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아! 순남아! 효진아!

단원고 2학년 6반 선우진에게

by 꿀벌 김화숙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중



우진아!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는 이 시를 참 잘 아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말이야. 네 이름을 부르며 화정 천변 안산 천변을 걸으니 노랗게 노랗게 핀 큰금계국이 더 아름답게 다가오는구나. 꽃창포는 어떻고 파란 수레국화는 또 어떠니. 꽃으로 핀 이름들이로구나, 불러본다.


너를 이름으로 "우진아!" 부를 때마다 또 하나의 이름이 떠오르는 거 알지?


"순남아!" 이 이름 말이야. “순남 씨!” 이렇게 적어야 마땅한데, 네가 엄마를 부르던 이름 그대로 옮겨 적었어. 두 이름을 나란히 부르는 내 맘 너는 알 거야. 너도 엄마 순남 씨도 난 얼굴로 만나 본 적은 없어. 오직 아는 건 두 이름뿐이지.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게, 이 순간 참 고맙게 느껴져. 내게 다가와 꽃으로 피고 있으니 말이야.


영화 <생일>을 다시 봤단다. 3년 전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안산에서 공동체 상영으로도 보고, 토론도 하며 몇 번 본 영화지. 이번엔 '별을 품은 사람들' 벗들과 다시 보기로 함께 했어. 8주기가 지났지만 '세월호'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 아프고 답답한 이름이잖아. 그 이름을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힘들어하는 이웃들이 있고 말이야. 눈물 흘리며 가슴 칠지언정, 이름을 또 부르기로 한 사람들이 함께 영화로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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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삶은 언제나 영화보다 더 가혹하고 더 아프구나. 영화 속 수호의 모델이 우진이란 걸 약전을 읽은 사람들은 알고 있단다. 영화 속 수호가 엄마를 "순남아!"라고 부를 때 우린 우진이를 떠올렸어. 영화에선 아빠가 외국에서 일하다가 원치 않게 발이 묶이고 네가 떠나고 3년이 지나서 돌아오는 것으로 그려졌지. 영화 속 엄마 순남 씨는 아들이 떠난 그 시간을 고스란히 혼자 겪어야 했고 말이야. 아들 없는 생일잔치를 한다는 것도, 갑자기 나타난 아빠도 엄만 다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어. 아, 생일 잔치가 다 뭐냔 말이야. 영화처럼 아빠가 돌아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엔 늦게라도 돌아오실 아빠가 없고, 너 없는 생일잔치도 없었는데 말이야.


너는 엄마를 "엄마"라고만 부르지 않고 "순남아!" 불렀지. 중학교 2학년 어느 날부터였지? 엄마 키를 머리 하나만큼 훌쩍 커서, 네 몸도 마음도 나날이 커가던 때였어. 네가 엄마의 버팀목이 되자고, 엄마의 친구, 엄마의 애인, 그리고 가족의 보호자가 되자 맘 먹었잖아. 네가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에 아빠가 큰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으로 누워계신 상황이었지. 그 아빠는 네가 수학여행 떠나기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엄마와 열 살 아래 여동생만 두고 너는 돌아오지 않는 수학여행을 떠났구나. 이게 말이 되냔 말이야.


사랑하는 엄마 순남 씨. 사춘기 아들 너와 열 살 아래 여동생 효진이의 엄마. 한 부모로서 두 아이들을 홀로 책임지며, 병원 근무하랴 의식 없는 아빠 병수발 하랴. 그 힘들고 아픈 세월을 우진아, 너는 그렇게, 엄마를 "순남아!" 이름으로 부르며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려 노력했구나. 중학생 너는 엄마가 개명해준 새이름 우진이 되었지. 다른 이름으로 아들을 불러주고 싶은 엄마 맘,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 아들. 두 마음을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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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사춘기 투정을 할 새도 없이 너는 아빠 역할 남편 역할 오빠 역할을 한꺼번에 해야 했구나. 힘든 엄마에게 버팀목이자 희망이 되었지. 애인 같고 남편 같은 아들. 어린 네겐 너무 무거운 삶의 무게였지만, 그럼에도 모자의 케미가 아름다운 꽃송이처럼 피고 있었어. 너는 동생을 맡아 주고 피곤한 엄마를 쉬게 할 줄 알더구나. "많이 힘들지? 이모네 좀 가서 놀다 와." 그러면 엄마도 너를 믿고 네 말을 따라 잠시 쉴 수 있었지.


사춘기 아들의 엄마 노릇이 결코 쉬운 게 아니잖아. 넌 모든 상황을 이해하더구나. 엄마와 목소리를 높였을 땐 항상 "순남아 미안해" 먼저 사과하는 애인이 너였어. 병원에서 야근하다 배고프면 엄만 네게 전화를 했고 넌 간식을 사다 줬어. 그런 핑계로 서로 보고 싶은 연인들이 심야 데이트하듯 모자가 만났지. 지치고 고달픈 엄마의 일상에 넌 오아시스였어. 엄마와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주는 아들이 되어야 했을 거야. "순남이는 오빠만 믿어"라며 손 편지도 자주 썼다니, 와~~병원 동료들이 엄마를 부러워했다는 건, 안 봐도 딱 비디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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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열 살 아래 네 동생 이름도 함께 불러본다.


"효진아!"


효진이를 생각할수록, 이 삶이 영화보다 훨씬 버겁고 가혹한 것이었어. 어린 효진이는 태어나서 아빠와 이별해야 했는데 아빠 같은 오빠까지 잃었어. 어느날 갑자기, 왜, 이유도 모른체 말이야. 영화 속 동생도 엄마의 우울과 눈물을 견뎌냐 하는 게 너무도 안쓰러웠어. 현실의 네 동생 효진이는 어땠을까? 정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구나 우진아. 동생이랑 엄마 아빠가 함께 '너 없는 생일잔치'에 참여하는영화의 결말. 고맙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어. 더 가혹한 현실을 영화에 어찌 담아낼까, 만드는 분들도 참 고민했을 거야 그치?


너는 어린 동생 챙기느라 친구들과 맘 놓고 놀러 나가지 못하는 오빠였어. 아빠가 누워 계시니 세 가족이 여행 간다는 건 엄두도 못 냈고 말이야. 넌 엄마도 챙기고 효진이도 챙기며 어느 날 말했지.

"나는 어렸을 때 추억이 없는데, 효진이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시간 날 때 우리 같이 여행도 하자."

그러자니 멋진 애인 중의 애인, 오빠이자 아빠인 너는 이런 약속도 했어.

"그럼 순남아, 내가 딱 스무 살 되면 바로 면허 딸 테니까 부산 한 번 가자."


그 가족여행은 못 지킨 약속이 되었구나. 너와 엄마는 병원에 누워 계신 아빠에게 어린 효진이를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지. 아빠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효진이한테서 오빠마져 앗아간 이 부조리를 어린 효진이에게 누가 이해시킬 수 있겠니. 네가 효진이 돌봐 줄 때 자주 틀어준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나도 지금 듣고 있어. 효진이는 네게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서 <벚꽃엔딩>처럼 밝고 활발한 아이로 계속 자라고 있을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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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운동을 잘하고 좋아하는 넌 축구를 특히 좋아했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미 태권도 검은 띠를 땄구나. '축구 병'이란 게 있다면 넌 100프로 걸렸을 거란 게 엄마 생각이래. 동생 챙기는 시간 외에는 시간 나면 축구를 하고 해설을 하고 축구 게임을 했지. 엄만 축구를 좋아하는 널 전심으로 밀어주지 못한 게 지금도 마음에 짐이래. 사고로 쓰러진 아빠를 보며 엄만 네가 다칠 게 가장 걱정돼서 그랬대. 왜 아니겠어. 그래서 넌 축구 해설에 관심을 갖게 됐구나.


축구라면 보는 것도 하는 것도 다 좋아했으니 너는 훌륭한 축구 해설가가 되었을 거야.


새벽에 인터넷 중계되는 유럽 축구를 자주 보며 해설 연습하는 너였잖아.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 앞에 앉아 중얼중얼, 가끔은 소리를 지를 때, 엄만 네가 아주 그럴듯해 보였대. 우진이 포지션은 공격수, 등번호가 9번 10번이었구나. 그 유명한 펠레 등번호가 10번이었지. 184센티의 호리호리한 몸매에 패션 감각까지 뛰어났던 너. 네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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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네가 사랑하는 엄마 스마트폰에 저장해 준 노래로 편지를 마무리할게. 네가 학교 음악 시간에 배우고 엄마한테 가르쳐 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말이야. 네가 한 소절 부르고 엄마가 따라 부르며 함께 불렀다지. 멋진 애인 아들 우진이는 엄마가 노래를 제대로 배우고 함께 노래하고 싶어했지.


노랫말을 음미할수록 너를 향한 엄마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고, 엄마를 향한 네 마음이 진하게 느껴져. 동생 효진이를 향한 네 마음, 너를 향한 동생의 마음이도전해와. 아~~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우진아.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최고의 사랑 고백이구나.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네가 있는 세상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야. 그래, 있을 수가 없어. 없고 말고.


"우진아!"

"순남아!"

"효진아!"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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