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가 내게 준 선물들
탄생
이보영
아내여 수고 많았소
참 장하외다
훌륭한 인내로 당신 오늘
생명의 신비를 베끼시었소
열 달 전 찾아든 많은 고통들
당신은 잘도 참아내었소
일어서면 생겨나던 어지러움도
고개 돌려 피해내던 비린 내음도
움직일 때 몰려오던 큰 숨가쁨도
열 달 긴 시간 당신 잘 견디었소
온몸 부서지는 아픔
하늘 땅 갈라지는
태초
생명 터지는 큰 고통까지도
귀한 생명 위해 잘 참아내었소
우리 둘 소산 위해 잘 견뎌내었소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 참 장한 일 했소
드디어 책이 내 손에 들어왔고 서점에 깔렸고 독자들 손에도 들어갔다. 열 달 동안 내 몸에 품고 있던 아이를 낳은 기분이랄까. 새 생명, 새 몸, 또 하나의 인격체를 세상에 내 보낸 내 몸. 고맙고 장하다. 탄생의 순간까지 잘 견뎌준 내 몸, 계속 쓰고 성장하길 응원한다. 내게 축하와 지지를 보낸 분들이 고맙다. 희노애락을 같이 해준 짝꿍과 책 만드느라 수고한 출판사 벗님들께 감사한다. 출간 후 며칠간의 단상을 정리해 본다.
저자 가격으로 주문한 책 250권과 저자 몫 10권이 9월 21일에 왔다. 낡은 차 트렁크를 깨끗이 청소하고 홑이불 한 장 깔아 책을 맞았다. 금방 태어난 책 아기를 뉘듯이 말이다. 서울에서 안산까지 책을 싣고 온 생각비행 조성우 대표와 손성실 편집장을 만나니 산고를 함께 한 동지처럼 보였다. 내 글을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뜯고 살피고 씹고 편집한 이들이니 내가 무엇을 꾸미고 체면차리겠는가. 생긴대로 포옹하고 소통하는 만남이었다.
책이 나오니 더 실감 났다. 출간을 통해 얻은 게 결코 책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선물은 뜻 맞는 출판인들을 만난 것. 출간 기획서 보낸 50여 군데 중 출간 전제로 만나자는 연락은 생각비행 출판사 하나였고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돌아보니 내 책은 나름 좁은 문을 통과했던 셈이다. 무명작가인데다 잘 팔리고 돈 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었으니까. 만인이 관심 있는 건강 이야기 같으나 알쏭달쏭 자연치유 아닌가. 가족과 부부는 누구나 관심 있을 것 같지만, 중년에다 페미니즘을 끼얹은 이야기다. 게다가 신학과 종교도 슬쩍 건드렸으니까.
어렵게 산도를 통과한 아기를 안듯 나는 책을 받아 가슴에 안았다. 하늘을 보니 파랗고 하얀 색깔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창 넓은 카페에 앉아 우리는 수다 삼매경 두 시간을 보냈다. 출판인들도 작가도 서로 감사했다. 내 글을 알아주고 내 책을 내자는 제안만으로도 나는 출판사가 고마웠노라 고백했다. 2월에 출간이 한 번 엎어진 경험도 다시 고백했다. 무명의 초보 작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나답게 쓰도록 지지해 준 것도 생각할수록 고마웠다.
글쓰기는 나를 찾고 나를 치유하며 나로 살게 하는 길이었다. 출간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나와의 만남이 아닐까. 나는 오랜 세월 내가 가진 은사를 부정당하며 가스라이팅에 길든 인생을 살았다(이 이야기는 따로 쓸 것이다). 내 장점이 죄로 해석되는 세상이 있었다. 말 잘하고 글 잘 써도, 똑똑해도,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정죄 받는 여자로 평생 살 뻔했다. 참 멀리 돌고 돌아왔다.
책 출간은 내게 그리고 내 장점에 대한 칭찬 선물 같았다. 출판인들을 통해 들려준 창조주의 목소리랄까. 내가 가진 걸 인정하기, 시의적절한 지지, 자기 객관화, 영감과 자신감이란 선물꾸러미였다.
"출판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작가다. 우리는 좋은 작가를 얻은 게 가장 기쁘다. 그동안 150여권 책을 출판하며 수많은 작가를 경험했다. 김화숙 작가님은 글에 생명이 있다. 만나보니 더욱 에너지가 느껴진다. 글과 삶이 일치하고 활동하는 사람이라 좋다. 출간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잘 흘러왔다. 편집자로서 작가님 글은 손댈 게 없었다. 계속 함께 하고 싶은 작가다. 다음 책도 그 다음 책도 우리와 함께 내자.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계속 하면 된다. 생각하는 주제로 일단 많이 써 두라. 나중에 다음으면 된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덕분에 사람들을 조금 돌아볼 수 있음도 선물이었다. 말로도 돈으로도 갚기 어려운 호의를 책 한 권으로 대신할 수야 있겠는가. 가까운 벗들은 모두 내 책을 사서 읽게 하되, 시간과 공간이 떨어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책을 부쳤다. 줄이고 줄여서. 우체국 사전 접수 서비스 덕분에 51명에게 한 권씩 부치는 걸 금방 할 수 있었다. 택배비와 봉투 189,000원, 저자 가격 책값 571,200원. 아직은 할 만한 액수로 보였다.
내 책은 친정 엄마에게도 선물이 됐다. 노년의 엄마가 행여 소화하지 못할까 봐 나는 조금 망설이다 보냈다. 기우였다. 엄마는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3분의 1쯤 읽고 전화했다. 계속 울며 읽었다고. 이후 사흘 걸려 완독했다. 돋보기 오래 써서 눈이 빠지게 아픈데 계속 울기까지 했으니 노인에겐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엄마 참 똑똑한 노인 맞다. 내 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를 폭풍 공감하고 있었다. "니가 맞다"라는 역대급 응원을 했으니까.
"니는 우째 글로 엄마를 이래 마이 울게 하노. 참 솔직하게 잘 썼네. 내가 너를 너무 몰랐구나 싶다. 니 아프고 치료하는 과정은 내가 우느라 읽기 너무 힘들었다. 벌써 옛날 일이라 많이 잊고 있었는데, 니가 그래 욕봤구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누가 아노 니 시정을. 니가 혼자 그래 애썼는데, 나는 잊어버리고 내 욕심만 내고 니를 힘들게 했구나. 미안하다. 우리 딸 참 잘했다. 니가 맞다. 그렇게 사는 게 맞다. 이제 그렇게 훨훨 날아가며 김화숙이로 살아래이. 내 딸 김화숙이 원래 그 모습이 맞다."
수많은 저자 특강에 가서 책에 저자 싸인을 받았지만 내가 할 이날을 준비하진 못했다. 싸인을 좀 멋있게 만들어 뒀어야 했는데 말이다. 여성단체 벗들이 공구한 책을 배달했더니 싸인을 하라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망설여졌다. 내 이름으로 말하고 글 쓰며 산다면서 막상 내 책에 이름을 큼직하게 쓰려니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었다. 한쪽 귀퉁이에 얌전하게 써 보았다. 써놓고 보니 아직도 드세 보일까 저어하는 망령이 보이는 거 같았다. 딸이 절친들 선물이라며 책을 사가지고 와서 싸인해 달란다. 이번엔 과감하게 큼직하게 쓸 수 있었다. 역시 이게 맞아. 익숙한 큰 글씨체 그대로 자유롭게 날린 '김화숙'으로 가기로 했다.
다시 위에 적은 시 '탄생'으로 돌아가 본다. 시는 남편이 화자가 되어 출산한 아내를 축하하고 감사하는 내용이다. 이 시가 내게 인상적인 건 내 출산 때를 돌아보게 해서였다. 책 출간을 출산에 빗대어 말하긴 했지만 내가 경험한 출산엔 이런 축하 기억이 없었다. 그게 새삼스럽게 돌아보였다. 내가 무지 애쓰고 고생해서 내 몸으로 한 일인데 왜 나는 남편한테 축하 받은 기억이 없지? 낯선 질문이었다. 세 번 다 그랬다.
뭐였지? 물론 수고했다는 말은 들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세 아이 모두 같이 분만실에 들어가 함께 출산해서 같이 했다는 느낌이 더 컸던 것도 같다. 둘이서 마침내 해냈다는 느낌. 같이 완수해야 할 미션을 수행한 느낌 말이다. 큰 문제없이 순산했다는 안도감도 함께 나눴을 것이다. 곁에서 같이 힘주고 출산을 도운 덕이 많은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더 진하게 축하받고 칭송받아 마땅했던 일이란 게 뒤늦은 깨달음이다.
덕도 인정했다. 내 수고에 감사하고 축하했다기보다는 출산은 우리가 할 일을 해냈다는 느낌이었노라고. 책 출간이 우리의 지나온 삶을 재해석하게 하나 보다. 애 셋 낳고도 우린 역시 뭘 모르고 살았구나. 아이는 내가 낳았건만 그때 내 몸은 나를 둘러싼 가부장제가 점유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지 싶다. 내 몸이 한 일이지만 칭찬받을 주인이 따로 있는 상황이었달까. 축하는 아마도 시부모가 많이 받았을 것이다.
출간이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인 셈이다. 내 몸은 내가 접수했잖나. 출산도 출간도 내 몸으로 겪은 일이니 내가 축하받는 게 맞다. 그 누구의 이름을 빛내주는 도구로서의 내 몸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일까. 덕이 준비한 출간 축하 꽃과 카드와 와인이 내 눈에 새롭게 보였다. 그는 나를 폴란드어로 "가장 좋은 내 절친 화숙"이라 부르고 자신을 "너의 절친 하덕"이라 썼다. 현재의 우리 관계를 가장 잘 담아낸 표현이었다.
"2쇄 3쇄 20쇄 30쇄 갈데까지 가보자!"
그래, 축하와 응원 고마워. 같이 애썼어. 덕분에 지나간 출산의 기쁨과 축하까지 소급해서 맛보니 참 좋다. 암, 지난 일이지만 다시 내 몸에게 축하할 일이고말고. 출간이 가져온 선물은 세어도 세어도 끝이 없다.
어제부터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서평이 온라인에 뜨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선물이렸다. 몇 개 공유해 본다.
https://m.blog.naver.com/ehrbs76/222883749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