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도 나만 비춘다, 햇빛처럼 빛나는 아이 단원고 2학년 1반 김수경에게
맞아! 햇빛도 너만 비추네, 수경아!
"무슨 소리야. 예쁜 건 나지. 햇빛도 나만 비추잖아. 기억 안 나?"
너를 생각하면 네가 한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라. 얼마나 유쾌하고 재미나고 기분이 좋아지는지 몰라. 햇빛도 너만 비추는 거 맞아.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에서 네 얼굴에만 햇빛이 비친 장면이 있었구나. 넌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 햇빛도 너만 골라 비출 정도로 이쁜 사람. 정말 이쁘다 수경아!
실은 네가 바로 햇빛이었어 수경아. 너는 주변을 밝게 비추는 행복 바이러스였으니까.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와르르 웃고 떠드는 네 주변이 환해 보여.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가선 "내가 쏠게" 짜장면을 사고 빙수를 사던 너.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편들어주는 해결사. 성격 좋고 체력 좋고 인간관계 좋은 넌 국정원 요원을 꿈꾸었지. 네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수경아!
수경아!
너를 생각하며 네 이름을 부르니 내 마음에 햇빛이 비쳐드는구나. 난 지금 해결사 수경이가 필요해. 네게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은 거야. 너와 함께 까르르 웃으며 수다 떨고 싶었어 수경아. 너의 공감과 포옹과 어깨춤이 필요해. 무슨 일이냐고? 지난 한 해가 참 무거웠잖아. 또 한 해가 간다니 맘이 무거운 거 있지. 솔직히 내가 뭘 할 수 있나 묻게 되고, 이 나라가 너무 걱정되는 요즘이었어 수경아.
수경아,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에게 국가는 있는 걸까? 지난 몇 달이 너무 힘들었어. 4.16과 10.29는 숫자만 다를 뿐 쌍둥이처럼 같은 패턴의 참사란 게, 눈을 가리고 싶을 만큼 보기 힘들었어. 국가기능은 총체적으로 부실한데, 무책임과 변명과 책임 전가에, 피해자들을 향한 혐오와 무자비한 가해까지. 어쩌면 좋으니 수경아. 별이된 너희 이름을 부르기가 미안하고 편지쓰기가 힘들어.
아! 맘을 털어놓다 보니 네 숱 많은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싶어지는구나. 아침마다 머리 말리는 게 전쟁이었다지? 나도 여고시절에 그랬거든. 수건 석 장도 모자랐다며? 선풍기와 드라이기가 동시에 돌아가도 엄마까지 도와주셔야 했다지? 젖은 머리로 학교로 달려가야 할 때가 많았지? 나도 딱 그랬어. 머리숱 많은 소녀 수경이가 새삼 반가우면서 더욱 친근감을 느끼며 위로받았어.
수경아!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나도 즐거운 얘기 하나 해 줄게.
지난주 눈 덮인 '서울 둘레길 1코스'를 딸과 함께 걸었어. 우리 딸도 수경이처럼 씩씩하고 햇빛 같은 사람이지. 너랑 같이 걸은 거 같아. 걷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자 일상이야. 복잡한 생각도 무거운 맘도 햇볕 쬐며 걷다 보면 정리되곤 하지. 온몸이 훈훈해지고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고 말이야. 서울 둘레길은 처음이었는데, 수락산과 불암산 두 산을 오전과 오후에 나눠 걸었어. 평소엔 1~2만 보 걷는데 그날은 45,771보를 기록했지.
올겨울은 초입부터 눈이 많이 와서 12월에 서울에서 설산을 걸었지 뭐니. 같은 서울인데 말끔히 제설 된 시내 도로와 너무 딴 세상이었어. 걸어도 걸어도 하얗게 쌓인 눈길을 수경이는 몇 시간이나 걸어 봤니? 눈 쌓인 산속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 적 있어? 숲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나만 비추는 거 알지? 불암산 둘레길에선 멧돼지 두 마리가 내달리는 것도 봤단다. 아~~ 꿈같은 산행이었어.
아, 올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어. 꽁꽁 싸매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눈 산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거라 상상하지 못했어. 손발이 시려서 중도 포기하는 일만 없길 바라며 걸어갔지. 산에 들어서니 다른 세상이 열리는 거 있지. 온통 눈 세상이었어. 거기 눈 위로 앙상한 나무들이 죽죽 뻗어있고 말이야.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는 또 얼마나 이쁜지! 어서 다시 가고 싶을 만큼 설산이 그립단다.
수경아!
역설이지 않니? 하얗게 눈 쌓이고 얼어붙은 산에서 나는 생명의 힘을 얻고 왔으니 말이야. 세상이 온통 겨울이지만 눈 속에도 앙상한 가지에도 생명은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삶은 계속되는 것. 절망이 우릴 덮칠 때도 우린 그 속에 살아있는 생명을 믿고 바라봐야겠지. 햇빛 속을 걷자꾸나 수경아. 해결사 수경이가 그렇게 살았듯 말이야.
새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어 수경아. 힘차게 햇빛 속으로 걸어가는 거야! 매일 걷는 건 할 수 있어 수경아. 걸으며 새 공기로 숨 쉬고, 걸으며 고민하고 걸으며 수다 떨며 배우자꾸나. 45,771보도 한 걸음씩 걸었으니까! 수경아, 새해에도 우리 행복한 웃음 많이 웃자. 우리만 비춰주는 햇빛 많이 쬐고 살자꾸나! 사랑해!
PS. 편지 선물 하나 더 덧붙일게. 너희 기억교실에 가면 반마다 한 권씩 놓인 노란 편지 묶음 있잖아. 몇 년 전 여성 단체 울림의 '별을 품은 사람들'이 너희 약전을 읽고 쓴 250편의 편지란다. 그때 우리 가족들도 편지쓰기에 동참했더랬어. 너랑 동갑내기, 2014년엔 너처럼 고2였던, 우리 집 막내 재석이가 네게 쓴 편지야.
안녕 수경아!
너의 약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왁자지껄한 느낌이구나. 너는 친구들에게나 가족들에게나 엔도르핀 같은 존재일 거 같아. 가족들과 친구들 생일을 항상 살뜰하게 챙겨주고, 고민 있는 친구들 이야기는 자기 이야기처럼 신경 써서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 넌 마음씨가 따뜻한 친구인 게 확실해. 그런 생각과 마음씨라면 분명히 나중에 켄과 결혼할 수 있을 거야. 자신감도 대단하더라? 햇빛도 네가 예쁜 탓에 너만 비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 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한 자신감 하는데 너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리고 네 식성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아. 나도 짜장면 먹을 때 짬뽕 국물 조금씩 넣어 먹거든. 그렇게 먹으면 고춧가루로 낼 수 없는 칼칼한 맛을 낼 수 있어서 짜장면이 더 맛있잖아. 나도 엄마 닮아서 이것저것 섞어 먹는 것도 좋아해.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데 너는 날 이해해 주겠다 싶었어. 거기서도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엔도르핀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너와 동갑내기 재석이가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반 김수경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