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나 명사 말고 형용사로 사는 비건의 새해 인사입니다.
사랑하는 이웃님들 그리고 독자님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 즐겁고 신나는 한 해 되시길 응원하며 포옹합니다.
다행히 아직 1월이네요. 새해 인사로 시작하려니 살짝 미안하고 부끄러웠거든요. 블로그도 브런치도 살펴보니 마지막 글 쓴 날이 작년이었더라구요. 아시죠? 초짜 출간 작가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북토크다 뭐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녔잖아요. 책 이야기로 수다 떠는 건 늘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독자들의 목소리 듣는 즐거움이 워낙 커서, 글쓰기로 앉아 있을 시간이 부족했어요.
지난 한 해 제 글을 읽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 소통하며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새해엔 더 좋은 글, 제 일생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쓰는 게 제 소망이랍니다. 제 성정상 골방에서 글만 쓰고 살기야 하겠어요? 독자와의 소통이 얼마나 제게 영감이고 응원이고 즐거움인지, 절절히 배우고 있는걸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되, 글쓰기를 어떻게 더 집중할 것인가, 그게 숙제죠.
아 참,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덕분에 제가 1월부터 작은 월간 매체 <새가정>에 연재 글을 쓰고 있어요. 꼭지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로요. '새가정'이라니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잡지일까요? '간이 배 밖에 나온' 여자한테 연재를 제안한 걸 보면, 느낌 팍 오지 않나요? 가정이니 가족이니, 세상 끝나는 그날까지 다시, 새롭게 질문하고 탐구할 주제죠? 여성, 몸, 건강, 이런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죠?
<새가정>에 마감한 2월 글로, 이러고 살아요, 제 근황 인사 겸 새해 인사를 대신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실, 저 비건은 아니에요
작년에 의정부에서 한 독자한테 작은 책을 선물받았다. 제목이 <비건인가영>인데 책을 쓴 사람 이름이 임가영이었다. 내 책을 읽고 작가와의 만남에 오면서 독자는 자기가 쓴 책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책의 첫 꼭지 ‘여는 변명’은 내 마음의 소리 같은 짧은 시였다. “사실, 저 비건은 아니에요. 지향만 몇 년째 하고 있어요.”
시는 반복해서 이렇게 이어진다. “사실, 저 작가는 아니에요./ ‘지향’만 몇 년째 하고 있어요./ 사실, 쉽지는 않네요./ ‘지향’만 하면서도 말이에요./ 그게 다예요./ 그렇다고요.”
“비건인가요?” 또는 “비건 어떤가요?” 질문하는가 하면, “사실, 저 비건은 아니에요”라고 조용히 말한다. 글쓰기처럼, 지향만 하기도 쉽지 않다는 3년 차 비건지향인의 고백이었다.
임가영 작가는 자신을 ‘가끔 치킨에 힐링을 찾고 묵은지에 싸먹는 삼겹살을 보양식 먹듯 하던 사람’이라 썼다. 비건 계기는 오랜 직장 생활에 원인 모를 피부질환 때문이었다. 치킨을 즐기던 딸이 마침 ‘비건 선언’을 하길래, 딸을 지지하는 엄마 맘으로 비건 지향을 다짐했다.
비건 지향만 하는데도 어렵다는 고백, 공감한다. 비건 식당이 하나도 없는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면? 가족이 고기를 원한다면? 맛있는 족발집 새로 생겼다며 애들 데리고 오라는 친정엄마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린이집 원장님과 먹거리에 관해 이야기한 후 어린이집 식단에서 핫도그 등 가공육이 완전히 사라졌다. 만세다!
“비건은 내게 정체성이나 명사이기 이전에 형용사이다.”
<아무튼, 비건>의 저자 김한민의 고백인데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비건’만큼 공격받기 쉬운 소수자 정체성이 또 있을까. 그래서 형용사적 지향이 길이다. 완벽한 비건 정체성보다는 다수의 ‘비건적’ 사람들을 만드는 노력이 사회 전체로 훨씬 낫다는 관점이다. 힘들지만 ‘지향’이 많아지는 것만으로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살기 좋아진다.
나도 9년째 비건지향 중이다. 애당초 내게 비건은 사회운동이나 정체성이 아니었다. 간암 절제 수술 후 자연치유에 따른 생존의 선택이었다. 어릴 적부터 ‘골고루 잘’ 먹던 사람이 단식하고 채식하는 건 너무 낯선 길이었다. 최고의 의사인 내 몸이 좋아하는 길일뿐이었다.
비건 지향하며 나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의 자리를 알게 되었다. 육식주의자는 왜 고기 먹느냐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동물을 죽이지도 먹지도 사용하지도 않겠다는데, 내 몸에 부담 주지 않고 싶다는데, 비건은 의심받는다. 솔직히, 나도 분위기에 따라 아직도 비건 지향을 안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분위기 불편하게 할까, 융통성 없는 사람이랄까, 두려워서 말이다.
딸과 함께 종일 눈 쌓인 서울 둘레길을 걷고 시내를 걸은 날이 생각난다. 저녁 식사하기로 찜해둔 비건 식당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어느 참치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이름과 사진에 상호까지, 내가 아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온 적 없는 곳인데 말이다.
“사장님 혹시 전에 오마이 블로그 하지 않았어요? 저 꿀벌 김화숙인데요.”
“세상에! 맞아요. 했죠. 꿀벌, 기억하고 말고요.”
온라인으로 알던 이웃이었다. 저녁 장사 준비하는 늦은 오후라 분주했지만 우리는 옛 추억을 나누었다. 우리 관계가 끊긴 건 내가 암 수술 후 자연치유에 집중할 때 오마이 블로그가 사업 종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으로, 나는 나중에 새 블로그와 브런치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모녀는 동지 팥죽을 대접받았다.
영업하는 참치집에 불쑥 와 팥죽을 먹고 앉았노라니, 내 눈이 자꾸 메뉴판으로 갔다. 모두 참치뿐,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자며 딸에게 제안했다. 비건 둘이서 참치회를? 딸이 눈으로 욕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예외도 있잖아~, 눈을 찡긋하곤 그나마 소박해 보이는 정식 2인분으로 주문했다. 한가운데에 숙성참치회가 잔뜩 올라간 거대한 접시가 나왔다.
바로 후회가 몰려왔다. 맛이 없어 전통술 한 잔씩 들이켜도 마찬가지였다. 상징적으로 내가 몇 점 먹었고 딸이 숙제하듯 먹다 남겨야 했다. 밖에 나오자 딸이 폭발하며 소리질렀다.
“엄마는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내가 ‘먹어치우는’ 상황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애초에 우연이었고, 마침 동짓날이라 팥죽 먹고 가라 한 건데, 굳이굳이 참치회를 시켜? 비건이라고 말 안 할 거면 ‘다음에 가족들이랑 한번 올게요~’ 할 수도 있었잖아! 예외로? 내가 온전히 선택할 수 있을 때나 예외지, 엄마 사회생활한다고 얼렁뚱땅 나 끼워넣었지 무슨. 내가 하는 비건은 비건도 아니야? 엄마가 비건 친구랑 와도 이랬을까? 먹을 생각도 안 했을 거고, 만에 하나, 구구절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겠지. ‘예외’라고 퉁치면 땡이야?? 나랑 인간 대 인간으로 함께하고 싶다며!! 친구라며!! 다 개소리네. 딸이라 만만한 거잖아!!!!!!…”
아, 다 맞는 말이었다! 돈 쓰고 몸과 맘 버리고, 왕창 망한 날이었다. 나는 몇 점 먹은 참치회가 몸에서 기어나올 듯 역겨워져 다 토하고 말았다. 그리고 저녁 시간 내내 딸에게 ‘참교육’을 받으며 사과하고 공부하고 깨져야 했다. <비건인가영>의 목소리가 새삼 나를 위로했다.
“사실, 저 비건은 아니에요. ‘지향’만 9년째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