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8반 이호진에게
엄마의 행복, 살가운 아들 호진아~~
삼라만상이 가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구나. 태풍과 장마를 이겨내고 결실하는 곡식과 과일, 나날이 짙어가는 집 앞 가로수 단풍이 볼수록 고맙구나. 코로나 때문에 못하던 행사며 대면 모임들이 재개되니, 갈 데 많고 볼 것 많은 10월이었어. 호진아! 네게 전해줄 재미난 가을 소식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렇게 시작하며 지난주 네게 편지 초고를 써 두었더랬지.
아~ 10월의 마지막 아침에 퇴고하는 내 마음은 초고를 쓸 때의 마음과 너무 달라.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할로윈을 즐기던 젊은이들이 압사사고를 당했어. 오늘 아침 통계로 전체 사상자 303명인데 사망자가 154명이나 돼. 대부분 너희 또래 젊은인데 중학생 1명, 고등학생 5명이래. 너무 말이 안 되는 사고였어. 세월호와, 너희들과 부모님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 애도를 어찌 표할지 모르겠지만,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네게 편지를 쓰는구나.
호진아! 전하고 싶던 소식 중 '도예 전시회' 이야기만 할게. 10월 17일(월)~ 10월 21일(금)에 상록구청 갤러리 '혜안'에서 "2022 마음치유 행복 나눔 "마음을 담아 희망을 빚다" 도예 전시회"가 있었어. 난 친구가 알려줘서 보러 갔지 뭐니. 우리 집이 상록구청 바로 코앞이거든. 구청에 일보러 온 친구가 전화로 다급하게 전해 온 거야.
"구청 갤러리에 도예 전시회 하는 거 너는 알고 있었어? 나도 몰랐는데 와서 보니 노란 리본이 보여. 별이 된 아이들의 엄마 아빠들 작품인 거 있지. 왜 난 이걸 몰랐지? 공지 본 기억이 없어."
"뭐라고? 별이 된 아이들 이야기로 도예 전시회를 하는데 우리가 전혀 몰랐다고? 우리 별을 품은 사람들 맞아?"
화들짝 달려가 보았어. 별을 품고 산다는 우린데 왜 어디서도 공지를 본 기억이 없지? 그 질문을 품고 말이야. 전시회는 내게 가슴 아픈 이 나라의 민낯과 맞닥뜨리는 시간이었어. 별이 된 250명 너희들의 가족협의회가 두 개가 됐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어. 근데 내가 '416가족협의회'만 알고 108명이나 되는 너희들이 속한 '0416단원이고 가족협의회'는 무심했더구나. 한 날 한 시 참사를 당하고 별이 된 너희들인데 말이야. 정말 미안해 호진아.
커다란 공동작품 두 개가 인상적이었어. 하나는 팽목항 기억의 벽을 닮은 '도판'이고 하나는 커다란 '항아리'였어. 모두 기억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항아리는 직접적으로 너희들의 이름을 담고 있었어. 1미터나 되는 항아리를 거치대 위에 전시해 놓으니 내 키보다 커 보였어. 맨 위 항아리 아구 주변은 노란 리본과 함께 "2014년 4월 16일 희생자 잊지 않을게요"가 둘러 쓰였지. 맨 아래는 역시 노란 리본과 함께 "0416단원이고 가족협의회"와 "2022안산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라 적혀 있었어.
항아리 겉면엔 위에서 아래로 304명의 이름이 채워져 있었어. 별이 된 너희들 1반부터 10반까지, 선생님들, 그리고 일반인 희생자까지. "희생자 잊지 않을게요"의 '희'자 아래 고우재로 시작하는 긴 명단이 너희 8반이구나. 호진아! 어떻게 해야 너희를 더 잘 기억할 수 있을까? 너희 24명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보는구나.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장준형, 전현우,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정수
호진이 엄마 아빠가 함께 큰 작품을 만드셨어. 엄마 김미옥, 아빠 이용기. 이 작품이 인상적인 건 까만 색으로 다섯 식구 밥상인 게 눈에 쏙 들어왔어. 우리 집이 애 셋 있는 5인 가족이라서 말이야. 엄마 아빠는 제목을 "우리 가족 12첩 임금님 밥상"을 이런 맘으로 차리셨더구나.
우리 가족 임금님 밥상
현대는 아무나 12첩 반상을 먹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임금님만이 유일하게 드실 수 있는 밥상이었습니다. 지금의 저희는 4인 가족이 되었지만 영원한 5인 가족으로 임금님의 수라상으로 행복한 한 끼로 즐기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상상만으로 슬프면서 기쁩니다.-단원고 2학년 8반 이호진 엄마 김미옥 아빠 이용기
너는 아침 6시 40분이면 식탁 앞에 앉아 밥을 기다리는 아들이었어.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늘 칭찬을 했지. 엄마의 12첩 임금님 반상에 너의 최애 김치전은 빠지지 않았을 거야. 너는 모든 걸 맛있게 먹으면서도 더욱 구체적인 칭찬으로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거야.
"반죽의 농도가 잘 맞아 전이 얇게 부쳐졌어."
"가장자리가 바삭하게 잘 구워졌어."
아, 호진아! 네가 없는 4인 밥상에선 동생 호정이가 오빠한테 배운 칭찬을 한다는구나.
"엄마, 두부에 간이 딱 잘 뱄어."
전시회에는 반상기들이 많더구나. 너희와 둘러앉아 밥먹는 행복을 담은 밥그릇이었어. 아 참, 밥을 중심으로 매일 먹는 밥상을 반상이라고 한다는 거 기술 가정 시간에 배웠지? 밥, 국, 김치, 장류를 제외하고 찬이 몇 가지 더해지느냐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12첩이 돼. 12첩은 임금님만을 위한 수라상이었어 옛날엔.
12첩 임금님 밥상 작품엔 엄마 아빠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어. 엄마 김미옥 아빠 이용기. 94년 봄, 엄마 아빠의 사랑이 시작된 그날엔 종일 비가 왔지. 막 상경한 젊은 엄마는 1호선 전철에서 군복을 입은 아빠와 눈이 마주쳤어. 아빠는 첫눈에 엄마를 사랑하기로 맘먹을때, 엄마는 '이용기'라 적힌 아빠 이름표를 보며 속으로 킥킥 웃고 있었어. 사랑은 불가사의 아니겠니.
"이 용기는 절대 새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너는 1997년에 태어났어. 아빠가 등록금을 벌어가며 오래 다닌 대학을 드디어 졸업했는데 IMF한파가 몰아쳤구나. 젊은 엄마 아빠는 너를 안고 일자리를 찾아 속초로 이사했지. 네게 돌잔치상을 차려주지 못하셨다는구나. 안산으로 이사한 후에도 엄마는 천천히 걸어본 적 없을 정도로 바삐 사셨대. 이불 밖으로 발이 삐죽 나오도록 네가 큰 걸 보고서야 이불을 바꿔 줄 정도로 말이야.
도예 전시회에서 술잔과 술병 작품들이 자꾸 말을 걸더구나. '인생 1'이란 제목의 3반 최수희 아빠 최준헌 씨의 작품 좀 봐. 수희를 잃고 극한의 고통을 통과하신 삶의 이야기였어. 한마디 작품 설명이 뭔지 알아?
"인생 살아보니 별거 아니더라 한잔하고 가세~~~"
너희 없는 세상을 부모님들이 다 저렇게 살아내셨구나 읽을 수 있었어.
너는 잘 웃는 아이였지. 친구들하고 잘 노는 아이, 식탁에 와 앉아 잘 먹고 질문 잘하는 아들. 너는 엄마의 행복이었어. 어쩜 그리도 섬세하게 엄마 맘을 읽어내며 질문을 하니?
"설거지할 때 한숨 쉰 이유가 뭐야?"
"옆집 아줌마와 통화할 때 어색하게 웃은 이유가 뭐야?"
"밥 먹다 말고 잠시 창밖을 내다본 이유가 뭐야?"
동네 사람들이 널 "딸보다 더 살가운 아들"이라며 부러워 할만했어. 네가 그리운 날, 속절없이 눈물이 나고 마음이 무너질 때, 엄마 아빠는 어떻게 버텨내실까?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고통을 한잔하시며 달래실까?
"인생 살아보니 별거 아니더라 한잔하고 가세~~~"
단원고 2학년 3반 김빛나라 엄마 김정화 씨의 꽃병 작품은 한 편의 시였어.
그 꽃 화병에 담다
꽃은 12월 겨울에 왔다. 어느 해 봄 4월 피지도 못하고 가버렸다. 시들어도 좋다. 꽃이 보고 싶다. 꿈속에서라도.... 어미가 만든 화병에서 쉬며 잠시라도 살아 보렴. 그리고 영원히 영영 빛나고 빛나라.
-단원고 2학년 3반 김빛나라 엄마 김정화
아~ 호진아!
부모에게 꽃 아니고 빛 아닌 자식이 있겠니. 너는 동생 호정이와 호윤이에게도 빛이었잖아. 막내 호윤이를 돌보던 너를 어찌 잊겠니. 비 오는 날은 김치부침개 먹는 날. 그런 날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호윤이한테 먼저 달려가 양치했냐 묻고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양치를 도와주던 오빠. 동생을 눕힌 후에야 식탁으로 가는 오빠 더구나.
이사 할 새집에 치수 재려고 엄마가 가다 널 만난 날이 생각나. 넌 핸드폰 프래시를 켜고 난생 처음 갖게 될 네 방을 보려고 왔지. 침대는 창가 쪽, 벽지는 은은한 색.... 꿈에 부푼 너였어. 아, 그 집에 지금 너는 없구나. 네 식구가 4인용 식탁에 앉는구나. 식탁 의자가 모자랄 일도 없지. 꿈속에서만 5인 가족이 12첩 반상에 둘러앉고 엄마는 아들의 칭찬을 듣는구나.
엄마 아빠는 오늘 같은 아픔도, 서로의 손을 잡고 농담하며 이겨내시겠지?
"이 용기는 절대 새지 않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8반 이호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