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지천에 널린 쑥, 4월에는 쑥을 뜯고 쑥을 즐거워한다
“길가에서 뜯은 거 아닌 풀섶 깨끗한 데 난 쑥이더라. 엄마가 잘 다듬어 부쳤다. 생쑥으로 해도 좋은데, 데쳐서 하나?”
“떡 질까봐 데쳐서 꼭 짜서 하지. 다음엔 생쑥으로도 해볼게.”
연하고 깨끗한 쑥을 큰 사과 상자 가득 부친 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다. 암암, 그 기분 알고말고, 4월의 선물 쑥이니 얼마나 반갑게 만지고 꼼꼼하게 다듬었겠나. 모녀 함께 쑥떡 만드는 꿈은 또 가버렸다. 대신 엄마가 부쳐준 쑥이 현미쑥가래떡이 됐다.
9년 전 암수술 때까지만 해도 쑥은 내게 고향의 추억 속에나 있었다. 봄이면 지천으로 널린 쑥이었지만 내 삶에 들어오진 못했다. 어릴 적 엎어져 깨진 무릎에 붙이던 짓이긴 쑥, 엄마가 해주던 쑥떡, 그리고 별 헤는 여름밤에 맡던 모깃불의 향기 정도의 기억이었다.
자연치유로 자연식을 추구하다 보니 쑥이 내 곁에 와 있었다. 자연에서 나는 평범한 것 속에 있는 치유력은 쑥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맑은 공기와 햇볕, 겨울을 이기고 돋아나는 새순, 생명력 넘치는 야생초, 그게 쑥이었다. 봄이면 쑥을 뜯어먹고 사는 일상이 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쑥 뜯을 시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4월이었다. 쑥국이며 쑥 샐러드 정도야 생협에서 사기도 하고 본오뜰 산책 중에 뜯을 수 있었다. 문제는 늘 하는 현미가래떡 한 말에 들어갈 쑥이었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그만한 양을 뜯는 건, 여유있게 시간을 내야 하는 노동이다. 과감히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엄마가 직접 봄나물을 뜯고 쑥을 뜯어 떡을 해주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엄마는 집 앞에 나가도 노인용 밀차 없인 보행이 조심스러운 9순 노인이다. 딸을 위해 5일 장날 쑥을 사고 다듬어 부치는 엄마 수고 덕에 나는 올해도 봄의 별미를 잘 먹고 있다.
“너그는 온 식구가 쑥떡을 잘 먹으니 울메나 좋노. 쑥하고 산나물 또 보내 주꾸마.”
“고마워 엄마. 엄마한테 가서 하면 더 좋을 텐데. 엄마도 봄나물 많이 먹고 햇볕 쬐래이…”
쑥현미가래떡은 보릿고개를 넘어온 엄마의 세월을 생각나게 했다. 겨우내 시래기처럼 걸려 있던 마른 쑥 다발도 떠오른다. 죽도 되고 떡도 되고 밥이 되어 배를 채워주던 쑥이다. 산으로 들로 나가 쑥 뜯고 나물해서 5남매를 먹이던 엄마가 장에서 쑥을 사서 부쳐주는 것이다.
“식약동원(食藥同源).”
쑥현미가래떡은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라는 동의보감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쑥은 몸을 덥히고 혈류를 좋게 하며 냉과 음을 제거하는 좋은 약초다. 타박상, 신경통, 부인병에 다양하게 쓰인다. 쑥을 우려낸 물에 몸을 담그는 쑥탕에, 훈증도 있고 쑥뜸도 있다. 봄에 먹는 쑥떡은 아무리 자랑해도 모자랄 양약이요 향기나는 음식이다.
“무얼 어떻게 먹어야 하나 매일 고민하게 돼. 아이디어 좀 없을까?”
며칠 전 항암치료 중인 친구를 문병했을 때 받은 질문이다.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몸에 힘이 없고 입맛이 없는 친구에겐 절박한 질문이었다. 먹어야 사는 우리 몸, 건강한 사람도 환자도 먹는 걸 우습게 알면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이것만 먹으면 됩니다, 라는 약 광고 보조식품 광고가 유혹적인 이유다다.
“잘 알잖아. 몸에 해롭지 않게 네게 잘 맞게 먹으면 되지 뭐.”
친구에게 줄 뾰족한 비책 같은 건 내게 없었다. 힘들게 항암치료 중인 친구와 암수술 후 항암 없이 9년째 활기차게 사는 나는 처지가 많이 달라서일까. 거듭 묻는 친구를 나는 꼭 안아주며 격려했다. 내가 찍어 둔 끼니 사진 몇 개 보여주며 힌트나 얻으라며 수다떨었다.
채소와 들깻가루와 레몬즙으로 비빈 샐러드 보리밥 포케. 콩과 뿌리채소를 뭉근히 익힌 현미가래떡볶이. 찐 고구마에 청국장콩과 채소를 곁들인 김쌈. 쑥현미가래떡과 과일과 생강피클…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 창조주의 선물인 자연을 사람이 어떻게 대하고 쓰느냐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양약인 재료가 사람 손을 거치며 독약이 되기도 한다. 화학 색소와 인공향에 소금설탕으로 칠갑한 백미쑥떡과 내가 한 쑥떡은 다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포크라테스 목소리도 그랬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음식을 잘 먹는다는 건 이런 의미다. 잘 먹는다는 건 산해진미를 몸에 가득 채운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약동원을 기억하며 잘 먹고 살 일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몸이 되고 약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 무염 현미쑥가래떡 하나 드실래요?
(새가정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