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는 글쓰기, 꿀벌 왜글 댄스

청어람의 '발견하는 글쓰기' 강좌에 기대어 새 책 가제를 얼렁뚱땅 정하다

by 꿀벌 김화숙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


청어람의 '발견하는 글쓰기 모임'이 개강했다.


해마다 글 모임 한두 개 등록하는 건 내 오랜 루틴이다. 글도 글이지만 낯선 사람들과 사귀고, 같이 읽고 쓰는 재미 때문이다. 내가 쓰려는 책이 주는 무게 때문에, 좀 가볍게 시작하고 싶은 이유도 한몫했다. 내 평생 '칼을 갈아 온'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부인하기 어려웠다. 이럴 땐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노출하고, 나를 객관화하며, 쉽게 수다 떨며 가는 게 상책이다. 사람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며, 배우는 역동에 기대는 거다.


'발견하는 글쓰기'라는 카피가 맘에 든다. 나를 발견하는, 내 삶에 중요한 화두들을 재발견하는 글쓰기다. 익숙한 건 해체하고, 깡그리 부수는 것도 발견이다.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누더기는 버려지는 것. 새롭게 조망하고, 새로운 언어를 찾고, 나를 발견하고 세상을 발견하는 글쓰기를 기대한다.


8주간 격주로 네 권의 책을 읽고 네 편의 글을 쓴다. 책 목록이 나를 끌었다는 것도 고백하자.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 첫 책인 걸 보는 순간, 결정했다. 처음 나왔을 때 사 읽은 책이 색이 좀 바랜 채 책장에 꽂혀 있었다. 6년 만에, 그래, 책 내고 다시 읽는 느낌이 새로웠다. 글쓰기야말로 삶의 최전선 아니겠음? <신앙 사춘기>, <교회를 찾아서>, 그리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책 읽기와 책 쓰기의 동행이 좋다.


3월 14일(화) 첫날, 다양한 배경의 수강생 12명 줌 속에 내가 있었다. 늘 하는 다짐을 혼자 새롭게 했다. 절대 잘 쓰려 하지 말기. 쉽게, 마감을 지켜 쓰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넘어갈 것. 퇴고는 나중에 계속하면 되니까.


첫 과제 글쓰기 덕분에 내가 쓰는 다음 책 가제도 얼렁뚱땅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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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왜글 댄스


기상천외한 춤으로 구애하고 의사전달하는 동물들이 있다. 큰 덩치로 타조는 구애춤을 몇 시간이라도 춘다. 극락조들이 화려한 깃털을 요술부리며 추는 구애춤을 보라. 앨버트로스의 군무며 우아한 학춤은 또 어떤가. 새들만 춤추는 건 아니다. 꿀벌은 왜글 댄스(waggle dance)라는 장르 춤을 춘다.


왜글 댄스란 움직임이나 흔들림이 아주 빠른 춤이다. 꼬리를 흔들며 8자 모양의 원을 그리며 뱅뱅 돈다. 꿀이 있는 꽃을 발견했을 때, 동료들에게 춤으로 신호를 보낸다. 먹이가 100미터 이내에 있으면 일정한 방향의 원만 그린다. 그보다 먼 거리에 있을 땐 엉덩이를 8자 모양으로 빠르게 돌리며 원을 그리는 춤을 춘다. 꿀벌의 집단 왜글 댄스는 오스트리아의 프리슈 박사가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며 더 알려지게 되었다.


꿀벌은 결코 일만 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꿀벌은 여 선지자 이름이기도 해서 영적인 존재라 하고 싶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사사 드보라 이름이 꿀벌이란 뜻이다. 랍비돗의 아내라는 정보 말고 남편에 대한 기록이 없는 선지자다. 남자의 '돕는 배필'로 호명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정치 군사 종교를 아우르는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였다. 재판관이자 군대 최고사령관이기도 했으니, 21세기에 오더라도 탁월한 여성 리더십임에 틀림없다.


나는 속수무책 춤추는 꿀벌에 끌린다. 꿀벌이 내 별칭이라서다.


내가 활동하던 선교 단체에서 선교사 파송을 앞두고 개명하는 문화가 있었다. 주로 성서 인물의 이름으로, 스스로 짓거나 단체의 리더가 지어줬다. 딱히 불리고 싶은 성서 이름이 없던 내게, 졸업과 함께 '드보라'란 이름이 주어졌다. 당시 단체는 '순종적이고 조용한' 여성이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드보라는 참 독보적인 인물인데, 내 이름으론 부담스러웠다. 너무 '쎈 언니'로 보일까, 남자들이 싫어할까, 내 안에 있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거절도 환영도 못한 채 선교사 드보라가 되었다.


드보라란 이름의 뜻을 조사해 보곤 살짝 위안을 얻었다. 꿀벌, 어감이 좋잖아. 한살이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호감가는 동물이었다. 이 땅에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도 멸망이다. 기후 위기 시대엔 얼마나 중요한 화두인가. 사사 드보라는 그런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노예처럼 일만 하는 꿀벌 말고, 나는 왜글 댄스 추는 꿀벌을 생각하기로 했다. 한 남편의 아내가 됐을 때 더욱 그랬다.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나는 목사의 아내, 남편보다 드세게 나설 기회 따위 멀리 있었다. 왜글 댄스나 추기로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를 드세게 드러내지 않고자 그렇게나 용을 썼건만, 나는 죽지 않았다. 부담스럽던 드보라라는 선지자가 심지어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순종적으로' 길들어 사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는 다른 내가 살고 있었다. 드보라 같은 여성 리더십을 허용하지 않는 이 나라 교회가 퇴행적으로 보였고, 남편이 가부장의 화신으로 보이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꿀벌 왜글 댄스'는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다. 일만 하는 헌신과 희생의 여종 말고, 기상천외한 춤을 추는 여자다. 그 엄혹한 사사 시대에도 여자 드보라를 사사로 쓰신 하나님이 오늘날은? 여성은 과연 하나님의 형상 맞나? 남편 '순종하는' 아내란 과연 그리스도의 복음에 부합하는 논리인가. 독립된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돕는 배필'이 창조의 뜻인가. 평등부부는 성서에 부합한가 아닌가. 내 인생의 흑역사이자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의 프리퀄인 셈.


'발견하는 글쓰기' 강좌에 기대어 새 책의 가제를 얼렁뚱땅 잡았다. 마구잡이로 좀 써 둔 꼭지들을 모으고 본격적으로 쓸 것이다. 꿀벌 왜글 댄스, 기상천외한 춤을 추는, 목사랑 사는 여자 어때? 일단 나 즐거우면 장땡!



** 나를 소분하기


글 쓰는 사람(<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외 출간 작가, 브런치 작가, 블로거 꿀벌 작가, 시민기자, 자유기고가), 예수쟁이, 페미니스트, 여성 활동가, 416안산시민 연대 활동가, 416합창단원, 독서토론 진행자, 60대 여성, 결혼 33년 목사의 아내, 성인 자녀 2남 1녀의 엄마, 맏며느리, 둘째 딸, 사랑꾼, 비거니스트, 사회복지사, 상담가, 강연가....


김화숙이라는 사람을 할 수 있는 대로 작게 쪼개 소개해 보라는 말이겠다. 사람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면적인존재인가. 한 사람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라벨링 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나도 나를 다 모른다. 소분하기 덕분에 나를 쪼개 소개해 보았다. 그중 내 별칭 꿀벌로 나를 소개했으니, 꿀벌로 이야기를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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