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 글 한 편 완성해 보기
어제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되었다.
제기랄. 이게 뭔가. 이렇게 빨리 당첨되어 버리다니! 생각할 시간을 줬어야지, 이건 너무했다. 내 평생 복권이라곤 처음 산 건데, 이래도 되는 건가?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몇 십 년간 매주 복권 한 장씩 사 온 욱이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에 잘 준비돼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꼬드겨 복권 사게 한 녀석들은 이걸 상상했을까?
'복권 결의'까지 할 생각은 누가 먼저 했나 모르겠다. 녀석들에게 바로 연락할 것인가 좀 뜸을 들일 것인가, 그것도 결정하지 못하겠다. 겨우 어제 일이었다. 오랜만에 한양 성곽길을 걷자고 친구들을 불러낸 게 문제였다. 매화 구경이나 하고 커피나 마시고 헤어지고 말 걸 그랬나. 아니다. 1등 당첨이지 않나.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숙덕영욱지훈 여섯이서 ‘복권 결의’를 맺는다고 그 난리를 친 건 선견지명이었나.
“아니 숙이는 아직도 복권을 한 장도 안 사 봤다고?”
늘 복권 이야기 꺼내는 욱이 때문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냐고 우겨도 소용없었다. 너무 바쁜척하지 말라는 둥, 글쓰기만 하다 죽을 거냐는 둥, 녀석은 '복권 전도사'였다. 복권 한 장 안 사고 살아온 걸 나는 ‘고해성사’해야 했다. 삶을 좀 즐기며 살라는 조언까지 들어야 했다. 허접쓰레기 글을 누가 읽는다고, 싶다가도, 나는 큰소리로 다시 받아쳤다.
“야! 복권 안 살 수도 있지 뭘 그러냐? 내가 복권 사는 날 너네들은 새 인생 시작할 준비나 해. 내가 사면 1등 당첨 말고 뭘 하겠어? 너네들하고 공평하게 나눌 테니 그리 알고 있어. 됐지? 너네들 먼저 1등 기회 얻으라고 내가 아직 안 사는 거 몰라?.....”
내 호언장담이 끝나기도 전에 욱이 나섰다. 오늘은 꼭 한 장 사라는 다짐이었다. 도원결의만 있는 줄 아냐, 복권 결의도 있단다. 우리의 우정을 지키고 삶을 지켜나가자면 같이 결의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그 자리에서 녀석들은 모두 전화기를 꺼내 우리의 수다를 녹음했다. 메모에 적어둔다 부산을 떠는 놈도 있었다. 나도 질세라 더욱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1등 당첨되면, 우리 여섯 명에 하나 더해서 7로 나눈다. 당첨금 나누기 7, 왜냐고? 여섯 몫 말고 나머지 1은 폴란드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식사 때 하던 거야. 식탁에 빈 의자 하나 더 놓는데, 그건 예수 자리래. 그래 우리 1등 당첨되면 예수 몫 하나 있어야 하는 거 맞잖아? 그건 평소 챙기고 싶던 곳, 도움이 필요하다 싶은 교회든 단체든 사람이든 같이 합의해서 공평하게 나눠 쓰는 거야. 좋지? 콜?”
녀석들은 모두 와~~~ 좋다고 소리 지르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게 어제 오후였다. 그 길로 나는 성북동 어딘가로 끌려갔고, 여섯이 모두 한 장씩 샀다. 환갑이 넘도록 복권 한 장 안 사 본 나는 뭘까? 나름 역사적인 날, 여섯이 여섯 장의 복권을 내밀고 가게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우리의 헛소리대잔치 복권 결의가 그렇게 끝났다.
혼자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내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있었다. 다섯 놈이 나를 따라오며 약 올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내가 나를 질책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떨치려 해도 잘 안되는 목소리였다.
“사람이 사람인 건 상상력 아니겠냐. 복권 한 장 속에 담긴 상상력의 세계를 사는 거야.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 복음도 결국 상상력을 발휘해야 누리는 세계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미 온 것으로 이 땅에서 살아내는 믿음. 이게 복권에도 적용되는 거라고. 일확천금을 바라네, 허영심이네 도박이네,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야. 매주 1등 당첨되는 상상을 해봐. 당첨금으로 무얼 할 것인가? 상상력이 없고, 꿈을 제대로 꿔 본 적이 없으니, 당첨된 사람들이 많이 망하는 거라고.....”
욱이 부부는 매주 복권을 사며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꿈을 나눈다고 했다. 둘이서 어떤 새로운 삶을 만들 수 있을지, 무한 상상의 나라로 돌아다닌단다. 이거야말로 하나님 나라와 닿은 세계, 맞는 말이었다. 하나님 나라 봤어? 그들은 1등 당첨 상상 속에 저 먼 미래를 현재로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못 가본 나라들을 매주 새롭게 공부로 다니면서 말이다.
내가 그렇게나 퍽퍽하고 퍼석퍼석한 현실에 매여 있었단 말인가. 재미도 없고 돈도 없고 꿈도 없고 상상력마저 빈곤한 인간으로 내가 보였다. 나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고 여긴 건 모두 자기 위안이었을까. 대화가 잘 통하는 부부라 생각하며 살던 우리 사이에 복권 당첨 이야기는 왜 할 수 없지? 복권 한 장을 위해 쓴 단돈 천 원이, 나를 전혀 가 본 적 없는 길로 이끌고 있었다. 1등 당첨금으로 뭘 할지, 어떤 상상이 가능한지, 이제 나눠볼 참이었다.
제기랄, 복권 결의하고 바로 다음 날 당첨이라니. 헛소리 대잔치로 놀았을 뿐 정말 이걸 상상한 건 아니었다. 상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다. 내 상상 속엔 이런 그림이 없었던 게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닥쳐올 줄이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잘 누릴 수 있을까. 너무 한 거 아냐?
친구 놈들한테 전화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따지기라도 해야 속이 좀 가라앉을 거 같다. 여섯 목소리가 합쳐지면 또 무슨 그림이 나오겠지. 약속대로 녀석들이 알아서 그려낼 것이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발견하는 글쓰기' 강좌에서 첫 강 과제 중 하나로 써 본 글. 첫 문장을 "어제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되었다"로 시작해서 마음대로 써보는 과제였음. 1인칭 엽편소설 기분으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