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 날쌘돌이, 단원고 2학년 7반 이정인에게
우리가 누군지 봐
우린 꿈꾸는 사람들이야
우린 이뤄낼 거야
우린 믿으니까
우리가 누군지 봐
우린 꿈꾸는 사람들이야
우린 해낼 거야
우린 볼 수 있으니까
여기는 열정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야
리스펙트, 오 예
여기는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야
리스펙트, 오 예
잘 걷고 잘 뛰는 몸, 날쌘돌이 정인아!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식 주제가 '꿈꾸는 사람들(Dreamers)'과 함께 너의 이름을 부른다. 개막 무대 마지막에 BTS의 정국이 부른 노래야. 공연은 완벽하고 아름다웠어. 다시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며 네게 편지를 쓰는구나. 우리가 누군지 봐. 꿈꾸는 사람들. 해낼 거래. 믿으니까, 그리고 볼 수 있으니까. 아! 꿈꾸는 사람들의 목소리!
축구를 좋아하는 날쌘돌이 정인이는 요즘 같은 때 밤잠 설치며 축구에 빠져 지낼 거야, 그치? 축구 잘 모르는 나도 이렇게 관심이 가는데 말이야.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는 재미, 특히나 날쌘 몸들이 만드는 기막힌 예술, 게다가 공하나로 세계가 어우러지는 축제. 축구는 참 신기해.
새삼 네게 공감해.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고등학교 생활이 네게 고역이었던 점 말이야. 넌 차라리 뙤약볕 운동장이라도 나가서 뛸 때 행복해했잖아. 짧은 점심시간이나마 공을 차며 운동장을 질주할 때 넌 모든 스트레스를 잊었지. 점심시간의 영웅으로, 체육시간의 스타로 뛰고 땀 흘린 후에야 넌 공부할 힘을 얻곤 했잖아.
정인아!
월드컵도 축구는 진짜 하나의 은유 같지 않아? 네게 축구가 단지 축구가 아니었듯 월드컵도 그래 보여. 개막식에서 정국의 노래가 끝난 후 카타르의 군주(에미르)가 개막을 선포하며 이렇게 말했어.
“인종·국적·종교·성향이 모두 다르지만 여기 카타르에서, 전 세계 곳곳 스크린에서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를 분열하는 것은 제쳐놓고 우리의 다양성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을 축하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어때? 축구로 죽자 살자 싸워 이기자고 하진 않았어. "인종·국적·종교·성향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의 다양성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을 축하" 하자며 아름다움이란 말을 썼어. 다름은 차별이 아닌 다양성이고, 그래서 하나 되게 한다는 역설, 이게 아름다움 아니고 뭐겠니. 아직 여러 한계는 있지만, 분명 아름다운 축제요 상징이다 싶어.
정인아!
축구공으로 상징되는 하나 됨의 예술, 함께 꾸는 아름다운 꿈. 이걸 대놓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27일(한국 시각) 열린 조별리그 E조 2차전 일본과 코스타리카와 경기 중이었어. 전 세계 앞에 관중석에서 일본인 관중이 욱일기를 펼쳐든 거야. 4년 전 러시아 월드컵 때도 그랬듯,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반복되는 추태야. 심지어 카타르에서 상가 외벽에, 축구 경기장 내에, 욱일기를 걸어 두려다가 제지당한 일본 팬도 있었대.
욱일기가 뭐겠니 정인아.
일본 자위대가 사용하는 공식기지만 전범기로도 통하잖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아시아 국가 침략 때 사용한 제국주의의 상징 말이야. 아! 상징의 싸움터 같아. 월드컵이 세계의 하나 됨의 은유라면 욱일기는 그 대척점 어둠의 상징 아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사과는 고사하고 세계 동료 시민들 앞에 제국주의의 망령을 드러내다니!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나라들에게 짓밟힌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욱일기로 축제에 똥을 뿌려야겠냐고!
더 안쓰러운 일이 뭔 줄 아니 정인아? 일본이 독일과 붙은 조별리그 1차전 땐 관중석에 욱일기가 보이지 않았어. 독일을 2 대 1로 이긴 후 맞은 코스타리카전에서 기어이 욱일기가 등장한 거야. 이게 뭘 말할까? 성찰 없고 오만방자한 일본, 분별력 잃은 일본은 그날 경기에서 0-1로 패했어. 더는 욱일기 볼일 없겠지?
정인아!
너는 아빠와 여동생과 세 식구 가족이었구나. 아빠는 스물아홉에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한부모가 되셨지. 아침이면 출근 준비하랴, 밥 짓고 반찬 차려 너희들 먹이랴, 늘 분주하셨지. 퇴근 즉시 유치원에서 너희들을 데려와 저녁을 먹였어. 밤에 노동할 땐 24시간 보육이나 할머니 도움을 받아 가며 고군분투 살아내셨구나.
네가 어릴 때, 세 식구가 서울대공원 나들이 간 날 기억나?
놀이동산엔 엄마 아빠의 양손을 맞잡고 걷는 또래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지. 엄마의 부재를 갑자기 느낀 너와 동생 유나가 아빠 손을 놓아 버리고 울음을 터뜨렸구나. 그날의 기억이 네겐 엄마에 대한 그리움보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이 되었다며? 철이 들수록, 아빠 홀로 얼마나 훌륭한 부모였는지 넌 알아갔지. 주말이면 화랑유원지에서 세 식구 자전거 타고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은 기억. 동생에겐 볼링을 네겐 당구를 가르쳐주고 시합도 해 준 아빠......
질풍노도 사춘기를 너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잘 넘어가더구나. 동생에게 짜증 낼 때도 있었지만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한바탕 노래하며 풀었지. 밤에 친구들과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도 아빠와의 통금 약속 시간을 꼭 지켰고 말이야. 여자친구가 생긴 후엔 아빠의 허락을 구해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네. 물류 회사 창고에서 포장 짐 나르는 힘든 일로 일당 4만 원을 받으며 너는 손 벌리지 않는 청년으로 쑥쑥 자라가더구나.
꿈꾸는 사람 정인아!
네가 패션모델을 꿈꾸며 구체적 청사진을 그려가는 모습이 참 멋지구나. 조그마한 얼굴, 마른 체구에 기다란 체형. 너는 자신의 강점을 알고 꿈을 향해 활기차게 걸어가더구나. 서울 모델 스쿨과 명문 대학 패션 관련 학과 리스트를 스스로 만들었지. 패션 분야 일을 살피고 눈을 넓혀 갔어. 고등학교 졸업하면 등록하겠다는 너를 아빠도 여자친구도 같이 응원해 주었지. 수학여행 다녀오면 진짜 공부 열심히 하겠다며 너는 긴 여행을 떠났구나.
네 꿈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정인아.
걷기를 참 좋아한 정인이는 모델 워킹도 참 멋지게 했을 거야. 긴 다리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 모델 정인이를 상상해. 매일 바람 쐬며 걸으며 생각하는 걸 즐긴 정인이.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곤 했지. 버스 타지 않고 걸어 집에 오는 걸 즐긴 너. 운동이라기 보다 걷기는 네게 일상의 기본 중의 기본이자 필수 활동이었던 거지?
런웨이를 걷는 멋진 모델을 꿈꾼 정인이를 기억할게.
걷고 달리는 날쌘돌이 정인이를 잊지 않을게.
너를 기억하며 꿈꾸는 사람으로 살게.
우리가 누군지 봐, 우린 꿈꾸는 사람들이야!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다원고 2학년 7반 이정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