직하게 하고

그 마음이 뼈 없는 몸이 되어 비굴이 된 것이니

그러니까 내일 당도할 오늘도

나는 비굴하고 비굴하다

팔팔 끓인 뼈 없는 마음과 몸인

비굴을 당신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이 시를 처음 만난 건 2년도 더 전이었다. 그날 이른 아침에 단톡방에 올라온 시를 읽자마자 나는 옆에 누운 짝꿍에게 바로 읽어줬다. 시가 이끈 긴 토론이 글이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으로 퍼날라지는 시에 가끔 오타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 책 퇴고를 출판사에 마지막으로 넘긴 게 5월이었는데 시에 잘못 쓴 연이 있는 줄 몰랐다. 시집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 긁어다 썼으면서도 의심도 없이 지냈다.


생각비행 출판사 조성우 대표께서 첫 만남 때부터 반복해서 한 말이 있었다. "교정 교열 편집 과정에서 책에 인용된 시는 출처인 시집 『곰곰』으로 직접 대조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 책에 시를 인용하려면 그 시집을 낸 출판사의 협조를 얻고 출처를 밝히고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교정지 주고받는 8월 만남에서도 들었다. 그제야 나는 도서관으로 바로 달려갔다. 내가 긁어 썼던 시에 오타를 확인했다.


인터넷 시대, 인터넷으로 시를 날마다 읽는다는 게 이런 거였다. 내가 시집을 좀 사 읽는 척했는데, 내 책에 인용한 시 정도는 책을 구해 봤어야 맞는 거 아냐(이러니 시인이 책 내고 돈 벌기 얼마나 어려운가)? 마지막 연 "비굴이 당신을 맛있게 먹어준다면"을 "비굴을 당신이 맛있게 먹어준다면"으로 수정하는데 가슴이 아렸다(내가 빠뜨렸더라도 편집자가 끝엔 확인하고 고쳤겠지만). 글 역시 몇 줄은 삭제될 수밖에 없었다.





시란 무엇일까?

나는 왜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싶을까?


나는 영화 <시>(이창동 감독, 2010)를 자주 떠올린다(치매로 잊혀가는 배우 윤정희가 마지막 주연한 영화라 더 애틋해 몇 번 봤다). 66세의 미자는 사회복지 도움을 받으며 손자를 키우며 산다. 손자와 친구들에게 집단 성폭행 당한 여중생이 강물에 빠져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심신이 괴로운 중에도 미자는 시 강좌를 듣는다. 강좌 마지막 날 '아녜스의 노래'란 시를 발표한다. 아녜스는 죽은 희진의 세례명이다. 미자의 목소리에 이어 희진의 목소리로 시가 낭송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시를 정의하려는 게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시인 네루다가 말했다던가. 영화 속 미자에게 시는 아프고 무거운 마음과 희진에 대한 미안함을 솔직히 표현하는 길이었다. 시 강좌 마지막 날 '아녜스의 노래' 말고 미자가 무슨 더 '예쁜' 시를 쓸 수 있었겠는가. 이 세상 모든 건 글이 되고 예술이 되듯, 시가 될 수 있음을 미자가 보여 주었다.


내 안에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 역시, 어느 날 시로 나올지 누가 아는가. 그래서 나는 시를 읽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곰곰』(안현미, 걷는 사람, 2018)을 뒤늦게 책으로 읽었다.


표제작 <곰곰>을 시작으로 55편의 시와 자전적 산문 2편이 담긴 시집. 내가 좋아하는 <비굴 레시피>는 제1부 제목으로도 쓰였다. 첫 18편 중 네 번째로 나온다. 시집마다 다 있는 건 아니지만 '시인의 말'을 읽는 맛이 난 좋다. 짧은 임팩트로 쓴 '작가의 말'인 셈인데 시인의 육성처럼 듣게 된다. 『곰곰』의 속표지를 넘기면 '시인의 말'이 이렇게 메아리친다.



"품에 안고 동냥젖을 물려준 언어들과 나를 가여워하시는 모든 애인들께 오체투지!"



다른 시집의 시인의 말도 좀 들어볼까?


김혜순은 『어느 별의 지옥』에서 이런다. "시들을 여기에 다시 풀어놓는다. 꼴뚜기 같은 내 시들아, 저기 저 어둔 고래를 먹어치우자. 부디. 1988년 봄."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자들은 모른다』에서 김승희 시인은 말한다. "비너스의 언덕과 자궁이 여성 운명의 전부라고? 그것은 거짓말 아닌가?" 시집 『공통 언어를 향한 꿈』에서 에이드리안 리치는 시인의 말을 이렇게 했다. "나는 간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곳으로, 나는 간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로 의무나 연민을 전혀 생각지 않으며. - 힐다 둘리틀, 『꽃피우는 지팡이』에서."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산업대를 졸업했다. 2001년 문학동네에서 <곰곰>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가 있다. 제28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곰곰> 앞날개


시집 앞날개를 옮겨 적으니 안현미 시인이 너무 납작하다. 차라리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이 한 말이 훨씬 와 닿는다.


"예술가로서의 삶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굉장히 잘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시를 쓰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과 내가 원하는 것들을 병행하기 위해서, ‘모든 게 시가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전략을 취하는 거죠. 그런데 그 중에 이루는 건 0.1%나 되려나? 되는 게 거의 없죠(웃음). 손가락이 열 개인데 그중 하나는 항상 시의 언저리에 늘 찍어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요. 그렇지만 이쪽저쪽 다 무능하다고 전 생각해요(웃음)."-채널예스 2016


곰곰』을 종이책으로 읽는 감동 때문에 글이 길어지나 보다. "모든 게 시가 될 수 있다"라고 한 그대로 안현미의 시는 삶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시집에서 길지 않은 시 몇 편만 골라 손으로 옮겨 보았다. "너는 여자로 태어나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니?" 아무리 생각해도 곰곰, 읽을수록 절창이다.



곰곰


주름진 동굴에서 백 일 동안 마늘만 먹었다지

여자가 되겠다고?


백 일 동안 아린 마늘만 먹을 때

여자를 꿈꾸며 행복하기는 했니?


그런데 넌 여자로 태어나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니?



언어


내가 사랑하는 '나무'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나무'라고 불러주는 황홀. 책상도 아니고 침대도 아니고 '나무'라고 불러주는, 여러 번 생각하고 생각해도 매번 믿기지 않는 황홀.


내가 사랑하는 '나무'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나비' 혹은 '나물'이라고 가끔 틀리게 말하는 그러나 아주 틀린 것은 아닌. 설명하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그리하여 내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어느새 당신도 알아버리는 황홀.




알코올


램프를 상상했다면 당신은 연금술사일 가능성이 높고, 중독을 생각했다면 당신은 마약쟁이일 가능성이 높고, 두꺼비를 상상했다면 당신은 시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의 확률일 뿐. 우리 주위에는 한 가지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는 많은 삶이 존재하고 그 많은 존재 사이에서 언어들은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피톨들이 우리의 육체를 떠돌아다니듯, 마침내는 알코올이 우리의 혈관을 지배하듯. 어쩌면 시인들이란 그 많은 존재사이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그 유령의 비밀을 목격했다고 함부로 거짓을 발설하는 취객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저 홀로 먼저 취해버리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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