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복이 있고 결핍 후에 누리는 복이 있다
“빵빵한 보험, 두둑한 통장, 잘나가는 남편, 부모 챤스. 이것들은 뭘까요?”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독자 모임에서 내가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뭐지?” 하는 눈동자가 반짝이고 여기저기 “돈?” “믿는 구석?” 등의 답이 나온다. 나는 공감의 고갯짓을 격하게 하면서도 다른 대답을 좀 더 기다린다. 어디선가 경쾌한 여성 목소리가 외친다.
“나한테는 없는 거요!”
나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며 떠들기 시작한다.
“당동댕동~~~ 박수박수!!! 와~ 저처럼 없는 게 좀 많네요? 반갑습니다!”
“네! 작가님 책에서 밑줄 치며 읽었어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얼굴로 만나면 마음이 통한다. 책은 매개일 뿐, 책 읽은 사람도 안 읽은 사람도 삶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친구가 된다.
우스개로 시작했지만 오늘은 결핍이 때론 좋은 일도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먼저, 조심스러운 마음을 고백한다. 지난호에 이열치열 동병하치 자연요법을 쓰고 보니, 기후위기에 폭염에 열사병 소식이 계속 들렸다. 이미 글은 나갔다. 에어컨 없는 집에 산다는 내가 혹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소용없는 성찰이었다. 오늘은 또 못난 자랑을 쓰려니, 결핍과 불편 중에 마음 상하는 분 없길 기도하며 쓴다.
“가진 게 많았더라도 이 길을 택했을까?”
“빵빵한 실비 보험이 있었다면 의료쇼핑을 안 하고 자기주도적인 자연치유를 했을까?”
혼자 가끔 하는 질문인데 지금도 답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돈이 있고 없음은 의료에서 결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에서 B형 간염은 ‘난치 또는 불치병’으로 분류된다. 고치기 어렵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약이나 보조제를 몸에 더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다. 이 병원 저 의사, 더 좋은 약, 잘 갖춰진 시설, 음식과 보조제… 이런 백약이 무효라는 소리다. B형 간염 보유자가 간암 수술까지 했으니, 이건 절망이다. 다른 선택은 없단 말인가?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게 바로 ‘마이너스 건강법’이다. 몸에다 더하는 대신 빼는 원리다. 돈이 없을 때 빚내서 무리한 쇼핑할 것인가, 안 사고 없이 살아볼 것인가. 후자의 선택과 비슷하다. 이미 오염될대로 오염된 내 몸, B형 간염 항체도 못 만들고 간암까지 왔는데, 백약이 무효라고 의학도 인정한다. 잘 먹는 것보다 속에 쌓인 나쁜 것부터 비워내는 게 길이다. 자연의학의 기본원리에 충실한 이런 우스개도 있다.
“암도 종양도 굶기면 죽는다.”
결핍이 만병통치약이란 말은 결코 아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단식으로 몸을 비우고 독소를 빼며 자연으로 내 몸을 돌려야 했다. B형 간염 항체가 생기고 암을 잊은 몸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 몸엔 아무 결핍이 없다는 뜻일까?
내가 가진 결핍 눈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40대에 이미 노안이 와서 돋보기 없인 읽고 쓰기 어려운 눈. 눈물관 협착으로 바람과 냉기 앞엔 안구의 수분이 눈물관으로 흐르지 못하고 밖으로 질질 새는 내 눈. 참 없어 보이게 살고 있다. 인공누관 삽입 따위 안하고 자연으로 버텨보는 중인데, 작년 말 오른쪽 눈이 안 보이는 거다. 시야에 뭔가 떠다니더니 안갯속처럼 흐려져 버렸다. 뭐지? 어차피 나쁜 눈이라 놀랄 일도 아니었다. 자연치유법을 찾아보리라 버텼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자연치유법도 안 보였다. 결국 ‘망막박리’ 진단을 받았다. 우표 크기만 한 얇은 조직인 망막이 외상이나 과로 등으로 안구에서 떨어지고 찢긴 상태다. 빛이 눈에 들어와 각막을 통과하고 안구 뒤편의 망막에 닿아 시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된다. 망막박리론 시각이 일어날 수 없다. 방치하면 시력 상실은 물론 안구가 쪼그라들어 ‘애꾸’ 또는 안구적출까지 가는 질병이다.
외눈으로 지내 보니 이만저만 결핍이 아니었다. 시야가 좁고 공간과 원근 감각이 불편했다. 운전은 밤이고 낮이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읽고 쓰고 읽는 일, 모니터를 마주하는 일 모두 불편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한 눈이나마 볼 수 있음에, 눈이 두 개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알게 됐다. 장애를 고려한 포괄적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건물과 길과 세상의 구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몸으로 마음으로 장애인의 입장에 조금 더 공감하게 됐다.
여름에사 망막박리 수술을 받았다. 서울의 대학병원에 2박 3일 입원하며 ‘떠났던’ 현대의학의 손에 10년만에 나를 맡겨야 했다. 4시간 넘게 걸린 암 수술 때가 생각났다. 전신마취에서 잘 깨어날까, 오른쪽 눈은 볼 수 있을까, 두려움은 피할 수 없었다. 눈부신 의학기술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예정대로 정확히 1시간 30분 만에 나는 전신마취에서 깨어났다.
“와~ 보여요. 감사합니다!”
퇴원 전 안대를 떼니 오른쪽 눈에 세상이 보였다. 오른 눈 가까이서 “몇 개?”냐며 흔드는 의사의 손가락 두 개가 보였다! 시력 검사 판의 큰 숫자며 문자도 덩어리로는 보였다. ‘망막박리 수술’이라 쓰고 ‘개안’이라 읽는 게 맞다. 두 눈으로 보는 바깥세상은 더 빛나고 아름다웠다. 오른쪽 눈만으로론 선이 좀 일그러지고 약간 흐렸다. 안구에 넣은 기름 제거 수술 후엔 달라질 것이다. 자연의학과 현대의학,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협업하는 게 맞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소경 눈뜨는 이야기’ 중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나이다”가 훅 이해됐다. 나무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결핍으로 누려야 할 복이 있고 결핍 후에 채워짐이란 복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몸을 살린 8할은 결핍이었지 싶다.